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한다는 것 (3)
한 집단에 속해 실무자로서 일을 한다는 건 다른 의미로 내 윗사람에게 계속해서 컨펌을 받는 과정이다. 일의 결과물뿐 아니라 일을 하는 방식과 협력업체, 예산과 예상 기간, 때로는 일하는 장소까지 보고를 하고 컨펌을 하고 진행을 한다.
내가 볼 때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싶어 상사에게 보고하면 다시 해오라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는 상사와 나의 기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기준치는 다르다. 누군가에게 정말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그 경계가 애매한, 매력이라는 단어로 그 기준치를 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기준치가 있다. 그러나 그 기준치를 압도적으로 넘는 경우에는 웬만하면 이견이 없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기준치가 높다. 따라서 일의 결과물이 다르다. 같은 일을 해도 아웃풋이 훨씬 우수하다. 이미 스스로의 높은 기준치를 넘어섰다. 그래야 일이 끝난다.
누구나 기억하듯이 학창 시절 공부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전교 1등이다. 전교 꼴등과는 기준치가 다르다. 수능 만점을 목표로 공부하는 사람과 올 1등급을 목표로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량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아는 것과 한 두 가지 몰라도 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5성급 호텔 주방장과 동네 분식집의 기준치는 다르다. 스페셜티 커피와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의 기준치는 다르다. 우리는 그 기준치가 다른 것을 알기에 기꺼이 다른 수준의 돈을 지불한다.
일을 하는 사람이 기준치가 높으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건 필연적이다. 최근 신제품의 광고 촬영 현장에 갔다가 느끼는 바가 많았다. 단순히 제품을 진열하고 예쁘게 보이기 위한 뷰티컷을 찍는 상황에서도 주와 부의 차이, 시선의 흐름, 콘셉트와의 일관성, 눈의 피로도나 제품 주목도 등을 고려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은 컷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감독과 대행사에게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많이 배웠다. 제품의 담당자인 나보다도 훨씬 높은 기준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깐깐한 눈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음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기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스스로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경험해봐야 한다. 마치 영화 <아저씨>가 개봉했을 때 원빈을 보다가 옆자리에 앉은 남자친구가 오징어로 보였다는 증언들처럼, 좋은 것을 보면 기준치가 높아진다.
우리가 10년 전으로 돌아가 당시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면 어떨까? 화면도 작고 해상도도 별로고 반응속도도 너무 느리고 콘텐츠의 다양성도 떨어지며 앱의 활용도도 너무나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미 더 좋은 것을 경험한 우리는 이미 기준이 높다.
고등학교 시절, 축구화에 관심이 많았다. 축구화는 같은 디자인이더라도 보급형부터 최상급까지 3~4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는데 보급형을 신다가 그 윗단계를 신는다고 해서 특별히 뭐가 좋은지는 알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보급형을 신으면 느낄 수 있는 그 불편함은 꽤나 심각했다. 내 발도 높은 기준을 가지게 된다.
마케터인 나에게 있어 일의 본질은 소비자다. 소비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불편을 갖고 있는지 고민하고 그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수준의 제품 혹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어떻게 이를 제시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더 나은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 정도면 소비자가 만족하겠지'식의 사고는 부족하다. 결국 스스로 까다로운 소비자가 되어 볼 필요가 있다.
마케터라면 좋은 제품을 많이 써보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직접 경험해보면서 스스로의 기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 마케터가 아니라도 좋은 보고서를 보고 일 잘하는 사람의 결과물을 자신의 것과 비교하면 기준치를 높여야 한다.
아마존에는 바 레이저(Bar Raiser)가 있다. 독특한 아마존만의 채용 방식인데 급하다고 해서 아무나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최고 수준의 인재만이 채용되도록 기준(Bar)을 높이는 사람(Raiser)을 두어 독립적으로 채용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1998년부터 시행된 이 정책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기간 동안 아마존이 세계 최고 기업 중 하나가 되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일에 있어서는 기준치가 높은 깐깐한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