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세계
우리가 태어날 때 부터 주어진 가족이란 존재.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주어진것을 받아들이는 존재
그럼에도 따뜻하게 함께 지내기도하고, 때론 다투기도 하고, 이내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가족이란 이름아래.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하고 교감하고 이해하고 받아주고
웃어주고 눈물 흘려준다.
내가 일전에 영화감독 중 최애감독이라 이야기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음.. 취향을 따라가고 싶고 존경하고 좋아하고,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이 영화결마다 책에서의 문장 마디마디마다 알알이 박혀온다.
또 책을 읽어보면 사람이 이렇게 다정하구나라고 느낀다.
내가 정말 따라가고 싶다
나도 다정하고, 많이 챙겨주고, 많이 생각해주고 ..
이런 마음을 많이 닮고 싶다
게다가 원래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주로 사용하기때문에서 였을까?!
아역배우들에게도 다정하게 늘 존중해주고, 또 연기를 강요하는 스타일이아니라
자유롭게 풀어준가운데 편집으로 배우를 빛나게 해주는 그런 멋진 감독이다
르포르타주같은 스타일을 추구하는것같다.
실제로 "아무도 모른다" 같은 경우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이 심하게 든다.
아역배우들이 강요된 연기로 구겨진듯한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당연히 우리가 골목길을 지나면 깔깔 거리다가도 이내 수줍어하는 어린아이들 모습이
고스란히 소복히 담겨있다.
칸영화제에서 "아무도 모른다"의 유아 아키라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던것도.
고레에다 감독님의 지도편달 혹은 편집능력을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나
자신은 소년가장으로서의 위치에서 엄마가 필요해서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공중전화에 갔지만
동전이 달랑 두개뿐인상황 그런 상황에서 망설이며 동전을 넣었는데 엄마와 전화가 연결되기 직전에
동전으로 할 수 있는 공중전화가 꺼지고 이내 머리를 살며시 두번 박는 장면은
정말 가슴아프게 다가오고 여미는 듯한 감정을 느끼지만 반대로
정말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된 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의 공통된 것 중 하나는
상투적인 가족이야기가 아닌 전형적인 가족이야기가 아닌.
죽은 사람과 남겨진 가족이야기(환상의 빛1995)
살인자의 가해자 가족 이야기(디스턴스2001)
버려진 가족이야기(아무도 모른다2004)
분리된 가족이야기(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2011,태풍이 지나가고2016)
갑작스레 이별하게 되는 가족이야기(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같은 아빠지만 엄마가 둘인 가족이야기(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도둑질하는 가족이야기(어떤가족2018)
특히나 가족이지만 뭔가 뒤틀려 있는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지만
하지만 이야기는 굉장히 따뜻하고 포근하다.
특히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정말 큰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대략적인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한 유복하고 행복한가정에 비보하나가 들려오는데 그것은 아이가 산부인과에서 바뀌었다는 것이다.
6년간 키웠던 아이와 이제 이별을 하기로 결정하게되는데.
아이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선물하기에는 너무 가슴아프기 때문에
두가족(아이를 바꾸게 될 두가정)은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고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는 영화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갑자기 누군가의 아빠가된다면 하고 가정해보았다.
나는 사실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나의 딸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싶고, 마인드라던가, 교육이라던가, 집중하는 방법, 남을 대할 때의 태도, 말할 때의 감정을 담는것, 이야기를 들어주는것, 다른사람과 함께할때 집중해주고 배려해주는것, 종교적이나 도덕적인 관념, 자주 웃어주는 방법, 감정을 표현할 때 상대를 아프게 하지않게 하는것, 또는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할 때 어떻게해야 상대를 더 기쁘게 하는 방법, 말할때의 톤이나 스피드라던가 억양이라던가,
잠시 기다려주는것.등등 해주고 싶은게 너무 많았다.
사실 그렇게 가르쳐주는 과정에서 물론 아이가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아이에게 재미있게 즐겁게 가르치는 과정도 생각해보았다.
아이가 내가 알려주려는것이 너무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을까?!
