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샤워로 살아남기

찬물 샤워와 '제레미 레너'의 상관 관계

by 김민혁
찬물 샤워는 합법적이고 몸에도 좋은 마약..?


'도파민 어쩌구'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첫 주제가 찬물 샤워라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진부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도파민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큰 용기를 내며 매일 하고 있는 행동이기에 여러분들의 예상되는 비난을 무릅쓰고 이 글을 써나가야 겠다. 책과 유튜브 등 '도파민 중독'에 관한 온갖 콘텐츠와 정보들을 접하고 난 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찬물 샤워였다. 도파민 중독에 대해 역설하는 수많은 전문가들과 사짜들은 입을 모아 찬물 샤워의 효과에 대해 강조한다. 아니 그다지 와닿지는 않는다. '스마트폰 하지 마라' '독서를 해라' '단 음식을 먹지 마라' '유산소 운동을 해라' 등등 어디선가 친숙하게 들어온 각양각색의 정석적인 잔소리들 사이에 '찬물 샤워를 해라!'가 끼어있다니. 마치 절밥 위에 올려진 스테이크처럼 단번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그래서 찬물 샤워를 해야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더 가관이다. 찬물 샤워를 하면 도파민이 담배나 마약을 이용한 정도로 증가한다고 한다. '엥? 그럼 몸에 나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찬물 샤워는 담배나 마약과는 다르게 도파민이 급격하게 감소하지 않아 뇌와 신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정리해보자면 찬물 샤워가 합법적이고 몸에도 좋은 마약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래도 살만큼 살면서 얻은 이런저런 깨달음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판단해보건대, 상당히 의심스럽고 못 미더운 주장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단 속는 셈치고 한번 해보기로 한다.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큰 수고가 드는 일도 아니니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가스 비용이 덜 지출되는 행위이기는 하다.


처음으로 찬물 샤워를 시도한 날은 그리 춥지 않은 가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여름날에도 늘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는 사람으로서 가을에 찬물로 샤워하는 것은 큰 도전이다. 일단 샤워기 수전 손잡이를 찬물에 위치시켜 놓고, 샤워기 헤드는 몸쪽으로 위치시켜 놓고, 물을 '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나 자신과의 기싸움을 펼친다. 마음 속으로는 수없이 결단을 내리고 '하나 둘 셋!'을 다섯 번째쯤 외쳤을 때 쯤 홧김에 물을 틀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확실히 마약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은 아니었다. 마약은 커녕 담배를 피워본 적도 없지만, 마약이 이런 느낌이라면 그 누구도 많은 돈을 들이고 위험을 감수해가며 하지 않을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생각들은 샤워를 마치고 한참 후에 든 생각이다. 찬물에 노출되어 있을 당시에는 그냥 '이 찬물들이 내 몸에 닿는 것을 최대한 빨리 멈춰야 해!!'라는 생각만 들었다. 군대 혹한기 훈련 이후 처음으로 추위에 의해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꼈달까. 하지만 얼렁뚱땅 샤워를 마치고 -찬물 샤워에 또 다른 장점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샤워 시간이 줄어들고 물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왔을 때에는 확실히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확실히 평소 일반적인 샤워 이후보다 기분이 훨씬 상쾌했다. 정확하게 어떻게 묘사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샤워를 마친 뒤의 개운함과 상쾌함이 마치 목욕탕이라도 갔다온 날처럼 꽤 오래 갔다. 와! 혹시 이것이 그들이 입을 모아 칭손한, 그 위대한 도파민의 안정적인 상승과 안정적인 하락인 것인가? 내가 이 간단하지만 엄청난 효과를 지닌 활동을 여태 모르고 살았다는 것인가? 왜인지 오늘 하루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엄청나게 솓구쳤다. 왜인지 반팔을 입고 밖에 나가도 하나도 안 추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인지 15분 정도 걸리는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길이 5분 정도로 느껴졌다. 왜인지 지하철을 타고 도착역까지 서서 가더라도 다리가 전혀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회사에 도착하고 바로 '찬물 샤워는 너무 고통스러우니 내일부터는 하지 말자'라는 결심을 하였다. 결심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찬물이 내 몸에 처음으로 끼얹어 졌을 때의 감각이 뇌리에 너무 선명하여 그 고통의 참호 속에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소 일주일 이상은 해야 찬물 샤워에 적응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인간들이 뭐라고 말했건 그건 크게 상관없다. 그 찬물의 고통을 일단 피하는 것이 내 인생에 더 낫다. 전문가라는 작자들은 원래 하라는 것도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고 남의 인생에 끊임없이 참견하려는 속성을 지녔다. 그들이 하란 거 다 하고, 하지 말란 거 다 안 하면서 살면 일반 직장인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전세계 사람들 사이에 널리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명제임은 너무나도 자명하니 말이다. 적당히 걸러 들은 건 걸러서 들어야 한다.


그렇다. 나는 '찬물 샤워'라는 전쟁에 중독되어 버렸다.


