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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처럼 여행하기

인생을 바꾸는 여행

by 실비
Johann_Heinrich_Wilhelm_Tischbein_-_Goethe_in_the_Roman_Campagna_-_Google_Art_Project.jpg Goethe in the Roman Campagna, 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


독일의 대 문호 괴테는 어릴 적부터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것이 소망이었다. 아버지가 사온 곤돌라 모형과 이탈리아의 예술을 접하면서 30대가 될 때까지 그것을 버킷리스트로 삼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세 시에 괴테는 방을 몰래 빠져나와 이탈리아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싣는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그가 여행하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태로, 거의 매일같이 얻은 인사이트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여행기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괴테의 삶을 뒤흔들 만큼 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영감을 얻었고, 그 경험은 그의 작품과 사고방식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여행기를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행하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쳐 올랐다. 그냥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도 그처럼 도시를 면밀히 살피고 관찰하며 영감을 느끼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책을 읽으며, 그의 여행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여행이 단순한 관광을 넘어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되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고민해 보았다.



첫 번째. 기록

괴테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거의 매일같이 기록을 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기록일 뿐 아니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독자들은 날씨, 거리의 풍경, 건축물, 사람들의 모습까지 함께 상상하며 여행을 따라갈 수 있다.


또한 괴테는 글뿐만 아니라 여행지에서 수많은 스케치를 하면서 풍경을 눈으로 담으려 노력했다. 여행에서 음식이나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길거리의 풍경, 건축물, 자연, 그리고 하늘 등을 이미지로 담아두면 더 좋을 것이다. 이를 보며 나도 여행지에서 단순한 인증 사진이 아니라, 거리의 분위기나 순간을 더 깊이 담는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여행사진들을 되돌아보니, 길거리나 건축물보다는 음식 사진이나 클로즈업한 사진이 많아 아쉬움이 남았다.


두 번째, 문화차이로 오는 에피소드

여행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의 여행기에서는 여행지에 대한 묘사뿐 아니라 간간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그중 재미있었던 일은 괴테가 스케치를 하기 위해 버려진 성곽에 올라 그림을 그리고 있던 때였다.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괴테는 단순히 그림 그리는 것을 구경하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는데, 알고 보니 보안상의 이유로 그 성을 그리는 것은 불법이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영주까지 나타나서 그를 체포할것인지 아닌지 한바탕 토론에 가까운 해명을 해야 했다.


Goethe's (torn) drawing of the castle of Malcesine..jpg
Malcesine, Castello Scaligero. by H. Zell.jpg
Goethe's (torn) drawing of the castle of Malcesine.(왼쪽), 괴테의 스케치 각도에서 찍은 성의 사진(출처: H. Zell.)


흥미로운 점은, 괴테가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까지 유쾌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는 영주를 "둔탁한 생김새만큼이나 멍청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고, 몰려든 사람들의 얼굴을 "새떼들의 합창단 같다"고 묘사했다. 그의 실제 성격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구절이었다. 동시에 그때의 아찔한 상황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의 에피소드를 읽고 나니 나도 한가지 떠오르는일화가 있었다. 처음 독일을 여행하던 때, 독일의 층수 세는법은 한국과는 다르게 땅층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2층이 독일에서 1층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 층계에 숫자표시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세면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혼란스러운 점이었다. 그날따라 일정을 다 소화하고 꽤나 늦은 밤중이었고, 핸드폰은 이미 꺼졌기에 나는 대강 기억한대로 집을 찾아갔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열쇠가 잘 맞지 않았고 혹시나 집주인이 잠들어서 노숙을 하게 될까봐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문이 열린 순간 웬 화난 아저씨가 야구배트를 들고 튀어나오는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내가 단순히 집을 잘못 찾은 관광객임을 보고 약간 안심한듯하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미친듯이 사과하고는 한층을 더 올라가 겨우 내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다음날 집주인에게 이웃한테 민폐를 끼친것같다고 전날의 일을 털어놓자 웃음을 터트리며 그 이웃은 자기의 고등학교때 수학선생이었으며 평소 알고지내는 사이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었다.



세 번째, 관찰, 자연환경과 지역 사람들을 관찰하고 소통해보자.

괴테의 여행기에는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는 날씨와 하늘, 식물, 거리 풍경을 비교하며 독일과 이탈리아의 차이를 기록했다. 심지어 도시의 건축물에 쓰인 암석의 종류까지 관심을 가졌다.


여행지에서 단순히 유명한 명소만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분위기, 사람들의 옷차림과 행동을 관찰해보자. 특히 지역 주민들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적다면, 최소한 현지의 슈퍼마켓이나 시장을 방문해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같은 도시라도 지역에 따라 분위기와 스타일이 다르듯, 여행지에서도 그런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 안에서도 구역에 따라 옷차림이 달라진다. 마치 홍대-강남과 베를린 미테지역 - 크로이츠베르크처럼 말이다.



네 번째, 여행을 지적 탐구 과정으로 만들기

사진과 실제는 다르다.

괴테는 여행지를 직접 경험하며, 자신의 기대와 현실을 비교하는 과정을 즐겼다.


몇 년 전 나는 파리를 방문하며 특별한 기대 없이 에펠탑을 보러 갔다. 사진으로, 예술작품으로, 영상으로 지겨울 만큼 보아와서 나에게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건물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거대하게 자리 잡은 에펠타워를 보고 한순간 나는 입을 떡 하고 벌리고 그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학부 시절 연구했던 베를린의 '쿨투어브라우어라이'는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웠다. 겨울이긴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는 것 같지 않았다. 문화 공간은 맞았지만 나는 조금 더 활기차고 젊은 느낌의 문화공간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행을 떠나기 전, 충분한 사전 조사를 하고 나만의 기대와 가설을 세워보는 것도 흥미로운 방법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그 기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보는 과정이 여행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괴테의 여행기를 읽으며, 단순히 '어디를 갈 것인가'보다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기록하고, 관찰하고, 최대한 열려있는 날카로운 감각으로 새로운 것들을 면밀하게 관찰해보는 여행. 예기치 못한 사건을 즐기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여행. 그것이야말로 괴테가 보여준 '인생을 바꾸는 여행'이 아닐까?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다음 여행에서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지 고민해보며 '괴테 되기' 를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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