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지켜줘요

엄마의 그늘 속에

by 도씨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은 회사의 불륜사건에 엉뚱하게 휘말려 쌈박질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일도, 연애도 잘 풀리지 않는 갑갑한 상황에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꺼내어 문다.

순간 톡! 하고 가시가 잔뜩인 생 밤송이가 미정의 머리통을 때리고 데구르 굴러 바닥에 떨어진다.


그것도 엄마가 돌아가신 얼마 후에,

벙찐 미정은 물끄러미 밤송이를 바라본다.

나는 그 장면이 꼭 잘못을 저지르면 엄마가 등짝을 때리던 기억처럼 느껴져 깔깔 웃었다.

미정이, 엄마한테 뒷통수 맞았네 .하하


그리고 그녀의 머리통을 콩 친 것은 밤송이가 아니라

이젠 손길이 닿지 않는 미정의 엄마일 거라고 생각이 들어 이내 코끝이 시큰해졌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은근히 여러 번 겪어왔지만,

신기하다고 느낄 만큼 또렷했던 건 최근의 두 번이다.


택시를 타고 있었다. 정차 중이었다.

느닷없이 배달 오토바이 한대가 택시기사님 좌석 옆 문을 콩! 하고 박고 넘어졌다.


악!엄마야!

라고 나는 무의식중에 엄마를 불렀다.

처음엔 오토바이니까 사람이 죽었나 싶어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져 얼른 내렸다.


다행히 툭툭 털고 일어나시는 게 아니겠는가.

사셨네...란 생각이나 좀 하고, 머리카락 한 올 다치지 않고 합의금을 받았다.

백만원이 넘는 꽤 큰 돈이었다.


마침 카드값에 허덕거리고 있었는데.. 덕분에 싸악 갚아내고 가족들에게 밥도 샀다.

엄마야! 하고 불러서 그런거였을까.

갸우뚱 했다.


그리고 또 한번은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도

이 나이 먹도록 암보험 하나가 없어서

돈이 없는 와중에 보험을 들고 왔다.


근데 계약자가 내가 아닌 보험이 하나 있고 해지가 되어있지 않아서 보험을 새로 가입하는게 힘들다는 것 아니겠는가.


알고봤더니 계약자는 엄마로 , 피계약자는 나로 보험이 있었던 거였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내내 그대로 있던 종신보험이 나도 모른 채 있다가 실효되어 버린 것이었다.


죽기 전까지 엄마는 내 종신보험료까지 내고 있었고,

나는 그걸 알지도 못하고 있다가 돌아가신 뒤 한참 후에나

그것도 돈없어 죽겠지만 암보험은 들고싶어일 때 따악 용돈처럼 나타난 거였다.


동생에게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엄마가 나 아직도 지켜주는 것 같다 했더니

그러니까 잘 좀 살아라고 했다.


나 역시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꺼내 물기 직전이었다.

남자한텐 차이고, 돈은 없고, 진로고민은 나이를 먹어도 끝이 없고, 쌈박질은 안했지만 마음은 항상 스스로와 한 판 붙어 싸우고 있었으니까.


근데 울엄마는 금이야 옥이야 첫째 딸 때리지도 못하고 용돈을 쥐어주고 응원한다는 거였다.

아, 아니 뒤통수 때리는 대신에 오토바이로 박은건가...?


엄마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 속에 이상한 잡초처럼 자라 제멋대로였고,

돌아가시고 나선 그런 엄마의 큰 그늘이 완전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렴풋이 뭔가 알 것 같았다.

사랑의 형태를 바꿔 어떤 신호로 아직 남아 있다는 걸.

죽고 나서야 더 또렷해지는 보호도 있다는 걸 말이다.


짧게 말해 , 엄마는 아직도 다른 방식으로 나를 돌보고 있다.


엄마 들려?

엄마 쉬어.

나 잘 살게.

이제 나 좀 그만 지켜.


들을 사람 없을 혼잣말을 했다.



곧 밤송이를 맞을 염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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