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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새암

by 나무다



우리 집과 윗집이 이어지는 언덕길 귀퉁이에 봉숭아 꽃 한 무리 곱게 피었더랬지요. 봉숭아 꽃은 언니들 손톱을 곱게 물들이고도 아직 많이 남았더라구요.

참! 내 이름은 송이예요. 밥 많이 먹고 엄마 말씀 잘 들으면 다음해엔 꼭 학교에 갈 수 있댔어요. 그럼 나도 언니들처럼 학교에서 주는 옥수수 알갱이 든 맛있는 보리빵을 매일매일 먹을 수 있겠지요?

아! 이제 겨우 여름인데 언제 가을이 오고 겨울이 가고 새 봄이 온다는 말이에요? 내 생각에 새 봄은 너무 멀어 오지 않을 것만 같아요.

아무튼 오늘도 마당에서 혼자 놀다 언덕길 위의 봉숭아 열매가 생각이 난 거예요. 난 봉숭아 열매가 참 재미있어요. 손가락으로 꼭 누르면 꿈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요. 하나 둘 열매 놀이를 하고 있는데 분홍 꽃잎 너머에서 잠자리 한 마리 날아 나오지 뭐예요. 내가 좋아하는 꼬리 빨간 이쁜 고추잠자리예요. 잠자리는 나를 보고 놀랐는지 날아가 버렸어요. 나는 잠자리를 따라 달려갔지요.

팔랑팔랑, 팔랑팔랑. 옆집 담장에 잠시 앉았다가,

팔랑팔랑, 팔랑팔랑. 개울가에 가득 자란 풀 이파리에 앉아서

내가 따라오나 안 오나 기다리고 있겠지요.

잠자리 앉은 곳을 알아내기만 하면 이내 팔랑팔랑 앞장서 날아가버리지요.


개울가 새암 근처에 다다랐을 때 잠자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요. 건너 감나무 밭으로 날아가 버린 걸까. 개울에 무성한 풀잎들 속으로 숨어버린 걸까. 눈 동그랗게 뜨고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뽀얀 얼굴 귀여운 볼연지의 고마리 아기 꽃들만 새록새록 올라오고 있더라구요.


이 새암은 바가지 새암이에요.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야 하는 아래 큰 새암하고는 달리 쪼그리고 앉아 바가지로 물을 길어 바가지 새암이지요. 난 바가지 새암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졌어요. 혹시 잠자리가 그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새암은 아주 조용해요.

시원하고 촉촉한 공기가 햇볕에 그을은 빰을 식혀주었어요. 눈을 감고 새암 속 공기를 한 껏 들이마셔봅니다. 물냄새. 싸한 물냄새가 납니다.


아 ~~~~~

어둡고 조용한 물속을 향해 조심스레 소리 내어 보았습니다.

아 ~~~아 ~~~~~웅, 새암속이 울립니다.


야 ~~~아 ~~~~~

좀 더 힘주어 소리 내 봅니다.

야 ~~~~아 ~~~우우웅~~~, 샘물 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시나브로 시나브로 어둡던 물속이 들여다 보입니다.


올망졸망 돌들이 앙증맞게 볼을 맞대고 새암 벽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바닥의 모래들은 노란색으로 주황색으로 일렁거립니다. 정말이지 맑은 물은 바닥도 돌틈도 깨끗이 보여줍니다.


그때, 물 밑 모래 몇 알 살살 떠오르다 스르르 다시 가라앉는 것이 보였습니다. 누군가 모래 속에서 피어올라와 물속 바닥을 사브작 사브작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 잔잔한 물속에 대고 주문을 외면 마법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새봄이 어서 와서 송이도 학교가게 해주세요.’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책가방을 등에 매고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물 위에 비쳤다 사라졌어요.

꼼짝없이 새암 속을 들여다보는 동안, 언제 돌아왔을까요. 빨간 꼬리 고추잠자리가 고마리 아기꽃 볼에 앉아 한들한들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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