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책을 읽다 보면 소름이 끼치는 순간들이 있다. 이러한 순간들을 특별히 많이 만들어 준 책을 최근에 읽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나는 인류와 우주, 그리고 우리 존재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먼저, 인류라는 종족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그 위대함은 타고난 지능이 아니라, 기록을 남기고 이를 통해 배우며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역사를 세이브하고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수 천 년이 흐른 오늘날, 어느덧 우리는 이제 다행성 종족으로 나아가 화성 탐사를 꿈꾸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절실히 깨달았다. 인류와 인생은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거의 가치가 없다. 지구의 주인은 결코 인간만이 아니며, 우리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생명 유지라는 목적으로 프로그램된 작은 유기체일 뿐이다.
138억년 전, 빅뱅에 의해 우주는 시작되었다. 우주는 이 과정에서 수소와 헬륨을 방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우연히도 그러한 물질들과 환경이 조합하여 현재 인간의 모습을 만들게 되었다. 모든 것은 빅뱅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우주의 후손이다.
현대의 인류를 만들어온 과정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다. 특히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는 과학과 학문이 이교도의 사상으로 치부되며 억압받았음을 떠올리면, 인류가 쌓아온 지식과 진보의 과정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칼 세이건이 매우 아쉬워 한 대로, 인간 지식의 정수였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는 인류의 발전을 후퇴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해 온 방법은 어떤가. 다른 종교를 무시하고, 탄압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전쟁을 일으켜 서로를 죽인다. 현재까지도 우리는 다른 문화를 미개하다고 손가락질 하기도 하고 같은 문화권 내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다른 문명과 문화는 ‘인간으로 되어감’의 또 다른 방식에 불과하며, 각기 다른 조건 속에서 발견하고 쌓아온 지식과 경험의 총체임을 깨닫게 된다.
이 모든 깨달음을 종합하면,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의 일상적 고민—서울 아파트, 직장, 사회적 지위—은 실로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삶은 결국 순간을 즐기는 것,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럼에도 나는 내일 돈과 승진, 명예와 인정을 추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래도 잠깐은 멀리 떨어져서 우리 존재의 목적과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을 떠올려보면, 허무하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결국 이 역시도 '인간으로 되어감'의 하나의 방식이겠지.
<코스모스>는 단순히 우주와 과학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인간과 문명, 삶과 존재를 한층 넓은 시야로 성찰하게 만드는 안내서였다. 이 책을 써준 인류의 지성에게 진심을 담아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