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지 못했기 때문에 배운 것들
머리는 복잡했지만 몸이 고단해지면 이상하게 생각이 단순해졌다.
사람의 마음에 밟힌 흔적도 육체처럼 땀을 흘리면 조금씩 낫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점심시간 때 혼자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영애를 떠올리던 날이 많았다. 마주 앉아 수줍게 웃던 얼굴, “오빠, 언니가 좋아했던 라일락향 기억나요?” 라고 말하던 그 미소. 하지만 그 기억을 다시 붙잡아도 돌아오는 것은 결국 가슴 한쪽을 톡 건드리는 바람 같은 허전함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붙잡아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놓아야 서로가 더 살아진다는 것을.
민정은 떠나기 전까지 말없이 나를 걱정했고, 영애는 떠난 뒤에도 나를 위해 성숙한 선택을 했다.
그 두 계절은 붙잡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내 안에서 더 오래 남았다.
내 마음에도 결국 계절이 왔다.
조선소에서의 삶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 나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사랑한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의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했다는 것을.
민정의 조용한 배려, 영애의 솔직한 마음.
그 두 계절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저 누군가를 따뜻하게 챙기는 일, 언제든 편히 기대게 해주는 일,
말보다 행동이 먼저 가는 진심. 나는 그 집의 두 계절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게 되었다.
비록 사랑의 결말은 모두 아픔이었지만 그 아픔은 결국 내 마음에서 단단한 줄기를 틔우고 있었다.
두 계절을 보내고 난 뒤의 봄. 영애와 마지막으로 헤어진 날
나는 부산 거리 한복판에서 오래도록 혼자 걸었다.
풍경은 달라진 것도 없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지만 내 마음은 전과는 달랐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붙잡혀 있지 않았다.
아프지만 끝났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조용한 의지가 마음 한켠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두 계절을 지나면서 나는 누군가의 아들로만 살던 사람이 조금은 혼자가 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던 청년에서 누군가를 지켜줄 준비를 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계절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키운 것이다.
돌아보면 그 두 사람은 내게 계절 그 자체였다.
민정은 해가 잘 드는 방 안에서 조용히 피던 라일락 같은 봄이었고,
영애는 장맛비처럼 뜨겁고 솔직한 여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두 계절을 모두 지나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한 사람이었다.
그들을 잃은 건 사실이지만 그 계절을 지나며 나는 더 큰 사람으로 자라났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아픈 게 아니라 사랑을 잃고 난 뒤 비로소 자신을 알게 되는지도 모른다.
두 계절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봄과 여름은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뿌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