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겨울과 빛나는 크리스마스

베를린에서 겨울나기

by 실비

독일의 겨울, 특히 베를린의 겨울은 솔직히 말해서 끔찍하다.


처음 베를린에 왔을때의 겨울 공기는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어디선가 섞여오는 낯선 탄냄새, 습하고 우중충한 공기, 잘게 갈라진 구름들이 낮게 깔려있는 하늘..그런것들.(나중에 알게된 것: 근처에 있던 템펠호퍼공원에는 바베큐 구역이 있었다.)

그런 회색빛의 날씨는 겨울 내내 지속된다.


찬란한 여름과 짧은 가을이 지나고 나면, 크리스마스 마켓만이 그 어두운 계절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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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역이나 슈네베르크 지역에 가면 가로수나무는 이렇게 꼬마전구로 휘황찬란하게 변신한다. 이 시기에 일부러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한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니. 이번 글에서는 독일의 연말 분위기를 공유하려고 한다.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설날처럼 중요한 명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 긴 휴가를 가진다. 나 역시도 지난 크리스마스들은 한국인 친구들이나 학교 친구들과 함께 모여 복작복작하게 보내왔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떨어져있던 첫 해의 12월에는 여전히 독일어 공부때문에 휴관일 직전까지 도서관에 다녔는데, 그 당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검은머리 아시아 유학생들이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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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한껏 이런 명절 분위기가 난다.

Gendarmenmarkt나 Charlottenburg 궁전의 마켓 등 베를린에서 유명한 마켓들이 있는데 이중 몇몇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며 항상 사람이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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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음식, 수공예품, 그리고 장식품들이 가득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꼭 사마시는 것 하나는 글뤼바인(Glühwein)이다. 뜨거운 와인에 계피나 레몬을 첨가한 음료인데, 어쩐지 이걸 마셔야만 그 해 겨울을 제대로 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해마다 다른 디자인의 글뤼바인용 머그컵이 나오는데, 맘에드는 디자인이 있다면 글뤼바인을 사 마시고 판트를 안하는 대신 컵을 기념으로 가지고 있을수도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또 하나의 축제인 Silvester Party가 기다리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독일의 모든 곳에서 폭죽과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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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면 정말 장관이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폭죽을 사용하기도 해 위험하기도 하다. 매년 첫날만 되면 다친사람들, 체포된 사람들, 폭동에 대해 기사가 뜨니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시기가 지나고 나서 이런 날은 가급적 집, 혹은 집과 가까운곳에서만 불꽃놀이를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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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Bleigießen을 해보았다.

이건 새해의 운세를 점치는 전통인데, 작은 납을 녹여 찬물에 붓고 그 모양으로 새해의 운세를 점치는 것이다.

그래서 한 해를 보내고 이 운세가 맞았냐 하면...어떤 친구들은 정말 신기하게도 운세가 말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고, 나는 내 운세를 기억하지 못해서 알지 못하겠다.

프랑크푸르트에 살 때에는 포르투갈인 친구와 서로의 언어로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일도 해봤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모르고 친구는 한국어를 모르니 서로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었다.


IMG_5060.JPG 친구가 직접 구운 쿠키
D8242F83-BA1B-4986-83C2-7AE29958E4BB_1_102_o.jpeg 한국인 친구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독일의 겨울은 춥지만 12월과 1월은 이런 이벤트들과 함께 친구들과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나름대로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올해에는 다행히 여유가 생겨 한국에서 가족들과 연말을 보낼 수 있었다.(겨울에도 해를 볼 수 있는게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니!)

몇년만에 한겨울을 서울에서 보내게 되니 한국과 독일의 연말을 같이 즐길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다음 크리스마스에는 나도 적당한 크기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서 예쁘게 꾸밀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생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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