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깨기의 시작으로
나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안녕하세요? 저는 김진영입니다. 그리고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라는 인사를 건넨다.
글쎄, 무슨 말을 건네고 싶었을까. 사실은 시각장애라는 단어가 떨어지는 순간 묘하게 어색해지는, 조금은 엄숙해지곤 하는 그 분위기가 싫어 굳이 저 단어를 꺼내지 않은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낯선 기기의 설명서를 내어놓듯 사소한 오해와 겪어야 할지 모를 갈등을 줄이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시각장애’를 주섬주섬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게 상대를 배려하는 말 내지 상대가 나를 보다 파악하기 쉽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안내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겁이 났던 거였다. 이를테면 내가 누군가 친절로 건네는 식기나 물건을 받지 못하거나 자연스러운 눈짓, 손짓에도 반응하지 못하는 등 도무지 시력을 한 번도 잃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각종 행동을 피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그 행동들로 인해 내게 사회부적응자 같은 낙인이 찍힐까 걱정이 됐다. 뭐랄까. 열기띤 얼굴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 앞에 놓인 놀이기구가 된 듯했다. 나는 실제로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으니까 어떤 기대나 열기를 내려놓으라고. 아니 귀신의 집 앞에 놓인 표지판이라고 하는 게 훨씬 적당한 표현이겠다. 안에서 무엇을 보건, 얼만큼 놀라건 나는 책임지지 않을 테니까 돌아가려면 이쯤에서 그만두라는 식이었던 셈이다.
10살 무렵 불과 일주일만에 모든 시력을 잃은 후 때로는 끔찍이도 시각장애인이 아니기를 바랐고, 때로는 끔찍이도 시각장애인으로서의 나를 세상이 기꺼이 품고 받아들이기를 희망한 내가 이제부터 꺼내놓는 이야기는 진짜 나의 ‘알깨기’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시각장애인’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면 스스로를 소개하는 데에 있어 구별짓기 위한 단어의 힘을 빌지 않아도 되는 이들을 선망하곤 했다. 굳이 명칭을 써야겠다면 ‘작가’, ‘선생님’, ‘변호사’, ‘간호사’와 같이 나의 자격 내지 능력을 상징할 만한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작 ‘시각장애’라니.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 단어에 대해 반쯤은 애착을 반쯤은 껄끄러움을 가지고 있다. 명색이 시각장애인 경력 19년차가 이렇다. 심지어 이러한 애증은 내 마음에 힘이 얼마나 있는지, 사회가 나를 얼만큼 따뜻하게 품어주는지에 따라 시소놀이를 한다. 결국에, 나는 시작을 알리며 내 글이 어디로 닿을지, 알이 깨질지, 내가 깨질지 그 끝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래도, 알이 깨질 것을 확신하고 부리로 두드리는 아기새가 어디 있을까. 열심히 알을 깨다 보면 나도 나만의 형용사를 가질 수 있을까. 혹은 단순하게 “김진영”이라는 것으로 설명이 충분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의 시작을 무엇으로 할지 한참을 서성였다. 먼저 시각장애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아도 될까.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어떤 이미지의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봐줄까. 그러다가 문득 ‘아, 이 사람은 시각장애인이구나.’ 그렇게 이름 모를 외국의 아름다운 건물을 둘러보듯 깊이있고 끈질긴 시선으로 지켜봐줄까. 그러다가 끝내 나는 안내문을 세우고 만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피식 웃으며 ‘그래, 시각장애인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뭐라고. 그게 자꾸 꺼내놓다 보면 먼지도 묻고 비도 맞고 바람에 견디며 너덜너덜해지는 날이 오겠지. 그러니까 언젠가는 ‘시각장애’라는 단어를 주섬주섬 꺼내놓았을 때 상대방이 본척 만척 멀뚱멀뚱 지나버릴 날이 올 거야.’ 라는 무책임한 태도로 문장을 휙 하늘에 날리고 만다. 문장이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면 이런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