나는 그렇게 상당한 도파민과 함께 전문가들에 대한 약간의 깨달음과 진리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음날이 되고 또 다시 샤워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렇게 수전 손잡이를 따듯한 물 쪽으로 슬금슬금 돌리려고 하는 그 순간... 왜인지 또 다시 찬물 샤워가 하고 싶어졌다. 그 근원은 스스로도 정확하게 짚어 내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디에선가부터 찬물 샤워를 해야 한다는 충동과 오기와 객기가 무지하게 치솟아 올랐다. 경험이 있으니 두 번째에는 찬물 샤워가 편하게 느껴졌다던지 별 거 아니게 느껴졌다던지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여전히 하기 싫었고 추웠고 찬물을 틀었을 때 덮쳐 올 미래의 고통이 이미 전두엽 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 속 어딘가에 사는 또 다른 내가 찬물 샤워를 해야 한다고 나를 꼬드기고 있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 <허트 로커> 속 제레미 레너는 미군에 속해 있는 폭발물 처리반 (EOD) 요원 '윌리엄 제임스'역을 맡았다. 그는 이라크에 파병을 갔다가 수많은 임무 속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를 하루가 멀다하고 겪는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채 파병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오지만 그는 어딘가 자꾸만 허한 감정을 느낀다. 결국 그는 얼마 버티지 못 하고 갓난 아들을 본국에 내버려 둔 채 또 다시 '전쟁의 스릴'을 느끼기 위해 또 다시 파병을 떠난다. 그날 수전 손잡이를 다시 찬물 쪽으로 돌리던 나의 심정이 <허트 로커> 속 그의 심정과 흡사했다고 말하면 여러분들이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 나는 '찬물 샤워'라는 전쟁에 중독되어 버렸다. 다시는 겪기 싫었던 고통과 스트레스가 그곳에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이라크행 비행기에 다시 올라탄 그 남자처럼 나도 찬물을 내 몸위로 또 다시 끼얹었다. 그리고 곧바로 온 몸으로 고통을 느꼈고 곧바로 후회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 제레미 레너도 이라크 땅을 다시 밟는 그 찰나에 바로 후회했으리라. 하지만 우리 둘다 그 고통과 후회를 너무나도 잘 예상하고 선택한 행동이다.


나는 그 날 이후로 거의 매일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있다. -거의 매일인 이유는 샤워를 아예 안 한 날도 있어서 그렇다. 정말 태어나서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샤워를 하신 분이 있다면 그분들만 나의 위생 상태에 돌을 던지시라- 책에서는 언젠가 익숙해지고 찬물 샤워가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라 했는데 나에게는 전혀 그런 것은 없다. 매번 샤워기를 붙잡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꼭 해야 하는 것인가?' 진심으로 고민한다. 가끔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혹은 그날따라 기분이 꿀꿀해서 스스로와 타협을 하고 따듯한 물로 샤워를 시작한 적도 왕왕 있다. 하지만 그 따듯함 속에서 잠시 행복하다가도 찬물이란 전쟁터가 '먼 북소리'를 내며 어디선가 자꾸만 나를 불러온다. '찬물이 나를 필요로 해!' 그 먼 북소리는 내가 따듯한 물과 화장실을 채운 허연 김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음을 계속해서 일깨워 준다. 그리고 어느새 내 손은 다시 수전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그날도 날씨나 기분 따위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승리감과 특유의 상쾌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화장실을 나왔다.


무진장 하기 싫은 걸 자발적으로 하고 나니 그 이후에는 뭘 하든 더 재밌고 즐겁게 느껴졌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뇌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이 되고 도파민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솔직히 신체적으로는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지는 전혀 모르겠고 심적으로는 분명하게 느끼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 앞에서도 조금 밝혔지만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 승리감이다. 고작 이런 거에 뭐 얼마나 성취감이나 승리감을 느끼겠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것 같다. 하지만 하고 난 뒤에는 '고작 이런 거'일 수도 있지만, 매번 매순간 하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일'이다. 사소한 것임은 분명하고 미련한 호승심이나 오기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랬건 저랬건 그걸 해낸 뒤의 성취감은 생각보다 훨씬 달콤하다. 내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혼자 추론한 바에 따르면, '도파민 인플레이션'은 대부분의 경우 내가 하기 싫은 것은 안 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서 생기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하기 싫은 찬물 샤워'를 인위적으로라도 삶의 한 가운대에 우겨 넣어 보는 것이다. 성취감은 개인차가 있을지 몰라도 그 다음날의 따듯한 물 샤워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최소 나같은 경우는 그랬다. 일단 무진장 하기 싫은 걸 자발적으로 하고 나니 그 이후에는 뭘 하든 상대적으로 더 재밌고 즐겁게 느껴졌다. 하기 싫은 것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찬물 샤워도 그 중 하나지만 그래도 다른 것들에 비하면 완전 해볼만하지 않나?



이렇게 허장성세로 가득찬 글을 쭈욱 늘어놓은 뒤에 덧붙이기는 민망한 내용이지만 사실 나도 샤워를 하는 내내 시종일관 찬물로만 샤워를 하지는 않는다. 그건 사실 너무 고통스러울 뿐더러 샴푸나 비누의 거품이 잘 나지도 않고 잘 씻겨진 기분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찬물로 면도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다치기도 쉽기 때문이다. 의도했건 안 했건 '매일 오직 찬물로만' 샤워한 척 한 게 조금 양심에 찔리기도 하고, 무작정 찬물 샤워를 시작하시기 두려우신 분들에게 나만의 팁도 공유할 겸 나만의 찬물 샤워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굳이 이런 TMI가 필요하지 않으시면 과감하게 넘기셔도 좋다- 일단 첫 1분 정도는 짜릿한 고통을 느끼며 찬물을 온몸 구석구석에 끼얹어 준다. 그리고 온몸이 -나아가 뇌까지- 찬물을 충분히 느꼈다 싶을 때쯤 적당히 따듯한 물을 튼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머리를 감고 몸에 비누칠 하고 면도를 하고 등등 각자 해야 할 일을 다 한다. 그리고 다시 30초 정도 더 차가운 물로 몸 전체를 헹거주며 샤워를 마무리 한다. 뭐 이 방법의 기반에 별 과학적 근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이렇게 한다고... 고해성사 겸 단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사족을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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