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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Dec 11. 2023

<파이터>(2011)

배면 뛰기

  <신데렐라 맨>(2005)의 짐 브래독(러셀 크로우 분)은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으로서 권투를 했다. 그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자식이었다.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누구든 어른이 되고야 만다. 브래독에게는 어느새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에게 권투는 한밑천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브래독은 권투 선수로서 그럭저럭 성공했다. 그러나 프로타고니스트에게는 언제나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브래독은 잇단 패배와 부상으로 권투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는 선착장에서 막일을 해서라도 가족을 부양해내야 했다. 하지만 꿈은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브래독은 챔피언이라는 꿈을 단념하지는 못했다. 아내는 그걸 알고 있었고, 묵묵히 브래독을 응원했다. 프로타고니스트에게는 언제나 시련이 지나간 자리에 기회도 있기 마련이다. 브래독은 우연히 좋은 대진 기회를 받았다. 그 시합에서 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승리를 거뒀다. 부둣가에서 일하는 동안 단련되어 버린 왼손 덕분이었다. 

  <신데렐라 맨>과 <파이터>(2011)는 닮은 점이 많다. 물론 권투를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의 서사가 다 거기서 거기지 않느냐는 불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서사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말한 건 환경이었다. <파이터>의 미키 워드(마크 월버그 분)도 가족들을 부양하는 가장으로서 권투를 했다. 그도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자식이었다. 그에게도 권투는 한밑천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하지만 한 꼭지가 달랐다. 미키에게는, 브래독의 아내처럼, 그를 묵묵히 응원해 주는 가족이 없었다. 


  <파이터>는 미키라는 권투 선수의 성장기다. 그런데 그곳에는 만만치 않은 비중을 갖는 가족이라는 문제가 있다. 미키의 형 디키 에클런드(크리스찬 베일 분)는 과거 당대 최고의 권투 선수 슈거 레이 레너드를 녹다운시켰다는 자부심 하나로 사는 마약중독자였다. 어머니는 몇 번 남자를 갈아치운 가족의 실세였다. 그녀가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했다. 변변한 직업도 찾지 못한 일곱 누나도 있었다.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건 미키뿐이었다. 

  미키는 혹사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아일랜드는 그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여러 번의 침략을 받았다. 1922년에 독립, 아일랜드 공화국이 되기 전까지는 700년이 넘도록 영국의 식민지이기도 했다. 이로써 아일랜드인은 독특한 국민성을 보인다. 그중 하나가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다. 미키가 처했던 상황은 부조리했지만 누구도 저항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아버지만이 미키를 가여워했다. 그러나 그는 새아버지였고, 이방인이었다.


  미키에게는 전처와 딸도 있었다. 열명 남짓한 가족이 미키의 주먹에 매달려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권투 선수로서의 투지, 자신감보다는 고단함, 무기력함이 서려 있었다. 그래도 미키의 주먹은 쓸만했다. 가족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재능을 안타까워했다. “미안하지만 디키는 골칫거리야. 자신을 위해서 옳은 결정을 해. 디키 덕 본 게 뭐가 있어?” 그러나 가족들은 미키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가족 외에는 믿으면 안 돼. 모르는 사람이잖아”. “형이나 가족이랑 떨어져서 어쩌려고 그래?” 미키는 그렇게 제 발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렇게 말했어요”. “가족과 로웰에 있겠다고 했죠”. 

  그런데 미키가 샬린 플레밍(에이미 아담스 분)을 만나고, 그 울타리에도 개구멍이 생겼다. 어머니가 강행한 시합에서 몇 체급 높은 상대에게 두들겨 맞은 미키는 크게 좌절했다. 그는 샬린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집으로 숨어들었다. 샬린이 미키를 찾아왔다. 그녀는 주눅 들어 있는 그를 꾸짖었다. 미키는 그제야 속내를 털어놓았다. “시합 이기고 재기할 거라고 큰소리치고 큰 집으로 이사한다고 딸애한테 약속까지 했어”. “실패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 샬린은 가족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물었다. “가족이 널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미키가 답했다. “가족은 건드리지 마”. 그래도 샬린은 미키의 얼굴에 난 상처를 어루만졌다. 둘은 그대로 입을 맞췄다. 

