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

by 전병근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나이를 헤아리면, 아직은 팔십 년 남짓한 젊은 나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수많은 풍랑을 겪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라는 큰 나무 앞에서 서툴게 손을 뻗는 모양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뿌리는 내렸으나, 아직 흙 깊숙이 단단히 박히지 못한 것 같다.

선각자들이 자유를 부르짖으며 거리에서, 감옥에서, 그리고 때로는 목숨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지만, 그 정신이 현실 속에서 충분히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잘못된 역사는 언제나 다시 고쳐 써야 할 숙제를 남기지만, 우리는 그 숙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때로 비켜 가고, 때로는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분열의 골만 깊게 파왔다.


특히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극단 사이를 오갔다. 군부독재의 시절을 되짚는 일도, 냉정한 이해 대신 현재의 잣대를 들이대면 모든 것이 비난으로만 환원되고 만다. 역사는 그 시대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조차 우리는 종종 잊는다.

오늘의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는 국민을 반으로 나누는 데에 익숙해졌고, 국민은 그 틀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양극단의 색깔을 입게 되었다. 과거 왕조 시대에도 이견은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삶의 가치관 전체가 둘로 갈라져 서로를 ‘다른 나라 사람’처럼 대하는 풍경은 없었다. 교육은 늘어났지만, 마음속의 사고는 넓어지지 못했다. 편향된 믿음이 하나의 진리처럼 굳어져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더 큰 슬픔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혀 더 나은 길로 나아가야 한다. 어느 한쪽의 승리도, 한쪽의 패배도 아닌, 서로의 틈새를 넓혀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진영만 바라보는 국민이 되어 버렸다. 민주주의의 본질이 ‘움직임과 성장’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의 말을 떠올린다.

“대한민국을 살리려면 철옹성 같은 양당 체제를 깨뜨려 바람구멍이라도 내야 한다.”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 말 또한 정치인의 명분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치적 언어에 지치고, 정치적 계산에 상처받아 왔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기대한다.

언젠가는 두 개의 거대한 벽 사이에, 작은 길 하나라도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서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태도에서 자란다.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고, 합의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으며, 무엇보다 상대를 같은 국민으로 바라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거창하지 않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낸, 가장 원초적인 민주주의의 자세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국민이 서로를 믿을 수 있고, 정치가 국민을 갈라놓지 않는 나라.

그 작은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나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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