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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 Dec 31. 2023

줄리엣과 줄리엣

꽉 닫힌 결말

2024년을 맞이하기 전에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써서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건 이 추억을 마음 편히 잊는 것이다. 슬픈 추억이었느냐 질문을 받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고 대답할 수 있다. 기쁜 일이 서러운 추억의 씨앗이 되었고,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구름이 되어 새로운 행복을 보슬보슬 내렸다. 단지 이걸 써서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인생의 1막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다. 또한 이 3개월간의 사건이 그 뒤의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있어서 한 번쯤은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었다(물론 내 소울 메이트는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괜찮다. 내 마음이 편하고자 적는 것일 뿐이니.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 하기에 상대방의 이름이나 내 이야기의 세부사항은 대충 둘러댈 것이다. 그리고 민감한 묘사가 있을 수 있다. 그 점은 주의해 주시길.





중학생의 앳된 티를 벗고 2학년이 된 나는 새로운 동아리 부원을 모집해야 했다. 학교 벽면에 어설픈 포스터를 붙이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동아리 홍보를 했다. 어떤 신입이 들어올까 괜스레 으쓱거리게 되는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은 지겨운 것이어서, 난 항상 학교가 끝나면 날듯이 집으로 돌아가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버디버X에 접속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가방을 내던지고 한창 대화를 즐기고 있는데 모르는 아이디의 사람이 갑자기 메시지를 보냈다. 내 친구에게 내 아이디를 물어봤다는 그는 예의 바르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는 내가 있는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이렇게 직접 문의하는 사람은 처음이라서 나도 좀 당황했었다. 그래도 나름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고 거기서 끝날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고, 다음 날 만나자는 약속도 잡아버렸다.


다음 날 만난 그 아이는 나와 비슷한 키에, 안경이 잘 어울리는 애였다. 낮은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수줍음이 느껴졌는데 그러면서도 나름 강단 있어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초등학생 때는 전교회장도 했다고 한다. 씩 웃으며 다가와 내게 지원서를 내밀었다. 나는 그 신청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글씨체도 단정했다. 이 친구와 함께 동아리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끊어질 것 같았던 연락은 그가 동아리에 들어오면서 더욱 잦아졌다. 메신저 프로그램에 이어서 핸드폰으로도 연락을 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의 나는 폰이 없어서 모친의 것을 대신 사용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애는 정말 뜬금없이도 고백을 해 버린다. 지금도 미스터리지만 대체 내 어디가 좋아서 고백을 했던 걸까?


갑자기 고백을 받아서 당황하긴 했는데 싫지는 않았다. 귀엽게 선배 선배 해대는 걸 보면 누구라도 혹할 상황이었으니까. 이 고백에 대해서 나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좋아한다는 감정도 없었다. 그래도 상대가 상처받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승낙했다. 그날부터 그는 내 방 창문이 보이는 곳에 매일같이 달려와서 나와 이야기를 했고, 아침에는 나와 함께 등교하겠다고 집까지 찾아왔다.


나와 그, 우리는 행복했다. 공부를 하면서 나누었던 정담이라던가. 가끔 그의 집으로 가서 단 둘이 밥을 먹었는데, 내가 괜히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밥 먹을 때까지는 스킨십 금지라고 해서 난 못 이기는 척 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던지, 동아리 부원들과 같이 영화관에 가면 언제나 내 옆에 앉겠다고 우긴다던지, 영화를 보랬더니 내 손을 잡고 만지작거린다던지, 하루종일 곁에 붙어 앉아 만화책을 본다던지, 그런 소소한 것들을 함께 말이다. 연애 초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게 늘 같이 붙어있다 보니까 마음이 생기더라. 이렇게 달콤한 일들만 생겼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위기는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보통의 커플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편지교환을 자주 했는데 난 받은 편지를 나 말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뒀다. 아무래도 들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나는 굳이 상대방에게 편지를 숨기라느니 말라느니 그런 지시는 해 두지 않았다.


운명의 날이 다가오기 며칠 전, 평소와 다름없이 그는 아침이 되자 나와 함께 등교하려고 내 방까지 들어왔다. 그런데 유난히 나를 꼭 껴안고 놓아주지를 않는 것이었다. 내가 이유를 물을 새도 없이 그는 슬픈 눈을 하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곧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내 귓가를 스쳤다. “할머니가 편지를 읽었어요” “그래서 조만간 찾아갈 거래요”

내가 급박한 상황이어도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간다. 그날은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끝났다.

그 주의 주말 동안, 나는 책을 보는 동생들을 멍하니 보면서 이대로 도망갈까? 어디로 숨지? 그냥 죽는 게 나으려나?라는 생각만을 반복했다.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내 감정과 선택을 후회해야만 하는 이 순간이 너무도 끔찍했다.


