교사로 보낸 한평생

고교학점제에서는 서술형 평가를 확대한다니, 걱정입니다.

by 꿈강

2025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된다. 교육부에서 공식 발표했다. 학생 선택권을 대폭 확대하고 평가 방식도 크게 변한다. 1학년 때 배우는 공통 과목은 상대평가, 2학년과 3학년에 배우는 선택 과목은 절대평가를 적용한다고 한다. 대학 입학 전형이 어떻게 변화할지 아직 발표되지 않았는데, 만약 대입 전형에 고교 내신성적이 반영된다면 학생들은 상대평가를 실시하는 1학년 때의 공통 과목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2, 3학년 때 배우는, 절대평가가 적용되는 선택 과목은 변별력을 확보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고등학교마다 가급적 시험을 쉽게 출제하여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이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을 수 있게 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고교학점제 하에서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확대한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온전히 서술형 또는 논술형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걱정과 근심이 켜켜이 쌓인다. 과연 지금의 고등학교 상황에서 제대로 된 서·논술형 평가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2025학년도부터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확대하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교사가 서술형·논술형 평가의 대가들이 아니냐고? 내가 겪은 사례들을 이야기할 테니, 판단해 보기 바란다. 내신성적과 관련한 시험에서 논술형 평가를 실시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 서술형 평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양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서술형 평가란 과연 무엇일까?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서술형 평가의 개념을 정의해 보겠다. 대전광역시교육청과 충남대학교 응용교육측정평가연구소가 함께 펴낸 <서·논술형 평가 자료>에서는 서술형 평가를 주어진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분석, 설명, 해석하거나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평가 유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개념 정의에 의하면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단지 기억해서 길게 쓰도록 하는 형태의 평가는 서술형 평가라고 할 수 없을 터이다.


공립 고등학교에 근무하기 때문에, 5년에 한 번 지역 내에서 근무 학교를 옮기게 된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서술형 평가 문항 중, 위의 개념 정의에 부합하는 서술형 평가 문항이 어느 정도 될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후하게 계산을 해도 20%를 넘지는 않을 듯했다. 몇 가지 구체적 예를 들어 보자.


[서술형] 수필의 특성 다섯 가지를 서술하시오. [5점]


5년 전쯤 1학년 국어 시험에 출제되었던 서술형 문항이다. 이 문제를 출제한 교사는 선택지가 없고, '서술하시오'라는 말로 문제를 종결했으니 서술형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연히 서술형 문항이 아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그대로 끄집어내어 쓰면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채점할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수필의 특성 한 가지를 쓸 때마다 1점씩을 부여할 것이다. 제대로 된 서술형 평가 문항이라면 어떻게 부분 점수를 부여할지 채점기준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 문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채점 교사는 매우 편할 터이다. 다음의 경우는 어떤지 생각해 보자.


[서술형] 다음의 네모 칸에 알맞은 말을 넣어 그의 통치 행위의 특성에 관해 서술하시오.

…… □□□ 정책, □□□□ 정책, □□ 정책 등을 통해 우리나라는 후진적인 모습에서 점차 탈피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누가 보아도 서술형 평가 문항이 아니다. 이런 문제 유형을 완성형 평가 문항이라고 한다. 완성형 평가 문항은 서답형 평가 문항에 속한다. 서답형 평가 문항에는 완성형, 단답형, 서술형, 논술형 평가 문항이 있다. 교사들 중 상당수가 서답형 평가 문항과 서술형 평가 문항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완성형 평가 문항을 출제하고도 서술형 평가 문항이라고 써놓기만 하면 그대로 인정되니 말이다.


위의 두 가지 사례는 누가 보아도 서술형 평가 문항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문항이 서술형 문항이라고 버젓이 출제될 수 있었을까? 고등학교에서의 정기고사 문제 출제 과정을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과목 담당 교사가 정기고사 문제를 출제하여 평가 담당 교사에게 넘긴다. 평가 담당 교사가 1차 검토한 다음 평가 담당 부장 교사에게 넘기면 2차 검토를 하게 된다. 그런 다음 교감에게 문제가 넘어가고 교감이 검토를 마치면 교장에게 넘어가 교장이 최종 결재한다. 담당 교사가 문제를 평가 담당 교사에게 넘긴 다음 무려 4차례의 검토 과정을 거쳐 정기고사 문제가 최종 확정된다. 이 정도면 꽤 쓸만한 시스템인데 왜 앞서 말한, 말도 안 되는 서술형 평가 문항이 출제될까? 시스템은 갖추어져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눈에 드러나는 부분에만 신경쓰기 때문이다.


또 우리 도의 경우,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서술형 평가를 수행평가에서 실시하는 것도 허용하였다. 코로나 이전에는 지필평가에 서술형 평가를 일정 비율 이상 출제하도록 하였었다. 그 결과 지필평가에서 서술형 평가 문항을 출제하는 과목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게다가 그 문항이 제대로 된 서술형 평가 문항인지는 따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서술형 평가 문항을 수행평가에서 출제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정기고사는 어쨌든 결재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는데, 수행평가의 서술형 평가 문항은 이런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결재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데, 그 누가 결재를 받으려 하겠는가? 담당 교사가 수행평가 규정에 서술형 평가를 포함시키고 이 규정을 결재를 맡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수행평가의 서술형 평가 문항 자체는 결재 과정이 생략된다는 말이다. 어떤 형태의 평가 문항으로 서술형 평가를 시행했는지, 채점 기준은 어땠는지를 아는 사람은 오로지 담당 교사뿐이다.


물론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의 상황이 이렇다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서술형 평가를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 학교가 더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의 고등학교들과 상황이 비슷한 학교들도 꽤 있지 않겠는가.


고등학교의 평가에서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를 확대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선다형 평가를 없애고 온전히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를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코 짧은 시간에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다. 2025학년도에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에 발맞추어 차근차근히 준비해야만 하는 일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매우 걱정이 된다.


올 8월에 명예퇴직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각 고등학교에서 서술형 평가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예의주시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마땅한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 도의 경우 정기고사 문제를 공개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시험 문제 출력물을 묶어 놓은 형태로 보관하고 있다가 누군가 요청을 하면 보여주는 형태로 공개하고 있다. 학교 외부 사람이 정기고사 문제를 보기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개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하는 지역 내 고등학교는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걱정에 걱정이 더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의 상황이 이렇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서술형 평가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된 서술형 평가 문항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고등학교가 더 많으리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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