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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피 Oct 20. 2023

한 회사가 문화를 만들다

배민다움: 배달의 민족 브랜딩 이야기

취업준비생 시절 배달의 민족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이라는 회사의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됐다. 정확한 직무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조직문화혁신팀'의 신입사원을 뽑는 공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일을 하는 팀도 있다는 것, 그 팀에서 무려 신입사원을 채용한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자소서에 '좋아하는 시나 소설, 노래, 영화를 중심으로 자신을 자유롭게 소개하라'는 항목이 있는 것도 참 인상 깊었다. 당시 별로 크지 않았던 회사 규모, 내 기준에 성장성이 제한되어 보였던 비즈니스 모델, 무턱대고 지원하기에는 너무 막막한 자기소개서 문항 등의 이유로 나는 해당 회사에 지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회사는 매출액 3조 원, 영업이익 5천억 원에 가까운 실적을 올릴 뿐만 아니라 너무나 일하고 싶은 환경을 갖춘 회사가 되어있었다. 홍성태 교수와 김봉진 대표의 인터뷰 형식으로 엮인 이 책은 마케터 필독서 중 하나가 되었다. 단순히 일하기 좋은 회사를 넘어 '페르소나'를 갖춘 성공적인 기업이 된 것이다.


창업자인 김봉진은 모든 일을 '정의 내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배달 시장에서 전단지가 가진 한계점에 대한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업의 개념과 타깃 고객을 명확히 정의했다. 그렇다고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사업을 키워나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규모를 작게 빠르게 테스트해보고 아니면 빠지고 하는 식으로 배수의 진을 절대 치지 말라고 하며 가볍게, 즐겁게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세계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아마존이나 구글같은 회사에서도 실패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얼마나 많은지 알면 '가볍게' 움직이는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실패에서도 불구하고 저희는 계속 실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어요, 타석에 계속 올라가서 스윙을 해야 안타도 나오고 홈런도 나오고, 번트라도 나오니까요. -p79
새로운 모델을 찾기 위해서는 계속 스윙을 해야만 뭐가 맞는지를 알 수 있어요. 끊임없이 고객을 탐색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도해 가야죠. -p80


배달의 민족 서비스가 놀라운 점은 특유의 '키치스러움'으로 브랜딩을 했다는 것이다. 마케팅 일을 하는 나조차도 브랜딩이라고 하면 나이키, 애플, 샤넬 같은 힙하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만 떠오르는데 B급 감성이 브랜드가 될 수 있다니 새삼 놀랍다. 그것도 싸 보이지 않게. 이런 키치함을 브랜딩화 하기 위해 배달의 민족은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한다.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제일 이뻐'를 통해 전국의 경희와 경희친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부럽다 김우식' 등 특정 고객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옥외광고로 풀어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광고가 쏟아지는 오늘날에 류승룡이 우리가 어떤 민족이냐며 소리치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아무도 감동받지 못하지만, 단 한 사람을 제대로 감동시키면 그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어서 모든 사람이 감동받는구나' -p112


그렇다고 우아한 형제들이 가벼운 회사는 아니다.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공유하면서도 철저한 규율을 강조한다. 배민의 핵심가치가 '근면성실, 새 시대 새 일꾼, 근검절약'이라는 게 낯설게 다가온다.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은 이런 배달의 민족의 프로페셔널함을 프로페셔널하게 문서화하여 내부에 공유한다. 창의력은 제약과 규율에서 나오는 것이지 질서없는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개인이 더 오랫동안 몰두하고 연구하며 자율적으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준 거지, 자유로운 문화를 거저 선사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원칙 없이 세워진 자유로운 문화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p223


책을 읽는 내내 리더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절감했다. 독서를 읽고 사색하고 들어주고 적용하는 리더. 외부고객을 행복하기 위해 내부고객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리더.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이해하는 리더. 이런 리더를 가진 회사와 그 구성원들이 참 부러웠다.


CNN 창업자 테드 터너가 되게 멋진 말을 했어요.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Lead, Follow or Get out of the way)'라는 말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인데요. 총대 메고 깃발 꽂고 이끌며 리더십을 발휘하든지, 아니면 확실하게 팔로우십을 발휘해야겠죠. 방관자가 되어서 불만만 갖는 사람은 조직에 필요 없다는 거죠. -p244


이 책을 읽으며 이런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보다 스스로 이런 리더로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몇몇 문장에만 밑줄을 쳤지만 2번, 3번 다시 읽어보니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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