지옥의 4자 대면이 시작되었다. 나는 모친과, 그는 그의 조모와 우리 집 식탁에 앉았다. 공기가 이렇게까지 무거워질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쉬기 힘들었다. 나와 그는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하던 채 울기만 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모친은 아주 비련의 사랑 납셨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둘이 사랑한다면 원룸 얻어줄 테니까 나가서 살라고, 대신 돈은 주지 않겠다고도 했다. 보호자들끼리 뭐라 이야기를 하는 소리는 들리는데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영겁 같은 시간이었다.


그와 할머니가 돌아간 후, 모친은 씩씩거리며 내게 다가와 뺨을 때렸다. 그리고 그의 할머니가 있어서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실제와는 다르지만 최대한 순화해서 너 같은 X은 나가 죽어야 한다. 그 X이랑 관계도 했냐. 세상에서 내가 제일 헤픈 사람인 것처럼 몰아가는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손발을 움직일 수 없고 모든 감각이 다 멈춰버린 줄만 알았는데 청각만은 제 구실을 하면서 폭언을 뇌에 차곡차곡 저장했다.

모친은 내게 편지를 모두 찢으라고 말했다. 나는 울면서 편지를 찢을 수밖에 없었다. 3개월 동안 나무의 나이테가 쌓이듯 한 겹씩 모이던 추억이 일순 바스러져서 글자 한 조각도 남기지 못했다. 한 장이라도 남기고 싶었는데 모친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큰 태풍이 지나간 이후, 부친에게도 맞을까 봐 전전긍긍했지만 모친이 잘 둘러댄 듯 더 이상의 추궁은 없었다.


방학 기간에도 그는 몰래 내 방 창문이 보이는 곳으로 찾아왔지만, 나는 너무 두려웠다. 더 이상 내 부모를 화나게 하면 정말 정신병원에 처넣어지거나 교정강 X을 당할 것만 같았다. 고통스러운 생각만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참다못한 나는 밖으로 조용히 나가서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우린 이제 끝난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때 그의 표정이 어땠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별 통보를 상당히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나도 놀랐다. 아마도 현실에 난도질 당해 마음이 너덜너덜해져서 그랬겠지.

여름방학이 끝나고 동아리실 문을 열자 하얀 칠판에 또박또박 써진 글씨가 보였다. 전학 간다고. 거기서 끝이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그의 흔적 역시 지우개로 힘주어 지워버렸다.


사실 그 이후로도 두어 번 인연을 지속할 기회는 있었다.


한 번은 후배의 집에 집들이를 갔을 때와, 나머지 한 번은 내가 대학생일 때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를 받은 때였다. 변함없이 예의 바르게도 자기는 00인데 혹시 이 번호가 내 번호가 아니냐고 물어보길래(어떻게 내 번호를 알게 된 거지 궁금하긴 하다) 나는 내 여동생인 척 언니가 폰을 놓고 가서 그러니까 나중에 언니에게 전달해 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이미 끝난 인연일뿐더러 다시 또 그날의 악몽이 되풀이되면 어쩌나 난 조금 두려웠던 것 같다.


그에 대한 마음이 털끝만치도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생각하게 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헤어져야 했을까,라고.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내 소울 메이트에게 했다. 사실 밑밥은 꽤 오래전에 던져두었다. 이런 일이 있어서 나는 내 부모를 존중하기를 포기했다고.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내가 괜찮다고 생각할 때 이야기 해 달라고. 그리고 내가 호주에 있을 때, 가족에 대한 꿈을 꾸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분노하고 끔찍스러운 기분에 휩싸여, 신탁을 받은 무녀처럼 쉴 새 없이 털어놓았다. 그 격앙된 감정은 내가 가족에게 들은 폭언을 순화시켜 전달할 때 정점에 달해 눈물과 한숨으로 흘러나왔다. 매번 이렇다. 나는 내 소울 메이트에게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 꺽꺽거리면서 추하게, 내가 널 중학생 때 만났다면 어땠을까?라고 물어봤을 때 그는 지금 만나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많이 당황했을 법한데도 침착하게 말해줘서 참 고마웠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라면 지키지 못했겠지만 지금이라면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오로지 지금의 내 사람을 지킬 수 있다.


제목도 그렇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동성연애에 대한 것이란 걸 이해했을 것이다. 난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어서 여태까지 내가 겪은 일을 털어놓지 않았는데 왠지 이번만큼은 그럴 용기가 생겼다. 망한 연애일지언정, 나도 내 사람과 함께 내 길을 걷고 있고 과거의 사람도 지금쯤이면 좋은 사람 만나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언제나 그렇듯 삶은 지속되니까 더 이상 힘든 추억에 얽매이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 글을 읽어준 분들도 새해에는 원하는 것을 쟁취할 힘을 얻기를 바라며 이만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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