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생 몇몇이 모임을 가졌다. 나름 나름 친밀했던 친구들이 연중 한두 번 만나 ― 이박 삼일 정도 일정으로 ― 추억을 반추하고 도타운 정을 나누는 자리다. 친구들은 전날 다소 과음을 했어도 아침 6시가 되면 얼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종심(從心)을 넘어선 지 이태가 지났는데 나이가 들어서라기보다는 은연중 아직은 건재하다는 무언의 시위 성격이 강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한 친구가 코골이 때문에 잠을 설쳤다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아, 그건 약과여!” 두 번째로 덩치 큰 친구가 동네 할머니의 느끼한 말투와 호들갑스러운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살다 살다 그런 괴상망측한 코골이는 처음 듣는다며 얼굴까지 잔뜩 찌푸렸다. 다른 친구가 누구냐고 묻자 “몰라. 내 오른쪽에 잔 건 양 교수인데, 왼쪽에 잔 건 누군지도 모르겠어.” 오십 년 지기 소싯적 친구 다섯 명 중 그의 왼쪽 옆에 누워 잔 건 바로 나였다.
비염이 생긴 건 육십 대 초반 무렵이었다. 아무래도 새벽 산행 때 맞닥뜨리는 차가운 공기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특히 잠잘 때 아래쪽 코가 막히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장년 시절부터 과음으로 인한 수면 무호흡증 때문에 옆으로 누워 자는 습관이 일상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새된 코골이 호흡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모양이었다. 내가 어떤 소리였느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묻자 그는 몸을 비비꼬며 “몰라, 흉내도 못 내겠어.”라며 코 먹은 소리를 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더없이 충격이 컸다. 이게 고등학교 동창생이라는 친구의 입에서 들을 수 있는 충고란 말인가. 묻고 또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입장이 바뀌었더라면 나는 그처럼 과격한 언사와 몸짓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다. 다음날 아침 이불을 정리할 때였다. 예비역 준장인 친구가 다가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내가 지켜보았는데 너의 코골이는 이상 무다.” 코골이를 지적했던 친구는 하루 일찍 귀향을 한 후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말하자면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하늘을 마뜩잖게 바라보는 심정이었다. 심한 모멸감과 뭉개진 자존감에서 선뜻 벗어날 수가 없었다. “화가 나면 열까지 세고 상대를 죽이고 싶으면 백까지 세라.”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3대 대통령 제퍼슨(Jefferson, Thomas)의 말을 곱씹으며, 몇 번이고 숫자를 세고 또 헤아렸지만 감정이 쉬 진정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절교까지 떠올렸을까. 그 친구에게서 카톡과 전화가 연이어 왔으나 받지 않았다. 친구를 어떻게 대할지 아직 속내가 정리되지 않은 때문이었다. 친구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옛 정이 되살아날지에 대한 물음까지 한 번 이어진 생각은 끝이 없었다. 다음날 전화를 받았다. 요즘 바쁜 일이 있어서 끝나면 전화하겠다는 말을 짧게 건넸다.
어린 시절 친구를 떠올려 본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산골 마을에 동네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우시장에 소 팔러 가는 할아버지를 ― 이십 여리 넘게 ― 몰래 쫓아갈 때 동행한 걸 보면 꽤나 친했던 것 같다. 이후 초등학교 때는 친구가 없었던 것 같고, 중학교 때는 두세 명, 고등학교 때도 서너 명에 ― 이 친구도 그중 한 명이다 ― 지나지 않았던 걸로 보아 적이 내향적이었고 주도층 등과는 생래적으로 거리를 두었던 모양이다.
가끔 웅숭깊지 못했던 우정에 대한 잔잔한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우정을 매개로 회자되어 오는 미담가화를 살펴보면 더한층 그러한 생각이 든다. 춘추시대에는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관포지교(管鮑之交)가 있었고, 전국시대에는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의 문경지교(刎頸之交)가 있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의 수어지교(水魚之交)가 있었고, 서양에는 로마시대 데이먼(Damon)과 피시어스(Pythias)의 동양판 문경지교가 전해 온다.
좀 더 드라마틱한 사연도 있다. 거문고의 달인 백아(伯牙)와 친구 종자기(鍾子期)에 대한 이야기다. 백아가 높은 산을 떠올리며 연주를 하면 종자기는 태산처럼 웅장하다고 했고, 도도한 강물을 떠올리며 연주를 하면 황하처럼 드넓다고 했다. 백아가 임우지곡(霖雨之曲)을 연주하면 종자기는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고 했고, 붕산지곡(崩山之曲)을 연주하면 집채만 한 산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이 얼마나 끈끈하게 아름다운 지음(知音)의 경지인가.
“함께하되 거리를 두라.”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예언자 ― 결혼에 대하여’에 수록되어 있는 산문시(散文詩)다.
『함께하되 적당한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에/ 쉼 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어느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마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마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의 영혼은 고독한 채로 두어라./ 마치 하프(harp)의 줄들이 한 가락에 울릴지라도/ 줄은 저마다 혼자이듯이….// 서로에게 마음을 주되,/ 서로의 마음속에 묶어 두지는 마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으리라.//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어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다가서지는 마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와 사이프러스(Cypress)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으니….』
백번 지당하고 타당하며 공감대가 형성되는 말이다. 또한 인간 속성에 대한 칼릴 지브란의 심도 있는 고찰에 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로 사랑과 희생을 언약하고 만리장성을 쌓은 부부 사이가 이럴진대 하물며 친구 간에 있어서랴. 햇볕 속에 너무 오래 있으면 색이 바래지고 그늘 속에 마냥 머물면 어둠이 물들기 마련이다.
상생은 조화와 공존에서 비롯된다. 거리는 상생의 들숨과 날숨처럼 조화와 공존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유와 공백은 구속에서의 해방이자 속박에서의 탈피다. 그건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여유와 자유의 공간이 ― 혼자만의 거리가 ― 그만큼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속상해하지 말자. 한 발자국 물러서서 마음을 다스리자. 출렁거리는 물결로 가슴에 파도를 만들어 흘려보내자. 친구에게서 받은 상처를 속가슴 한편에 묻어 두기로 했다. 무너진 자존감과 참기 어려운 모멸감은 역으로 친구에게 그만큼 신뢰가 깊고 정이 두터웠음을 뜻함이기도 한다. 그래, 한 발자국만 더 뒤로 물러서자. 그래서 친구의 느끼한 말투와 호들갑스러운 얼굴 표정이 짐짓 아무렇지 않게 될 때까지.[월간 자유 11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