행여나 내가 가르치려는것을 거부하지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대화해야 좀더 나은방향일까 ?! 등등
사실 태어날 딸아이의 이름도 지어보기도 했다.(뭐 소설을 생각해보면 이름짓는것은 흔한일이라서..)
(뭐 아직 애인도 없고 결혼도 한적은 없으나...상상의 영역에서는 가능한일 아닌가 싶다.)
(아들이름은 현재 존재하지않고 누군지도모르는 나의 배우자에게 맡기기로 하겠다)
이름이라는것이 나에게 부여되는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누군가에 의해 발음이 되는것이니까. 누군가가 발음하기 좋고 편안하고
반대로 내딸이 이름을 들었을떄도 듣기 부드러웠으면 했다.
살면서 가장많이 듣게 될 것이 이름이니까.
내가 성이 신이니까 ㅅㅎ(마찰음)이 많이 들어가는
'신슬희' 이렇게 지어볼까했다. 왜냐하면 마찰음이 많이 들어가면 입에 침이 고이고
침이 고이게되면 아세틸콜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발음하는 입장에서
평안한 느낌이 들게하게 떄문에 또 마찰음 자체가 약간 하이톤이어서
친구들이 내 딸 이름을 부르면 다들 집중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것만 같았다.
아니면 ㄴㅇㅁ(비음)이 많이 들어가는
"신은유" 이렇게 지어볼까했다. 왜냐하면 비음이 많이 들어가면 부드러운 느낌이 들고
코를 사용하는 음이라서 세련된 느낌이지않을까 싶기도했다.
ㄱ(구개음)을 과감하게 넣어서
"신가은"이렇게 지어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면 딸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단단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였던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직 결혼도 애인도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상상속 혹은 소설속 인물이름 짓기의 유희일 뿐이지만.
그래도 이런 상상의 과정이 내겐 조금 행복하다.(꺄앗)
이야기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는 내가 위에서 썻던 나의 이야기처럼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하는 과정 서로 이야기하고 공유하고 가르쳐주고, 거부하게되면 다른방법을 찾게되고
그런것들이 아이를 성장하게 하지만
또한 아버지도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지 아이를 낳았다고 아버지가 되는것이 아니라
아버지도 다른 가족구성원들과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 아버지가 되는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족이란 단순하게 혈통으로 맺어진 인연이 아니라
혈통 아래에서 함께 함께 역사를 그리는것이다.
사실 인큐베이터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아주 통속적인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절제있게 감정을 다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정이 삐져나오는
물컵에 물이 넘치는 듯한 감정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도 그런것이 주인공인 아버지가
"내가 두 아이 다키울꼐요. 내가 경제적으로 여유되니까 그냥 내가 두 아이 다키울꼐요"
물론 소중한 추억을 함께했던 아이와 이별하는것이 너무 가슴아파서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감정의 폭풍이 인물내면에 쌓였을까?!
그 말 한마디를 상대 가장에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런데 상대방 가족이 주인공을 살포시 한대 치면서
"자네는 애를 돈으로 살려고하는거야?! 우리는 우리도 가족이라고."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자연스레 아이를 바꾸려 했지만..
사실 서로의 마음속에 있던 감정이 통제를 못하고 삐져 나가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그린다.
사실 나는 이렇게 감정표현하는 스타일을 좋아하기도하고,
또 글을 쓸떄도 이런 감정 표현법을 많이 찾기도 한다.
또 씬에서 상대 가족의 부자가 빨대를 이빨로 물어 뜯어 놓는다던지
주인공과 아들이 잘못치는 피아노를 열심히 연주하려고 노력한다던지.
이런부분에서는 가족이라는 것은 닮아가는 것이구나.
가족이라는것이 후천적 경험으로 쌓이는 것이고
시간이 채워주는 인연이겠구나
실제로 주인공의 아들은 피아노를 잘못쳐서 늘 안타까워하는 장면이나오고
아버지한테 혼나는 장면도 나온다.
여기는 스포일러일수도 있는데
마지막 장면
위쪽 영화 포스터의 갈림길 장면
이건 미장쏀으로서도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다.