  미키는 그날로부터 몇 주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누나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샬린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미키가 샬린과 체육관에 있을 때 가족들이 들이닥쳤다. 엄마는 미키의 다음 시합을 잡았다고 말했다. 2만 달러짜리 시합이었다. 미키는 소심한 반항을 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는 싫어”. “로웰에서 가족끼리 이러는 거요”. 당연하게도 가족들은 아우성을 쳤다. 그곳에는 디키도 있었다. 샬린이 디키에게 말했다. “당신이 훈련 시간에 맨날 늦고 공항에 가야 할 시간에 약쟁이 소굴에 처박혀서 동생이 찾아오게 만드는 거요”. 가족들의 아우성은 그칠 줄을 몰랐다. 미키는 침묵했고, 샬린은 맞받아쳤다. 

  미키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일평생 디키의 지도를 받아왔다. 디키는 과거 유망한 권투 선수로서 로웰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한낱 마약중독자일 뿐이었다. 디키를 향한 마을 주민들의 평가는 양분되었다. “디키 덕분에 로웰이 알려졌죠. 슈거 레이를 다운시켰잖아요”. “내 생각엔 그냥 미끄러진 거야”. “디키 때문에 로웰이 30년은 퇴보했어요”. 하지만 디키는 미키의 영원한 영웅이었다. 미키는 디키의 타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디키는 또 한 번 멍청한 선택을 했고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디키를 지키려는 미키의 오른손을 곤봉으로 내리쳤다. 미키는 권투 선수였고, 오른손잡이였다. 미키는 디키에게 말했다. “이게 날 위한 거라고? 그럼 부탁인데 앞으로 아무것도 하지 마. 이제 거짓말도 지쳤어”. 

  미키는 새 훈련캠프를 꾸렸다. 샬린도 합류했다. 미키가 엄마와 디키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조건이었다. 샬린은 과거 높이뛰기 선수였다. 그녀는 미키에게 배면 뛰기를 보여주곤 했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무명 높이뛰기 선수 딕 포스베리가 처음 배면 뛰기를 선보였다. 당대 육상 전문가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포스베리는 배면 뛰기로 신기록을 세웠고, 그것은 이내 높이뛰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포스베리는 배면 뛰기에 성공하기까지 숱한 실패를 겪었다. 그때마다 그는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건 터무니없는 두려움이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다음 패러다임이 있다. 샬린은 그걸 알고 있었고, 미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미키는 가족의 울타리 바깥에서 차근차근 연승을 쌓고 있었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그는 디키를 찾아갔다. 디키는 구치소에 있었다. 그는 미키의 소식을 듣고 군소리를 늘어놓았다. 미키는 또 한 번 실망했다. 그는 말했다. “형은 내가 될 수 없어. 이미 멋대로 살면서 기회를 날려 먹었지. 그래서 여기에 있는 거고”. 디키가 말했다. “네 방식은 잘못됐다고, 이 등신아”.


  자리를 박차고 돌아가는 미키를 보고도 디키는 우려 섞인 경고를 멈추지 않았다. 시합 날이 왔다. 상대는 강했고, 미키는 고전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디키에게 전화로 시합을 중계하고 있었다. 디키는 섀도복싱을 하고 있었다. “머리, 몸, 머리!” 디키가 소리쳤다. 몇 라운드가 지나갔고, 어느새 미키는 훈련캠프의 전략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머리, 몸, 머리였다. 결국 미키는 승리했다. 시합이 끝나고 그는 승리를 축하하는 관계자에게 말했다. “형한테 제일 먼저 배운 거예요. ‘머리, 몸, 머리’”.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아레테의 발현으로 정의한다. 아레테는 일반적으로 덕, 탁월성, 훌륭함 등으로 번역되는 용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여러 아레테 중 신체의 아레테가 발현되는 사례를 열거한다. 건강, 미, 강함, 크기, 운동 경기에서의 능력 등이 있는데, 그는 권투 선수의 아레테에 관해서도 짧게 말한다. “주먹으로 서로에게 일격을 가하며 치고받는 것을 잘하는 사람은 좋은 권투 선수이다”. 그런데 사실 아레테는 단일 개념으로서는 불완전하다. 아레테가 탁월성, 훌륭함 등으로 발현되려면 테크네의 도움이 필요하다. 테크네는 일반적으로 기술로 번역되는 용어다. 권투 선수의 테크네는 전략 전술이다. 권투 선수가 시합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감독, 코치의 전략이 필요하다. 디키는 일평생 미키를 지도해 왔다. 그가 지금은 마약중독자일지라도 과거에 유망한 권투 선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미키는 결국 디키의 테크네로 돌아갔다. 그건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굴레였다. 


