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호외 치타와 달팽이의 근황
망설임과 부끄러움으로 키보드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건네는 안부여서. 내 글이라고는 하나 기실 독자의 것이기도 한 무엇을 오랫동안 내버려둔 사람이 감히 '작가' 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라도 되는지 혼란스러웠다.
1년 가까이 대한민국 어느 로스쿨에서 파닥거리며 열심히 변호사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1월 11일부터 15일까지 쉬는 시간을 제한 36시간 55분의 시험을 끝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각장애인으로서 무지막지하게 방대한 '변호사시험'을 준비한다는 건 결코 간단치 않았다. 끝없이 갈라진 밭에 쟁기질을 하는 농부의 심정으로 한 걸음만, 딱 한 걸음만이라 되네이며 여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4월 말에나 나올 터지만, 그 결과에 상관없이 이제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적는다. 아니, 하고 싶다. 다름아닌 나의 이야기를, 내 존재를 세상 앞에 툭 터놓고 싶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은, 완전히 두려움과 불안에 파묻혀 지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확신과 핑크빛 미래에 대한 불신으로 늘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언어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에 단 한 글자도 내놓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언어라는 것도 존재에 틈이 있어야 발화된다는 걸. 심지어는 시험을 마친 1월 말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말을 회복하는 데에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온통 일상과 괴리된 법학 용어가 두둥실 생각을 잠식하고, 답안지에 반드시 적어내야 한다는, 채점을 위한 글자들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정말 영혼이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내가 시험형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웃음) 그럼에도 달팽이는 치타의 곁에서 긴급구조요원처럼 모든 과정을 묵묵히 견뎌주었다. 튼튼한 등딱지를 구비한 채로.
더구나 이왕 터놓은 김에 고백하자면, 내 글에 대한 확신이 있지 않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정도는 공감할 것 같은데, 과연 내 글이 세상에 필요한 걸까? 그저 하소연이나 소음에 불과한 건 아닐까? 일기로 쓰면 족할 뿐 누군가가 귀중한 시간을 들여 읽을만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을까? 기실 지금도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단지 필요한 글인가를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한 자라도 더 따뜻하고, 좋은 단어를 발견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졌을 뿐. 다만, 이를 위하여는 허락이 필요하다. 한참이나 문을 닫았던 치타의 서점이기에.
정기적으로 브런치에서 울리는 알림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일이나 되었네요. (눈물)"을 볼 때면 '나 작가 아닌데.', '이런 사람이 작가일 수는 없는 거잖아.' 싶어 씁쓸함이 솟았다. 하지만, 그 죄책감을 뚫고 슬며시 문을 두드려본다. 뻔히 불꺼진 약국에 민망함과 간절함으로 전화를 걸 듯이.
"계속 글을 써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