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인생의 출발선
승선생활을 시작으로 사회인이 되다
세월이 흘러, 어쨌든 졸업은 했다.
그러나 갈 곳은 막막했고, 마음속의 갈등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987년 7월, 대부분의 동기들은 이미 군 복무를 시작하거나 배에 올라 승선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졸업한 지 다섯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결국 현실은 나를 밀어붙였다.
만 5년 안에 3년의 승선생활을 마쳐야 군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기에,
싫어도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승선이 결정되던 날,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여름날이었다.
3년 선배인 2등 기관사와 함께 통선을 타고 부산항을 떠나
모선을 향해 나아가던 그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속에 ‘사회인으로서의 첫 출발’이 시작되었다.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향하는 길만큼 고된 여정은 없다.
길게 울려 퍼지는 뱃고동 소리가 슬픔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뒤돌아보니 남포동 자유공원의 언덕 위로 하얀 비가 내리고,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바다 위에 번져나가는 듯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날의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승선 생활은 일본과 미국 서부를 오가는 항해였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탔던 배 위에서의 하루하루는 숨 막히는 연속이었다.
태평양을 몇 번이나 건넜는지 모른다.
날짜 변경선을 지날 때마다 하루가 생기고, 또 하루가 사라질 때 나의 마음은 점점 더 암울한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오사카, 고베, 지바, 밴쿠버,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LA… 수많은 항구를 오가며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은 내게 성장이 아니라 소모처럼 느껴졌다.
차가운 북태평양의 바람 속에서 “내 인생은 이런 것이 아니야.”
그 생각만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어떤 날은 낯선 항구의 바닷가를 혼자 걸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하늘의 통곡처럼 들렸고, 그 소리는 다시 나의 통곡이 되어 가슴을 적셨다.
기댈 곳 하나 없는 공간에서 시간은 흐르고, 그리움은 메아리 없는 바다 위에 흩어졌다.
나는 그저 조용히 기도했다.
언젠가 외로움과 슬픔이 없는 바다 위에서,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날이 오기를. 1년의 항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기쁨보다 우울함이 앞섰다.
준비되지 않은 삶은 이렇게 혹독하게 나를 시험했고, 세상은 나에게 “여기 머물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 듯했다.
결국 나는 태평양 항로를 거부하고 국적선으로 회사를 옮겼다.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시 출항했지만, 여전히 해상생활은 낯설고 외로웠다.
인도 앞바다에서 두 달 가까이 닻을 내리고 대기하던 시절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 답답함 속에서 같은 학교 선배와 나는 매일 술로 하루를 달래곤 했다.
결국 선장으로부터 ‘술 금지령’이 떨어질 만큼 방황은 깊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나 자신을 추스르고, 한국 항구를 드나들며
조금씩 마음의 균형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바다를 지나, 유럽의 항구에 닿을 때쯤 1년이 또 흘러 있었다.
그리고 다시 휴가를 앞둔 어느 날, 나는 다짐했다.
이제 한 항차만 더 마치면 군역이 끝나고, 그 후에는 반드시 이 생활을 끝내리라.
그 다짐 속에서 나는 비로소 ‘보이지 않는 인생의 출발선’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