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 다녀왔다.
요즘 어르신답지 않게
유행도, 센스도 놓치지 않는 우리 시어머님.
“요즘 두쫀쿠 지나고 봄동 비빔밥이 유행이라며?”
순간, 머릿속에 선택지가 스쳤다.
사실을 말할 것인가, 평화를 지킬 것인가.
“어머니… 이제 그 유행은…”
이 말을 꺼내는 순간, 괜히 공기가 서늘해질 것 같아
나는 재빨리 평화를 택했다.
“맞아요, 요즘 봄동 비빔밥 유행이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시며 한마디.
“그래서 해봤다. 봄동 요리.”
아, 예감이 맞았다.
그때였다.
옆에 있던 딸아이의 한 방.
“할머니, 이제 봄동 유행 지났어요.”
대문자 T의 직진은
어른의 마음도 예외 없이 관통한다.
나는 미처 그 입을 막지 못했다.
다행히 어머님은 쿨하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셨다.
“이거 우리 밭에서 딴 봄동이랑, 달래랑, 상추랑 같이 무쳤어.
봄엔 이런 게 다 약이야.”
그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누그러졌다.
유행이야 지나가도,
제철은 늘 제때에 오고
어머님의 밭은 늘 정확하게 봄을 데려온다.
어느새 밭에는
먹을 것들이 하나둘 올라오고,
날이 풀리듯
마음도 함께 풀린다.
그리고...
내 식욕도 같이 풀렸다.
분명 나는 월초에
앞자리를 바꾸겠다고
그러니까, 숫자 하나쯤 줄여보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봄동, 달래, 상추 앞에서
그 다짐이 너무 쉽게 흔들린다.
큰일이다.
봄이 오면 꽃만 피는 게 아니라
식욕도 함께 만개한다는 걸
왜 아무도 미리 말해주지 않았을까.
안~~~~돼.
날도 풀리고
마음도 풀리고
무엇보다
내 먹심에 고삐가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