다른집에 보낸 아들, 그리고 아버지가 만나게되는 장면이다.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길을 걸어간다.
이것은 내용적으로도 둘은 헤어진가족이고
또한 영화 언어로 둘은 장면적으로 다른길을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 갈림길은 합치되고
둘은 만나서 화해하게되고 다시 둘은 가족이된다.
이건 내용도 다시 둘이 결합함을 의미하지만
형식적으로도 둘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진짜 고수의 손길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내 뱉는 말도
"사실 나도 피아노 잘못쳤어."
현 시점에 주인공의 아들은 피아노를 못치는데
사실 나도 너만 할떄는 피아노를 잘 못쳤었어.라고 말하는것은
'너는 내아들이야.'
라고 말하는것을 은유적으로 돌려 말하는 것이다.
그냥 대사까지...ㅠㅠ(꺄앗)
사실 이 영화를 보며 나의 아버지도 생각난다.
특히나 요즘은 더욱더 그렇다 나도 무릎밑에서 걸어다니던 시절부터 말도안듣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늘 말없이 옆에서 묵묵히 있어주고 나한테 많이 져주고.ㅠㅠ 많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솔직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또 들려주고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너무 길어지면 글 자체가 루즈해질까봐 하나만더 소개하자면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 영화도 보고있으면 그냥 뭉클하다.
아니 생각해보면 고레에다 감독님은
배우복도 대단하다. 아니면 고레에다 감독님의 파워가 대단했던걸까.
아야세 하루카
히로세 스즈
후쿠야마 마사하루
나가사와 마사미
이건 일본에서도 내로라하는 탑스타들이 줄을서서..고레에다 감독님이랑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간략한 줄거리를 보자면
아버지에게 두명의 아내가 있었다, 첫째부인에게서 3명의 딸이 있고 둘쨰부인에게는 1명의딸이 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오게된 3명의 딸은 반대 편의 다른 이복동생을 만나게되고나서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클리셰처럼 자주사용되는...
통속적인 드라마에서는 아주 물병날아다니고 험한말이 오가는 상황이 그려진다.
그런데 다정한 고레에다 감독님...
이들은 함꼐 살면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줄까?!
사실 우리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다.
사실 고레에다 감독님 영화에서는 절대악이라는것은 없고
그렇다고 절대선도 없어 보인다.
다들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선해보이고. 조금은 악해보이고
딱 적당한정도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
아버지도 무책임하지 두명의 부인을 두다니
또 친구 보증같은건 왜 서가지고
(친구끼리 돈이 엮이면 연이 끊어진다는 말이있듯이 나도 친구한테 돈도 안꾸고 빌려주지도 않는다.)
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아버지의 장례식장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아버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는 호평을 듣는다.
솔직히 남겨진 4딸에게는 좀 의아하겠다
가정을 파탄내버린 아버지가 대외적으로는 좋은 사람이었다니..
사실 이런 왜곡된 상황에서 4명의 딸은 함꼐 살게된다.
또 그것도 평화롭게 함께산다.
그 와중에 히로세 스즈 씨..
너무 귀엽게 나온다.(꺄앗)
뭐 내가 좋아하는 배우 캐리멀리건, 히로세 스즈의 공통점은
연기도 잘하지만 단발도 잘 어울리고 머리에 핀도 자주 꽂는다.'
캐리멀리건 같은경우 이번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됬는데
내심 여우주연상 한번 받았으면 했는데 안타깝게 되었다.ㅠ
스즈가 나머지 언니들이랑 같이살게 되는길을 선택한것은
그도 그러한것이 자신도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빠도 뒤이어 돌아가시면서
함께 살 가족이 아무도 없이 홀로 남게 되어서이다
그래서 남은 세딸도 스즈가 안타까워서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스즈는 아빠의병간호와 세상의 편견으로 사실상 또래친구도 없이 청소년기가 삭제된채로 살아왔다
스즈야 ㅠㅠ
4명이 함께살면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게 된다.
