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Keep Buying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막연하게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외제차를 타고 싶어서, 좋은 집에 살고 싶어서, 남들에게 으스대고 싶어서는 아니다. 돈을 걷어낸 그 너머의 세상에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돈이 아닌 다른 기준에 의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내 감정으로부터의 자유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것에 초연해지고 세상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돈이 있으면 순간순간에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많은 책과 강의를 보고 듣고 생각해 본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초기에 소득을 높여서 종잣돈을 빨리 만든 다음 빠르게 투자의 세계로 가는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돈이 돈을 벌게하는 시스템을 만들면서 세금을 줄일 방법을 찾는다. 나를 위해 일해줄, 돈이 돈을 벌게 해 줄 수익창출자산으로는 뭐가 괜찮을까.
주식? 전 세계 내로라하는 펀드매니저들도 시장지수 이기는 게 어려운데 그들보다 지식과 경험이 훨씬 부족한 내가 무슨 수로 대박 종목을 발굴할까. 아무리 실력이 있어 돈을 많이 벌었다 한들 잘못된 판단 하나가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10루타가 될 종목을 발굴하는 게 피터린치한테나 가능해 보인다.
부동산? 집 한 채는 실질적인 수익이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재테크라고 생각하기도 애매하고 레버리지가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먼 훗날 인구구조의 변화가 급격하게 느껴질 때 과연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도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땅과 건물에 별로 관심이 가지 않고 부동산을 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다른 투자수단들이 아른거린다.
코인? 실체가 없는 것에 투자하고 싶지 않다. 보석이나 미술품처럼 가치를 인정받아 오래갈 수도 있지만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이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믿음으로 쌓아 올린 가치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이 가지 않는다.
여러 해를 고민하고 공부했다. 결국 지금 나는 절약하고 소득을 늘리는데 생각의 에너지를 사용하며, 이렇게 모은 돈을 미국시장을 추종하는 ETF와 교환하는 것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왜 ETF를 사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복습하고 의심하며 결국에는 확신(Conviction)을 갖고 단 한 번도 이 길을 벗어난 적이 없다. 투자에 있어서 스스로 공부해야 흔들리지 않음을 그 과정에서 배웠다.
이러한 내 투자철학에 대한 믿음을 데이터를 통해 더 간결하고 깔끔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해 준 책을 만났다. 제목도 내용도 심플하다.『저스트. 킵. 바잉』그냥 계속 사라는 것이다. 그렇다. 부자가 되려면 그냥 계속 자산을 사모으면 된다. 이 책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돈 문제에 관해 고민하던 저자 '닉 매기울리'가 다양한 자료를 연구하며 깨우친 진리 '그냥. 계속.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다. 크게 저축과 투자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부분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들을 짚어준다. 몇 가지 인상 깊었던 '팩트'들을 공유한다.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다루지 않았음을 유의해주길 바란다.
소득이 적을 때는 경력을 개발하여 소득을 늘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종잣돈이 없는 상태에서의 투자는 커리어 발전의 기회를 날릴 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저축이 중요하고 후반생에는 투자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지금 당장 투자자산이 없다면 저축에 초점을 맞춰라. 초기자산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한결같은 방법은 일단 소득을 늘리는 것, 그리고 그다음에 수익창출 자산에 꾸준히 투자하는 것이다. -p75
지출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소득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없다.
저자는 더 많이 저축하기 위해 소득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며 내가 가진 인적자본을 금융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한 총 5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모든 방법이 장단점은 있지만 조직에서 승진하는 것을 너무 간과하지는 말자.
1. 시간/전문지식의 판매 -> 쉽지만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하다.
2. 기술/서비스의 판매 -> 수입이 많지만 판매가능한 수준이 되기까지 시간투자가 필요하다. 확장이 어렵다.
3. 다른 사람 가르치기 -> 확장이 가능하지만 경쟁이 심하다.
4. 제품 판매하기 -> 확장이 가능하지만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
5. 조직에서 승진하기 -> 리스크가 적지만 시간과 일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
조직에 들어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승진하는 것은 소득을 더 올리는 여러 방법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데도 한 편으론 가장 간과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p81
물론 조직에 소속되어 일하는 정규직 노동만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기 능력을 키울 수 있으므로 경력 개발을 통해 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은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다 -p82
그러나 저자는 이런 방법들이 최종 목표가 아닌 일시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면 소득 창출의 목적은 결국 '수익창출자산'을 구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 목적은 직접 소유가 되어야 한다. 즉 오너십, 즉 어떤 사업이나 자산을 '소유'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러니 여러분은 추가 소득을 이용해 수익창출자산을 계속 사들여야 한다. -p84
일에 관해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냉소적이 된 듯하다. 그러나 돈을 받고 인정욕구와 자아실현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조직생활의 가치를 남의 말만 듣고 실제 본인이 느끼는 것보다 너무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한다. 자주 갖는 생각이다. 그들은 돈을 넘어선 자신의 존재론적 가치에 더 많은 중요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FIRE를 외치며 일을 빨리 그만두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과연 그런 삶이 행복할까? 대개 재정적인 측면보다 존재론적인 측면이 꽤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스터 원터풀'이라는 별명을 가진 케빈 오리어리는 36세에 자신의 첫 회사를 매각하고 은퇴한 후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은퇴 후 3년이 지나자 지겨워 미칠 것 같았어요. 일은 돈 때문에만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사실을 깨달아요. 일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해 줍니다.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사회를 제공하고, 그 사람들과 흥미로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p186-187
돈이 전부가 아니다. 돈은 결국 원하는 인생을 살게 해 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정작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일을 할지 말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애널리스트의 말을 믿고 특정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카지노에 가서 홀짝게임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 기업을 가장 잘 아는 CEO도 그 회사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더군다나 여기에 사람의 심리와 거시경제라는 요소가 복잡하게 얽힌다면? 홀짝게임이 아닌 숫자 맞히기 게임이 될 것이다.
