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유교의 틀에서 깨어나자

by 전병근

유교의 틀에서 깨어나자

어릴 적 교실 창문 너머로 빛이 스며들던 오후, 우리는 교과서 속의 공자와 맹자를 마치 눈앞에서 숨 쉬는 인물처럼 배웠다. 스승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인간의 도리였고, 효와 충은 마땅히 지켜야 할 절대 명제로 여겨졌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그 시대의 흔적을 떨쳐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조선 오백 년을 지탱해 온 유교는 한때 국가의 척추처럼 굳건했지만, 근대의 문물이 밀려오며 그 위력은 서서히 퇴색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유교는 당위라기보다는 ‘그랬던 적이 있는 문화’ 정도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일상의 깊은 주름에는 그 영향이 배어 있다.

그래서 나는 문득 되묻게 된다.

우리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유교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유교라는 오래된 문명의 무게

유교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는 분명 치열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빛이었다.

춘추의 혼란 속에서, 유교는 ‘예’라는 이름으로 인간과 사회 사이의 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법가가 칼의 힘으로 질서를 세우려던 시대에, 유교는 마음을 닦아 세상을 다스린다는 이상을 품었다.

그러나 찬란했던 사상도 시간이 흐르면 딱딱하게 굳는다. 유연했던 배움은 경직된 경전이 되었고, 삶을 위한 예는 삶을 억누르는 틀이 되었다.

유교는 법가·도가·농가·음양가 등 수많은 학문을 포용하며 커다란 체계로 확장되었지만, 결국 조선의 긴 세월을 지나며 현실보다 규범을 앞세우는 사상으로 굳어갔다.

처음에는 덕을 갖춘 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숭고한 이상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이론은 권력과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예는 분쟁을 막기 위한 조화의 원리였지만, 현실에서는 강자는 약자를 ‘관용’으로 다스리는 척하며 소유하듯 굴게 만드는 질서가 되었다.

유교는 분명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으면 사상도 함께 유연해져야 했지만,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

유교가 남긴 그림자들

성인이 되어 세상을 여행하고, 외국의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릴 적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시대의 흐름에는 맞지 않는 족쇄였다는 것을.

유교가 남긴 사회적 흔적들을 되짚어보면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실용과 경제 활동을 천시한 결과, 조선은 근대화의 물결에서 뒤쳐졌다.

혈연·지연·학연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슬은 우리의 인간관계를 끝없이 묶어두었다.

남성 우위, 장자 중심의 사고방식은 여성에게 긴 세월 동안 희생을 요구했다.

기득권층은 ‘도덕’이라는 말로 위선을 감추었고, 그 가식은 때로는 더 큰 부패를 낳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교는 우리의 상상력을 억눌렀다.

공자의 말처럼 ‘괴이하고 기이한 것’을 금하던 문화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힘을 약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허공을 그릴 수 없음은, 결국 미래를 그리는 능력을 앗아가는 일이었다.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유교문화는 뒤돌아보는 문화라고.

실제로 우리는 새로운 문제 앞에서 늘 과거를 찾았다.

책을 펼치면 답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길은 언제나 미래에 놓여 있다.

과거를 아무리 뒤져도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는 왜 유교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가

나는 유교 전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분명 소중한 가치도 존재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성찰과 수양의 정신, 공동체의 조화를 추구하는 마음—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를 튼튼하게 해준 힘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좋은 덕목보다, 시대를 가르지 못한 낡은 틀이 더 큰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 역사 속에서 유교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명분이 되었고, 학문을 금하는 이유가 되었으며 여성의 입을 닫게 하는 도구가 되었고, 젊은이들의 창의성에 재갈을 물리는 문화가 되었다.

그러니 나는 이제 용기 있게 말하고 싶다.

“나는 유교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세계는 이미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와 문화의 흐름 속에 있다.

닫힌 사상으로는 이 빠른 세상을 견딜 수 없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개방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말 것이다.

앞으로 내가 걷고 싶은 길 유교가 남긴 전통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이제는 스스로의 생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시선으로. 규범이 아니라 질문으로.

순종이 아니라 독립된 사유로.

나는 이제 유교적 틀에 길들여진 내 정신에서 한 걸음씩 빠져나오려 한다.

내 삶을 나답게 만드는 길, 더 열린 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길, 그 길 위에 서고자 한다.

때론 두렵고, 때론 익숙한 관념이 나를 잡아끌지만 나는 안다.

변화는 언제나, 익숙함의 벽을 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다짐한다.

“이제는 벗어나자.

오래된 틀에서, 낡은 사상에서, 그리고 미래를 가로막는 두려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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