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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분의 일 Oct 17. 2023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비장애형제

오빠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깨달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너네 오빠 장애인이야?라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학원애가 내 오빠를 처음 보고 했던 그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 후로 오빠가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주기적으로 갔던 서울은 사실 휴가가 아니라 대학병원에서 오빠가 진료를 받기 위했던 것임을 이해했다.

왜 부모님이 나에게 오빠한테 많이 가르쳐줘라 라는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했다. 

왜 어른들이 나에게 착한 딸이 되라고 했는지 이해했다.

왜 아빠는 항상 그렇게 오빠를 심하게 다그쳤는지 이해했다.

매일 일어나는 부모님의 싸움의 이유를 이해했다.

왜 우리 집은 돈이 없는지 이해했다.


밤에 울려 퍼지는 싸움소리와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들을 애써 무시하기 위해 방에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크게 틀고 잠을 자려 애썼다. 학창 시절 마음 편하게 잠에 든 기억은 없다.

오늘밤은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 주세요. 믿지도 않는 신에게 매일 기도했다.

다음날 아침에 묵묵히 깨진 유리잔해를 치우는 엄마를 못 본 척 한 채 등교했다.


오빠에 대한 존재는 친구들에게는 비밀이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항상 오빠 이야기가 무심코 나올까 봐 나는 말조심을 했다.

다들 우리 오빠를 보고 비웃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길을 걸을 때 우연이라도 오빠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오빠는 철저하게 나에게 외면당하며 살았다.

가족이야기는 잘하지 않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조금씩 머리가 크면서 모든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본인 인생의 한 치 앞도 모르는 고등학생이 누구보다도 힘들 오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할 겨를은 없다. 

만약에 오빠가 돈을 한 푼도 못 벌면 어떡하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그때 나는 어떡해야 하지. 어떡하지. 

나는 연애도 결혼도 못하고 결국에는 오빠를 먹여 살리는 삶을 사는 건가. 어떡하지.. 

그건 진짜 싫다.

오빠는 불쌍한 사람인데 나는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제일로 싫다.


사람들은 오빠를 답답해했고 친척들은 우리 가족을 측은해했다.

그리고 오빠를 보며 답답해하는 모습들을 나는 그대로 보고 배웠다.

답답한 사람이 되면 안 된다. 빠릿빠릿해야 한다. 바보처럼 보이면 안 된다.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

그래야 부모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살아남는다고.


나는 오빠와 항상 비교당했다. 그래도 네가 똑똑하잖니. 네가 알아서 해봐.

스스로 잘하는 딸. 사실 나는 그리 똑똑하지도 않고 능력도 평균이하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오빠에 비해 그나마 나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고민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말이 안 되는 거였고 힘듦을 토로할 수 조차 없었다.

스스로 해내는 게 중요했기에 꾸역꾸역 만족하지도 못하는 삶을 결과물을 낸 것 마냥 이루어낸 척을 했다.


나도 옆에서 누가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나도 옆에서 누가 좀 대신해 줬으면 좋겠어.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 지금도 힘든데 나한테 오빠 인생까지 떠넘기지 마. 더 이상 혼자 하기 싫어. 

그냥 다 하기 싫다고.


마음속의 말들은 내뱉지 못해 곪고 곪아 자기 연민이 극에 달했고 

죄책감과 분노는 터질 듯이 평생 동안 쌓였다.

부모님에 대한 분노와 오빠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는 더 이상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철저히 혼자가 되자고 생각하여 온갖 핑계를 대며 명절에 집에 가지 않았다.

집안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았다. 오래된 친구들과는 일부러 멀어졌다.

그렇게 해서 치유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조금도 치유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기적으로 굴고 있을 때, 오빠는 생각보다 너무나도 본인의 삶을 잘 살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했고 장애인 전형으로 취직도 했다. 꾸준히 교회에 나가며 사람들과 소통도 한다.

그리고 가족에게 평생 외면받으며 산 오빠는 가족에게 지금까지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단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부끄러워졌고 동시에 치유되기 시작됐다.

잘못된 건 오빠가 아니라 나였다. 괜한 걱정으로 내 삶을 못살고 있던 건 바로 나였다.


오빠는 여전히 장애등급을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 오빠가 예전만큼 창피하지 않다.

이제는 같이 여행을 가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골라줄 수도 있게 되었다. 오빠와 함께 나는솔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서로의 생일에 용돈을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은 오빠의 존재와 병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치유되기 시작했다.

힘들 때 징징거리고 어리광도 부리기도 하며, 불편해도 혼자 하기보다는 같이 해보려고 한다. 

이전에는 혼자 잘 해내는 게 중요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불편하고 어려워도 같이 하는 게 마음이 훨씬 충만하다.


여전히 나는 분노와 죄책감으로 점철된 인간이다.

그럼에도 진심이 담긴 다정한 말 한마디는 모든 걸 치유한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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