심지어는 전문가들조차 광범위한 기업 인덱스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다. 따라서 굳이 스톡 피킹을 시도해 볼 필요가 없다. (중략) SPIVA 보고에서 따르면, 5년이라는 기간 동안 75퍼센트의 액티브펀드가 기업 인덱스 투자와 같거나 더 낮은 성과를 거두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75퍼센트의 액티브펀드를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자산운용전문가들이 운용했다는 점이다. 이들조차 인덱스 투자를 이기지 못하는데, 여러분이라고 가능성이 있겠는가? -p254-255
더군다나 인덱스 펀드를 사면 우리는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데 쓸데없는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우리 인생에 조금 더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왠지 주식시장이 다음 달에는 폭락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저자는 데이터에 따르면 이런 느낌을 완전히 무시하라고 말한다). 기다리다가 투자를 하지 못하거나 안전하게 분할매수를 한다. 그러나 저자는 나눠서 투자하는 것보다 가능한 빠르게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주식시장이 대부분의 기간에 상승한다는 사실은 투자를 망설이며 흘려보내는 하루하루가 미래의 관점에서 보자면 손해를 축적하는 나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투자 적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뛰어들어라.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돈을 투자하라. -p270
투자를 하기 가장 좋은 시점은 언제나 '바로 지금'이다. 시기를 막론하고 한 번에 모든 돈을 투자하는 'Buy Now'가 가진 돈을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투자하는 'Average-In'보다 유리하다. 이 챕터를 읽고 나는 더 이상 투자적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주식 가치가 과대평가되었거나 큰 폭락장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더라도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주가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이유로 애버리지인 방식으로 투자하며 현금보유를 고집하려면 이것을 잘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당장 가진돈 전부를 투자할 것이냐, 아니면 시간을 두고 조금씩 투자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문제라면 나의 대답은 명확하다. 거의 언제나 지금 당장 전부를 투자하는 게 옳다.
어떤 가치평가체계를 이용하든 어떤 종류의 자산에 투자하든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투자 적기를 기다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러분은 그만큼 가난해진다. -p290
저자는 '신도 평균단가분할매입법보다 높은 수익을 내지는 못한다'라고 말한다. 이 문구가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모든 타이밍을 알고 있는 신이 되어도(모든 저점을 알고 그 부분에서만 투자를 하더라도) 바이더딥(저점매수)이 평균단가분할매입법보다 수익이 좋지 못한 경우가 70퍼센트 이상이니 저점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완벽한 저점을 찾는 것은 우리 같은 인간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더라도 일반적으로 바이어딥은 평균단가분할매입법보다 더 좋은 수익을 올리지 못한다. (중략) 결국에 시장이 상승세를 유지하며 앞으로 달려가는 동안 여러분은 복리 효과를 누릴 기회를 놓치며 시간을 허비하는 셈이다. -p307
이제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부정할 수 없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가능하면 빨리 투자를 시작하라. 그리고 가능하면 자주 투자하라."
하느님이 와도 평균단가분할매입법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마당에 여러분이라고 별수 있겠는가? -p309
저자는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대한 가치를 역설하지 않는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함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한편 가장 중요한 자산이 시간이라는 점을 말한다. 돈이야 언제든 벌 수 있지만 시간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다. 2023년 현재 93세의 워런버핏과 당장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부자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들은 그들이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에 자신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계속 남들과 비교를 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불쌍한 인간이라서일까. 우리는 이미 부자일지도 모른다.
<크레딧스위스세계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순자산 4,210달러 이상이면 세계 절반의 사람들보다 부자이다. 순자산 9만 3,170달러 이상이라면 미국에서도 중위 순자산에 가깝고,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부자이다. -p441
저자는 이밖에도 투자자라면 변동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시장은 공짜로 투자자를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지 않는다. 누구도 변동성을 피해 갈 순 없다. 투자에 관한 마인드셋을 공부하다 보면 인생에 적용할만한 법칙이 참 많다.
우리는 삶을 성장주로 시작해서 가치주로 마감한다. 성장주는 우리가 어릴 때 자신을 생각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매겨진다. 기대치도 높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크다. 하지만 우리 중 상당수는 여러 성장주가 그러하듯이 결국은 이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기대치를 낮출 만큼 낮추며 미래에 상황이 좋아질 것이란 생각 자체를 접어버린다. 투자자들이 가치주에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기대보다 상황은 좋아지기 마련이고, 우리는 가치주 투자자들이 그런 것처럼 즐거운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다. -p456-457
투자에 대한 마인드셋, 그리고 투자의 기본기를 쌓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