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으로 미싱을 배우러 다녔다. 그림 그리기는 아이를 재우고 나서 했던 것으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오전 오후에 운용할 시간이 생기자 문득 지난번에 다 배우지 못한 미싱이 생각났다. 수년 전에도 미싱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문화센터 수업을 등록한 적이 있었다. 미싱을 배우면 치마쯤은 간단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티셔츠도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생각하면서. 그러나 세 번쯤 나갔다가 곧 때려치웠는데 퇴근 이후에 무언가를 배우는 게 생각보다 피곤한 데다 무엇보다 수업이 재미없었다. 여럿이 배우니 정신없었고 혼자서 숨차게 수업을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결국 관뒀다. 등록비가 비쌌더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꾸역꾸역 나갔을 텐데 마침 가격까지 저렴했다. 그래놓고 끝까지 배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계속해서 곱씹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기본 정도는 끝까지 익혀보자 싶어 집 근처 공방에 수업을 등록해버렸다. 마침 수업비도 비쌌다. 어떻게 해서든 수업을 다 들을 게 분명했다.
수업은 화요일 오전 열 시에 시작되어 열두 시 반쯤에 끝났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나야 비로소 기본적인 미싱 기술을 다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이 세 달 수업을 다 들었지만 실은 수업 첫날에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손재주가 없는 데다 손까지 느려 미싱에는 영 재주가 없다는 것을. 무슨 작업을 하든 처음에는 꼼꼼하게 하고 싶어 하나 곧 지쳐 얼렁뚱땅 넘겨버리고 만다는 것을. 용두사미라고 할까. 시작은 거창한데 끝은, 망하지는 않았지만 또 보기엔 어느 정도 그럴싸해 보이지만 시작했던 포부에 비하면 뱀의 꼬랑지다. 옷을 만들 때에도 그랬다. 이쪽 바느질이 좀 밀렸지만 이 정도면 괜찮으니까, 이건 어차피 티도 안 날 테니까 그냥 만들었더니 보기엔 그럴싸하나 바짓가랑이가 비틀어져 있거나 소매 끝이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미싱은 여전히 재미없었다. 이번에는 셋이서 수업을 들었는데 나를 뺀 둘이 친한 사이였어도, 둘 중 하나는 미싱을 배운 적이 있어 혼자서도 척척 잘 만들었고 나머지 하나는 처음이었지만 손이 엄청나게 빨라서 시키는 대로 척척 만들어냈어도, 똥손이어도 괜찮다고 한 선생님이 막상 나를 보고서 한숨을 푹푹 쉬었어도, 아, 마지막 것은 조금 신경 쓰였지만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그런데도 미싱은 여전히 재미가 없었다. 처음에는 재밌는 듯도 했다. 실 끼우는 법을 배우고, 기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자투리 천에 연습도 해보고, 엄청 쉽다는 기본 바지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재미가 있었는데 패턴이 좀 복잡해지고 바느질해야 할 곳이 늘어나자 재미가 뚝 떨어져버렸다. 나중에는 벌받는 느낌으로 겨우겨우 옷을 만들어냈다. 세 달을 다니면 일곱 벌 정도는 만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딱 네 벌을 만들었다. 게다가 네 번째 옷은 채 완성도 하지 못했다. 역시 미싱도 아니었다.
어느 날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말 농장을 해보는 건 어떨까. 주말 농장을 하면 옥상이나 베란다가 아닌 내 밭에 이것저것을 편하게 심을 수 있는 데다, 주말마다 한적한 곳에서 흙을 만지며 평온함을 만끽할 수도 있었다. 이런 좋은 생각이 지금에서야 들다니. 당장 인터넷을 뒤져 근방의 주말 농장을 알아보았다. 지척에다 구하기는 어려워 차로 이십오 분쯤 가야 하는 고양시에 세 평짜리 밭을 얻었다. 처음 농장에 간 날을 기억한다. 농장이 꽤 넓었는데 아무것도 심기지 않은 불그스름한 땅이 세 평이나 다섯 평쯤으로 작게 나뉘어 있었고 곳곳에 숫자가 적힌 팻말이 꽂혀 있었다. 사람들이, 대개는 아이가 있는 가족이었는데 아이는 쭈그리고 앉아 붉은 흙을 조물거리며 놀았고 아빠나 엄마가 어색하게 농기구를 쥐고서 흙을 섞고 이랑을 올리고 비닐을 씌우고 있었다.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 오로지 식물을 심기 위해 정비해놓은 넓은 땅, 농기구를 쥔 사람들, 엄청나게 많은 채소 모종들. 그렇게 무언가 심고 거두는 삶을 동경했던 나는 조금 흥분한 채로 밭을 일구었다. 집중하여 돌을 고르고 고랑을 팠다. 비닐을 씌우고 상추와 깻잎과 파, 비타민과 청경채 같은 걸 심었다. 그렇게 흥분하지 않았으면 아마 금방 나자빠졌을 것이었다. 몸 쓰는 일에 취약하고 더더욱이 밭일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던 터라 고작 세 평짜리 밭을 정비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지 몰랐다. 당장에 허리가 반으로 똑 부러질 것만 같았고 등에선 장맛비 같은 굵은 땀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기분은 좋았다. 마음대로 모종을 심고 가꿀 수 있는 땅이 단 세 평 생긴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했고 땀 흘리며 일한다는 말 자체를 체감한 데 만족감이 들었다.
주말마다 부지런히 농장을 오갔다. 세 평짜리 땅에서 나오는 수확물은 생각보다 양이 꽤 많아서 토마토와 상추는 썩기 전에 먹어치우는 게 일이 될 정도였다. 가을에는 배추와 무를 심어 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난생처음으로 혼자서 해보는 김장이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엄마에게 조언을 얻어 배추를 절이고 김칫소를 만들어 버무렸다. 맛이 꽤 그럴싸했다. 모종이 좋았던지 배추가 달았고 김칫소의 간도 잘 맞았다. 어쩌면 엄마의 김치 맛과 비슷한 것도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그간은 어영부영 어른의 흉내를 내며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김치까지 만들고 나자 이제는 정말로 번듯한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벌써 나이가 서른여섯이었지만. 어쨌든, 좋았다. 배추와 무를 키워 김치까지 담그자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마음이 흡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