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후 감상
서울에서는 왠지 내가 이상한 사람이어도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왜냐면 나 말고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서 마음은 자유로웠다. 매일같이 대중교통을 타며 만나는 사람들과 엮일 일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군중 속 외로움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동안 하는 사색의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하는 생각들은 달랐는데 분노할 때도 있었고 복잡할 때도 있었고 개운할 때도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기분과 생각은 단 한 번도 결론으로 도출된 적은 없었지만 그 혼란스러움조차 괜찮은 느낌. 뭐 어쩌라고. 내 옆에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저 사람도 아마 나와 비슷하게 혼란스러울 텐데. 지하철 한 칸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고작 그 속에서 내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란, 우주 기준으로 보면 정말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혼란스러울 때는 군중 속에 섞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위로가 되었으니까. 이게 바로 내가 느꼈던 서울의 편안함이었다.
이직이 결정이 나고, 나와 같은 사투리를 쓰는 지방 광역시로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는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충청도 억양은, 이곳에서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회사 사람들이 부모님이 쓰던 진한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같은 사투리를 쓴다는 것에서 오는 친근함은 아마 지방사람들만 이해하지 않을까. 회의 중에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사투리를 상대방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편한 대중교통 때문에 1년에 한 번도 안 하던 운전을 해야 할 날이 많아졌다. 회사에는 나와 같은 자취생이 별로 없고 이미 가정을 꾸리고 정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왠지 나처럼 혼자 돌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가족단위가 많은 동네라 혼자서 갈 곳도 별로 없다. 동네가 좁아서 산책하다 보면 회사 사람을 마주치기도 한다. 더 이상 군중 속에서 섞여 나의 이상함을 감추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익숙해서 좋긴 한데, 너무 평화로워서 조금이라도 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대중교통을 탈 때 노래를 들으며 사색하는 시간이 없어졌다. 조금은 아쉽지만 확실한 건 지금은 회사로 인한 스트레스는 확 줄었다. 회사가 만족스러워서 그런지 행복감도 올라갔다. 걱정거리도 없어서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별일 없이 사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동한 나의 아이텐티디라고 여겼던 나의 이상함이 사라지는 와중인 것 같다. 잘 가라 이상한 나야.
혼란스러운 날들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