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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BAC Sep 27. 2021

아들 2

지난 일기장 속에서..

<이별에 관하여>


‘엄마, 배 아파. 못 갈 것 같아.’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들은 화장실에서 배가 아프다며 나올 생각을 않았다. 스케줄에 맞춰 나는 이미 아들의 여행준비를 다 끝내놓은 터였다. 여행 가방은 차 트렁크에 넣어두었고, 여권도 챙겼고, 아들이 비행기 안에서 먹을 약간의 간식과 함께 긴 여행 지루하지 않도록 아들이 평소에 읽던 유치한 책도 챙겨넣었다. 이제 남은 건 아들녀석뿐!!!


그러나 이 녀석이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배가 아프다며, 일본까지라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빠리까지는 도무지 안 되겠다고 버텼다.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 여정을 미뤄본 적이 없어서 순간 고민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옳은 것인가? 내가 가장 현명하게 이 순간을 판단할 수 있다면 그게 뭘까? 이미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 지나면서, 만의 하나를 위해 바로 다음에 해야 할 나의 대처법에 대해 재빨리 몇 가지 안을 생각했다.


1. 아들을 잘 달래서 여분의 속옷을 챙겨주고 일정대로 태워 보낸다.

2. 혹시 모르니 비행기 날짜를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해본다.

3. 일단 공항으로 가서 상황을 보고 결정한다.


출발 전 세 시간이 다 되어가자 나 역시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좀 늦게 가면 어때. 아프다는 아들을 달래어 가며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서둘러 항공사에 전화를 돌려보니 절대불가는 아니었고, 일정변경 수수료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아들의 얼굴표정을 보니, 녀석은 아예 출발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애아빠 사정을 모르니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할 것인지 빠르게 상의한 뒤, 날짜를 미루는 것으로 결정했다.


애아빠가 남프랑스에 살아서 빠리까지 국내선 왕복비행기를 예약했는데, 당일에 모든 걸 취소해서 그 왕복티켓을 순식간에 날리고 바로 이틀 뒤 티켓으로 다시 샀으니 손해가 컸다. 이곳에서도 이곳대로 손해를 봐야 했지만, 어쩌겠는가? 자식 가진 부모란 다들 그렇듯 우리도 아이 문제에서만큼은 다른 부모들과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아들의 프랑스행은 예정되었던 날짜에서 이틀 미루어지게 되었다. 아들과 함께 보낸 주말은 뜻하지 않게 받은 특별보너스처럼 기쁘면서도 빠르게 흘러갔고, 이제는 더 이상 비행기 날짜를 미룰 수 없는 때가 왔다. 아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이틀의 시간은 대가를 치렀지만, 그 사이 아들은 다시 마음을 잡았다. 지난 2월말 한 달 간 현지체험을 하고 돌아올 줄 알았던 프랑스생활이 지금의 상황으로 바뀌었으니 아들도 엄마도 둘 다 이러한 이별은 처음 맞는 것이 아니었던가. 주말 이틀을 그렇게 보내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며, 공항에 도착해서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이별이 그러하듯, 이제는 더 늦출 수도 없는 아들과 이별하는 순간 또한 다가왔다. 아들의 짐을 챙기며,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고 체중계를 이용해 몇 번이고 무게를 체크하고, 다 챙겼다 싶으면 다시 또 보내고 싶은 물건이 생겨서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였다. 나는 별로 음식 가리는 것도 없고 한국음식이 아니어도 잘 지내다가도 한국만 다녀오면 괜히 한국 마트에서 산더미처럼 사오며 그립고 허한 마음을 채우곤 했다. 이제 그 시절을 아들이 고스란히 엄마 뒤를 따르게 되었다. 이런 안타까움을 온가족이 함께 느꼈고, 우리를 아는 모든 주변의 가까운 이웃들이 함께 해줬다. 잘 다녀오라며 아들에게 선물과 용돈도 챙겨주셨다.


세상의 모든 이별의 순간은 길든 짧든 안타깝고 슬프다. 특히나 아직 핏덩이 같은 아들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더더욱.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은 삶의 지혜이겠으나 피붙이를 떠나보내는 엄마는 애써 담담해져야 하는 것이다.


아가 사랑하는 엄마의 영원한 아가. 아들은 어느새 훌쩍 커버려 의젓해 보이기까지한다. 아들이 보고 싶을 땐 이걸 보라며 신나게 까불어준다. 창문에 손자국도 남겨주었다. 언제나 항상 함께 한다고 생각하라나. 우리의 이별은 이렇게 시작했지만 이건 불과 시작일 뿐이겠지. 아들과의 너무나 이른 이별에 먹먹해지는 오후이다.

——-

올 해도 나는 똑같은 경험을 했다. 이제는 공항 지킴이보다 키도 훨씬 커졌고, 엄마보다 키도 컸다. 그러나 이별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로 익숙하거나 성숙되어지질 못한다. 아마도 아들과의 이별의 시간은 내 인생내내 연속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에 있는 아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또 힘 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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