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봐
저지르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더니 '문제가 되는 어떤 일을 일으키다, 죄를 짓거나 잘못이 생겨나게 행동하다.'
라고 한다.
나의 단점은 쉽게 저지르는 데에 있다.
아버지란 사람에게 받은 나쁜 피 기질 중에 하나다.
생각나는 대로 다 저지르고 본 경우가 너무 많은 거 같아서 정리할 겸 창을 띄우고 글을 쓴다.
굳이 글로 남기지도 않아도 될 경험들을 글로 저지르려는 중이니,
잘 지켜봐주면 감사할 것 같다.
우선은 운동은 다음과 같다.
요가,복싱,PT,헬스, 점핑,발레,스피닝,필라테스.
피티는 살이 제일 많이 빠졌지만 비싸고 너어무 재미가 없었고,
헬스는 천국의 계단을 다 보는 공중에서 타는 게 내성적인 나랑 맞지 않았다.
요가는 사바나아사를 하다 누운 채로 자꾸 울컥 눈물이 나 그만두었고,
발레는 사뿐사뿐 해야하는 점핑인데 거울 속에 웬 코끼리가 뛰고 있어 그만두었다.
나머지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살은 빠지고 쪘고, 빠지고 찌다가, 빠지고 쪘다.
얻은 건 살이요, 운동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배워 본 것들은 다음과 같다.
헤어미용,속눈썹연장기술,제과제빵,네일아트 기술, 일렉기타 치기.
미용기술이란 기술엔 거의 다 도전했던 거 같다.
필기에 실기까지 다 배우다 만 것도 있고, 거의 시작하자마자 그만 둔 것도 있다.
헤어는 미용가위가 날 자꾸 거부했다. 손에 심한 쥐가 나고 물집만 잡혔다.
그런데 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 아주 놀랍게 기술이 조금도 늘지 않았다.
속눈썹은 불안하면 손이 떨리는 나로서는 한 가닥씩 붙이는 기술을 버틸 수가 없었다.
기타는 6개월을 쳐도 기본코드 한두개를 벗어날 수 없어 그만뒀다.
직업조차도 언급하기엔 너무 내 고백같아 다 말할 수 없지만 변화무쌍했다.
저지르고 나서 알게 된 점은 내 삶은 언제나 도저히 '내 것 같지가 않았'단 느낌이었다.
내 것처럼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미용가위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의 배우는 동안의 '가능성 있는 상태'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이걸하면 이번에는 성공을 할지도 모르고, 평생 가는 제대로 된
남들 보기에 좋은 기술을 언젠가는 가져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 말이다.
그리고 지겹도록 사업을 저지르기만 하던 아빠의 기질이 자꾸 생각이 났다.
나쁜 피에 대한 실감과 이해.
시작은 무수히 많지만, 끝은 없었다.
그 때부턴 막다른 길.
반대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남들이 볼 때 그럴 듯 하지 않아도, 머리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가능성을 가늠할 때도 머리가 아닌
마음이 가리키는 지점으로 가보기로 했다.
좀 다르게 저지르기로 한 것이었다.
제일 먼저 겁이 나서 미루고 미뤘던 브런치 작가 신청을 저질렀다.
힘들게 시작해본 것과는 다르게
며칠 걸린다더니 하루만에 승인이 났다.
허무한 성공이었다. 그런데 오래 기뻤다.
안될까봐 겁이 나던 일을 저지르고 나서 요즘 보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대사가 생각났다.
대충 적어보자면
진짜 내 것은 갈망하게 되지 않고, 맘이 푹 놓이며 편해지고 그냥 내 것이구나 알아본다는 것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느낀 점이 딱 그것이었다.
원래부터 승인이 되었던 것처럼, 방방 뛰는 기쁨 이라기보단 은은한 행복이 오래갔다.
마음 가는대로 저질러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생겨난 것은
다른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용기였다.
그래서 무언가를 또 하려고 하는데 , 그건 차마 적지 못하겠다.
아직은 비밀이니까.
내가 솔직하지만 그 정도 부끄러움은 지키고 싶다.
친구에게 말하자,
친구는 그래도 항상 너는 겁내지 않고 무언가 항상 하고 있다고 부럽다고 말했다.
자기는 겁과 생각이 많아, 지레 지쳐 시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감동의 쌍따봉을 날렸다.
종착역은 없을지라도 헤맨만큼 내 땅이라니까 나는 이제 어느 땅부자가 부럽지 않다.
이제 나는 도저히 믿지 못하던 나를 믿는다.
지지한다.
좋아한다.
내일은 지금 여기엔 어차피 당연히 없고,
지금에는 역시 나중도 없다.
그냥 이대로 직진할 것이다.
종착역이 나오든 안 나오든
저질러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