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전적으로 동감하지는 않지만 어느 시점의 추억을 떠올리며, 살며시 미소 짓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미상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며칠 전 동해안의 소도시 울진에 다녀왔다. 서로에게 각별했던 고등학교 동창생 5명이 매년 한두 번씩 주기적으로 만남을 이어오는 장소다. 정년퇴직 후 곧바로 결성된 모임은 올해로 순년(旬年)을 훌쩍 넘어섰으니 이제 얼추 노인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나이다.
성격도 성향도 덩치도 다 제각각이다. 다만 공통분모가 있다면 ― 공업계 고등학교 기계과 출신답지 않게 ― 두루뭉술하게 인문학이라 할 수 있겠다. 용인, 대구, 포항, 제주도 등 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지역임에도 매번 참석률은 90%를 상회한다. 말하자면 추억을 만나러 갔다가 다시 추억을 안고 돌아오는, 추억 만들기 여행의 반복인 셈이다.
짜여진 주제는 없다. 지그재그로 시공을 오가던 대화가 어느 순간 두 친구만의 격론으로 이어진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어느 당의 당대표 선출에 대한 ― 두 친구 모두 당적을 가지고 있다 ― 서로의 견해였다. 한 친구는 당심과 민의가 반영된 탁월한 선택이라며 두둔을 했고 다른 친구는 경험이 일천한 정치 신인을 뽑았다며 날을 세운다. 잠시 경청하던 중도 경향의 또 다른 친구가 나섰다. 당대표로 선택된 그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변화의 기운을 가졌다며, 변화에 대한 시대의 부응이라는 말로 교통정리를 한다.
문득 고등학교 때 읽은 소설 데미안(Demian)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abraxas)다.”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순식간에 신(神)이 되어 날아올랐다. 얼마나 설레고 경이로우며 개벽에 가까운 환희였던가. 손에서 책을 놓는 순간 공부 잘하는 아이를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힘센 아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청소년기를 관통했던 절대의 화두는 이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거의 퇴직 무렵까지 좌우명으로 남게 된다.
주역(周易) 중지곤(重地坤) 괘(卦)에 나오는 대목이다. “천지(天地) 변화(變化)하면 초목이 번(蕃)하고 천지 폐(閉)하면 현인(賢人)이 은(隱)한다.” 정리하자면 하늘과 땅이 조화롭게 변화하면 초목이 번성하고 자연이 순리를 거스르면 군자는 모습을 감춘다는 뜻이다. 친구의 ‘국민의 힘’ 당대표론에 왜 갑자기 데미안과 주역을 떠올렸을까. 아무래도 그동안 무기력하게 경색된 국면으로만 치달려온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저항감이 알게 모르게 가슴속 깊이 깔려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변화된 모습을 거쳐 왔는가. 군대를 제대하고 만난 첫 직장에서 그대로 정년까지 맞았으니, 평소 지론과는 좀 색다른 아이로니컬(ironical)한 측면도 있다. 아마도 여행과 모험 등을 좋아하지 않는 기질이 한몫 거들었음도 부인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안으로만 파고들던 속내가 퇴직 후 몇 번의 변화를 맞게 된 건 순전히 ‘삼 세끼야’라는 조소 섞인 비아냥거림의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년퇴직 7년 차에 접어들던 초봄이었다. “수제화 아카데미 교육생 모집” 시내버스 차창 밖으로 플래카드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다가왔다. 컴퓨터 검색을 해 보니 ― 구청에서 주관하는 ― 주야간 20명의 수제화 교육생을 모집하는 안내문이었다. 잠시 머뭇거림은 이내 어떤 당위성으로 대치된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육체를 움직여 어떤 유형(有形)의 창작물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이 불끈 치솟았다.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각가지 사연으로 신청한 사람들 중 제일 연장자가 여섯 살 아래였다. 하루 3시간, 주 3일의 10개월 과정은 결코 만만한 여정이 아니다. 나이라는 배수진에 집념과 오기와 자기 신뢰라는 세 단어를 더 보탰음에도 순간순간 갈등이 많았다. 다음 해 1월 수료증을 받아들며 돌아본 자화상은 한 뼘 더 성장한 신중년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무언가 가슴을 뿌듯하게 채우는 느낌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구두 2켤레와 아내의 롱부츠 1켤레를 덤으로 남겼다.
집에서 200여 m 떨어진 지점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정년퇴직 10년 차를 마무리하는 가을 무렵 우연한 기회에 학교 보안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하루 3시간, 3교대 근무였다. 여러 가지 상념이 많았으나 불문곡직 근무를 택하게 된 것은, 퇴직 후 아내에게 변변한 외식 한 번 제대로 사 주지 못한 자격지심의 발로가 컸다. 이를테면 ‘삼 세끼야’라는 관념화된 의식 속에서 탈피하고 싶은 잠재된 욕구와 충동이 그만큼 컸음이리라.
하루 일과의 일정 부분을 읽기와 쓰기에 할애한다. 혼자 놀면서도 심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정년을 십여 년 앞두고 시작한 글쓰기는 거듭거듭 돌아보아도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성과도 있었으며 타인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라는데 반론의 여지가 없다.
산과의 만남은 모두에게서 우선한다. 사십 대 초반, 당시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는 테니스와 골프가 운동의 대세였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등산을 택하게 된 결정적 사정은 타인과 교류를 즐겨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어느만큼 작용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새벽 산행은 ― 눈이 와도 비가 내려도 거르지 않았다 ― 자신도 놀라울 만큼 어마어마한 변환을 가져왔다. 몇 년을 두고 재발하던 십이지장궤양과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통풍에서 벗어났으며,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으로 짐짓 우유부단한 성격을 단호함으로 바꿔 놓았다. 그렇게 30여 성상이 지나면서 산은 둘도 없는 지기로 유일한 스승으로 자리매김한다.
다시 한 번의 변화를 준비 중이다. 며칠 전 대구동부여성회관에서 주관하는 하루 3시간, 주 1회 3개월 과정의 홈베이킹(homebaking) 반 모집에 신청을 했다. 아내는 한식 요리 과정을 원했으나 ― 자칫 아내에게 종속되는 결과에 대한 우려로 ― 숙고한 결과 내린 결론이다. 그렇게 틈틈이 빵을 만든다면 아내의 ‘삼 세끼야’에서 한층 더 자유로워지고 차츰 친지와 이웃들에게까지 시야가 넓어지지 않겠는가.
비단잉어 코이(Koi)의 이야기다. 이 물고기는 아주 특이해서 작은 어항에 넣어 기르면 5~8cm 정도의 크기에 머물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 속에서는 15~25cm 남짓까지 자라고, 큰 강물에 방류를 하면 90~120cm의 대어에 이른다고 한다. 가히 변화의 무쌍함을 보여주는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수제화를 만들고, 학교 보안관으로 근무하며, 빵을 만드는 발상까지의 전환은 어쩌면 변화하는 코이(Koi)의 노정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고인 물이 썩는다.”는 속담이 있다. 산천이 사계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달이 차고 기울듯이 사람이 나이에 걸맞은 도전과 변화를 추구해야만 되는 이유다. 그렇다. 노년의 힘은 머묾이 아니라 변화에서 태동된다. 다만 코이(Koi)가 어항을 벗어나 강물로 향하는 출항이 아니라 강물을 떠나 다시 어항으로 돌아오는, 이제는 귀항(歸缸)의 여정이다.[월간 자유 10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