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없는 세상

by 아고루포나

그것이 없는 세상


그것이 없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개념도 없을 때라 무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리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이 없는 세상이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모든 것들은 모두에게 자유롭게 공유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원하는 대로 수정을 할 수 있어서 다양한 결과물들이 존재했습니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채 수없이 많은 작품들이 탄생했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문제를 삼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겐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이러한 인식은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부담을 많이 낮췄습니다. 덕분에 각자의 생산물들을 넘쳐나게 되고, 이를 수정해 재 탄생된 재생산물들로 온 세상을 가득 메웠습니다. 너도나도 생산자이고 재생산자였죠. 물론 최초의 생산물은 여럿을 거치면서 기존의 형태가 흐려지긴 했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오히려 모두가 제각각의 특색을 뽐내고 있음을 의미했으니까요.




모든 시작이 그러하듯 ‘그것’ 또한 불만에서 시작했습니다. 판사 잭은 뭔가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불만을 가진 잭 조차 그것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잭,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런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잭의 동료 제이크가 잭에게 물었습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어떤 것이?”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이게 뭔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

“하하하, 도대체 뭐 길래 그래?"

“아…그….. 그래! 그것!! 그것 있잖아. ‘그것’!”

“그것? 어떤 것?”

“그 너가 그린 그림. 그림의 그것!”

그렇게 잭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언급한 잭 조차 여전히 머릿속을 맴도는 무언가를 속 시원하게 구체화시키진 못했습니다.

“그림의 그것? 물감을 말하는 거야? 주로 E30B5D을 썼지.”

“아니, 그것 말고.”

“그럼 어떤 걸 말하는 거야? 붓을 말하는 거야? 집 근처 문방구에서 샀지. 말 갈기로 만든 것이 아주 고급이야!”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럼 어떤 걸 말하는 거야? 그냥 ‘그것’이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정확하게 말을 해.”

이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고 있었기에, 잭이 그것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잭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눈앞의 오랜 동료가 자신을 이해 못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잭의 답답함은 스스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머리에 맴돌고 있는 어떤 것의 느낌을 ‘그것’이라 겨우 내뱉었지만, 그것을 자신조차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탓이었습니다.




처음의 그것은 살짝 타오르다가 금세 꺼졌습니다. 그때엔 오직 잭만이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잭은 여전히 답답함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자고 일어날 때면 항상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무엇을 하던 '그것'이 머릿속에 틀어박혀있던 탓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것이 예전보다는 명확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잭은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했거든요.

“제이크! 음.. 그것 말이야."

"아직도 그것 타령이야?"

"아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물건에 대한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는 말이야.”

"물건에 대한 권리?"

"응. 뭔가 처음 만든 것에 대한 권리."

“갑자기? 왜?”

“그렇게 된다면, 좀 더 나은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요즘은 온갖 것이 난립하잖아. 권리가 보장되면 생산물의 수준도 높아질 거야. 그러니 처음 창작물을 만든 사람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제도로 규제를 하자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잭의 말은 동료인 제이크에게 무시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판사 잭은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잭의 머릿속에서 구체화되었고 명확해졌습니다. 잭의 노력은 결국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을 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규모는 꽤나 커서 공론의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러던 중 잭은 상대방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것. 그것은 뭐라고 할 건가요?”

상대방의 말에 잭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자신도 그것이라고 칭할 뿐 무엇이라 부를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었습니다. 상대방의 질문에 잭이 전전긍긍해하는 모습을 보자 잭의 동료 제이크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처음 발의한 사람이 판사 잭이니까 'Jugde Jack Right'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잭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젓(Jugde)잭(Jack)권(Right)? 젓잭권….저잭권…저작권!”

잭은 제이크가 붙여준 그것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 저작권이 딱이야!!!’

그렇게 그것은 저작권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채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저작권은 좀 더 사회를 이롭게 했습니다. 보다 완성도 높은 창작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동의하에 재생산도 가능했기에 수준 높은 재 창작물이 탄생했습니다. 창작자도, 재생산자도 모두가 만족한 상황이 되었죠. 특히 처음 저작권을 탄생시킨 우리의 판사 잭은 그 누구보다 만족했습니다. 저작권에 대한 저작권을 획득했기 때문이죠. 이렇게 그것이 없던 세상은 그것이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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