사실 스즈는 배다른 이복동생이고 가정을 파탄나게한 원인으로 볼 수 도있지만
(스즈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그러한 아픔을 되려 품어주고
지난날의 아버지의 과오를 남겨진 가족들이 해결하여과는 과정이다
스즈에게도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3명의 언니가 너무 좋지만 한편으로는 죄책감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럴때 마다 이 4명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음식.
같이 밥을 먹으면 친해진다고, 하지만 여기서 고레에다감독님.
과정을 또 그렇게 좋아하신다.ㅋㅋㅋㅋㅋㅋ
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또 밥을 다먹고 정리하면서 서로 이야기하고
특히나 여러 음식을 먹으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묵혀두었던 감정같은것을
밥먹는 자리에서 푸는 것이다.
또 여기서 큰딸 아야세 하루카 씨 같은경우는 본인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유부남이고
이 유부남이 또 자신의 아내와 이혼할꺼라고 말한다.
또 본인도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과오와 비슷한 것을 하게된다,
참 아름답다가도 이게 뭔 날벼락인가 싶기도하다.................
그런데 되레
다른 남은 딸들이 언니를 나무라며 , 그거 우리 아빠가 했던거잖아. 라고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니가 잘 돼어서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런데 큰딸 본인이 지금 스즈의 엄마의 자리에 가게되니까 스즈가 굉장히 딱하고 안되어 보이느게 되는것이다.
그러면서 스즈에게는 우리 가족이 겪었던 불행은 주지 말아야겠다는 그런 다짐을 하게한다.
또 스즈는 늘 언니들에게 미안해하면서
자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해 언니들에게 상처주는 것 같다고, 자신이 밉다고 이야기하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여기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기독교적 원죄의측면과 비슷한것 같기도하다.
우리는 우리가 잘못한게 없는것같은데
기독교에서는 우리의 선조가 저지른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은 죄로 인해 우리가 계속된 아픔을 겪어야한다.
스즈의 입장에서는 태어난것말고 다른죄는 없지만 아버지의 잘못으로 인해. 본인은 죄를 물려 받은것만 같고
그렇게 계속된 미안함과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야한다.
그럴떄 큰딸이 너는 우리 가족이야. 네가 있어야할 곳은 바로여기고 여기가 네집이라고 해주는것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이고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한다고 두려워 말고 놀리지말라고.
하는 것과 어느정도 유사한 흐름을 갖고있다.
그런 악의 결과물 소산물을 끊어내고 선을 이루는것은 그러한 사랑이 아닐까싶다.
마지막으로 스즈와 큰딸이 그동안 말해서는 안될것만 같았던 엄마 이야기를 하는장면이 나온다.
엄마이야기는 이둘 사이에서는 위험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서로 원망의 대상으로 변할 수도있게되는것이다
배다른 엄마에게 미움이나 원망같은것이 생기게되면 서로에게 악감정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서로 각자 다른 엄마의 이야기를 하며 더 가까워지고 서로를 더 이해하는 과정이 형성된다.
꺼낼수 없이 깊이 박힌 상처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않은 상처들
빼내면 너무많은 피가 흐를것같아서 손댈 수 없는 상처들을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서로가 서로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주는 장면처럼 보였다.
실제 상처도 그러하다 우리가 몸에 상처가나면 그것을 드러낼 때 더 빠르게 회복한다.
오히려 옷으로 숨기고 꽁꽁 숨겨 놓으면 그곳이 곪고 상처가 악화된다.
자신의 상처를 꺼내서 이야기할 정도의 신뢰가 쌓인 사이가 된다면
그것은 이미 가족이 된 것이다.
그들이 결정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업으로 남아 있던 일들을 그러한 대화를 통해 풀어내고
그동안 그들을 짓누르던 어두운 기운을 거두고
이제 선한 인연으로 그들을 한가족으로 묶게 해준다.
그래서 바닷마을다이어리의 모든주인공들이
나의 이 글이 끝나고 나서도 행복했으면 한다.
새벽까지 글쓰느라 힘들었지만
다들 제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