  미키의 시합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키가 출소했다. 디키의 치아가 하얗게 돌아왔다. 디키는 구치소에서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는 그 다큐멘터리가 슈거 레이 레너드를 녹다운시킨 로웰의 자랑을 다룬 이야기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유망했던 권투 선수가 마약중독자로 전락해 버린 이야기였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카메라로 기록한 현실을 편집으로 통제한 결과물이다. 가족의 울타리 바깥에서 디키는 더 이상 로웰의 자랑이 아니었다. 디키에게 그것은 적잖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디키는 출소 기념 케이크를 들고 마약중독자들을 찾아갔다. 그는 케이크를 그들에게 주고 홀연히 떠났다. 


  디키는 미키를 찾아갔다. 그는 옛날처럼 미키와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샬린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디키를 위시한 가족들과 샬린은 재차 물고 뜯었다. 사실 미키에게는 그들 모두가 필요했다. 디키는 미키의 아레테를 발현케 하는 테크네였고, 샬린은 미키의 새 삶을 가능케 한 사랑이었다. 샬린이 물었다. “디키가 필요해?” 미키가 답했다. “그래. 난 너도 필요하고”. 하지만 샬린은 떠나버렸다. 그런데 샬린을 붙잡은 건 미키가 아닌 디키였다. 

  디키는 샬린의 집을 찾아갔다. “나 때문에 떠나면 안 돼. 미키는 잘못 없잖아. 그러니 네가 관두라면 관둘게”. “미키는 뭔가를 이뤄낼 기회를 얻었어. 나한테 없었던 기회지”. “난 일을 바로잡고 싶어”. 디키는 사랑을 호소하고 있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샬린의 마음이 동했다. 디키는 그렇게 떠났던 미키의 새 훈련캠프 인원을 차례로 붙잡았다. 그는 미키에게 물었다. “넌 내가 슈거 레이를 다운시켰다고 생각해?” 미키가 답했다. “최고 선수 상대로 10라운드까지 싸웠잖아. 형은 내 영웅이었어”. 디키가 말했다. “그랬지. 한때는 말이야”. 그는 조금씩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미키의 타이틀전이 왔다. 미키는 역시나 고전했고, 결국 승리했다. 디키는 미키의 세컨에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처럼 슈거 레이랑 붙은 거로 만족할래? 난 이기지 못했지만 넌 할 수 있어”. “너와 나, 로웰을 위해서. 네가 주인공이야. 나처럼 기회를 날리지 마. 알았지? 그러니까 일어서서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고생했던 날들을 떠올리면서 링에 전부 쏟아부어. 오늘 주인공은 너야. 알겠지? 머리, 몸, 머리야. 따라 해”. “명심해. 주인공은 너야”.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건 터무니없는 두려움이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다음 패러다임이 있다. 그러나 다음 패러다임이 있다고 해서 이전 패러다임의 쓸모가 다하는 것은 아니다.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고, 어쩌면 벗어나지 않아도 좋을 과거의 굴레가 있다. 미키에게 디키가 그랬다. 전략은 잔꾀 따위가 아니다. 감독은 온 마음으로 선수를 위한 전략을 만들고, 선수는 온몸으로 그 전략을 위한 훈련을 거듭한다. 권투가 야만적이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그 발놀림, 손놀림에 온 마음, 온몸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이 타락했다고 해서 과거의 전략까지 퇴색되는 건 아니다. 부모가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과거의 사랑까지 퇴색되는 건 아니니까. 머리, 몸, 머리. 그것은 벗어나지 않아도 좋을 과거의 굴레였고, 미키는 그렇게 챔피언이 되었다. 

  다음 패러다임이 있다고 해서 이전 패러다임의 쓸모가 다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이전 사람의 쓸모가 다하는 것도 아니다.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고, 어쩌면 벗어나지 않아도 좋을 과거의 사람이 있다. 나에게 누군가가 그랬다. 사랑은 잔꾀 따위가 아니다. 그 사람은 온 마음으로 나를 위한 사랑을 만들었고, 나는 그 사랑을 위한 연습을 게을리했다. 이별이 야만적이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우리의 족적에 그 사람의 온 마음, 온몸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타락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사랑까지 퇴색되는 건 아니다. 잔꾀를 부린 건 나니까. 그 사람은 벗어나지 않아도 좋을 과거의 사람이었고, 나는 그렇게 패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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