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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Dec 27. 2023

차림새로 편 가르지 마!(맹자설화)

    

백화점과 전통시장 갈 때의 차림새 


나는 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물건을 살 때 동네에 있는 재래시장(전통시장)이나 그 시장 주변에 있는 마트에 간다. 백화점에 가는 경우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로 제한적으로 이용한다.   

   

이때 나에게 거추장스러운 통과 절차가 있다. 옷 차림새에 대해 아내의 코치를 받아 날씨 등을 고려하여 옷을 고르며 신발도 깨끗한 구두나 단화를 신어야 한다. 


그렇다고 선택할 옷이 많은 것이 아니라 적기 때문에 더 신경을 써서 입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편한 옷차림을 하면 백화점을 찾는 다른 시민이나 일하는 분들의 얕보는 눈치를 받는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에 갈 때는 이러한 통과 절차 없어 내 마음대로 편함에 초점을 맞춰 차림새를 하며 아내도 별 간섭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옷차림새가 어느 정도 소홀해짐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백화점에 가는 것은 귀찮고 불편함으로 인식되어 가급적 가지 않으려고 한다. 서울 생활이 수십 년이 되어 아내의 사전 점검에 저항을 덜 하고 있으나 여전히 번잡하다는 인식이다.    

 

백화점이나 시장이나 기능이 비슷한데 왜 인식의 차이가 있게 된 것일까? 혹시 백화점 문화를 수입할 때 주동자 계층이 백화점은 뭔가가 다르다는 비규범화된 차별을 은연중 만들어 이용자의 등급을 전통시장과 달리하려는 의도가 있었을까?


옛날의 신분제 사회에서 사대부와 하인의 차림새 차별로 계급 차이를 가르치려는 설화를 보자.

     




소에게 맹자를 읽히겠다는 머슴


삼복더위 때 어떤 선비 집의 주인 서방님이 높은 대청 위에서 맹자를 읽고 있었다. 그의 차림새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행전(한복 착용 시 무릎에 묶는 끈)을 치고 모시도포(선비의 통상 예복)를 입고 버선 신고 딱딱한 마루에 꿇어앉은 모양새였다. 


머슴 총각이 소를 몰고 들어오다가 주인 서방님이 시원한 대청에서 맹자를 읽는 모습을 보고 신선 같다고 생각했다. 머슴 총각이 혼자 말하기를, 


“대체 어떤 사람은 팔자가 좋아서 저렇게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데 나는 요 모양 이 꼴이 됐나?”     


주인 서방님이 이 말을 듣고 “너 이리 와봐라, 너 혼자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이 불공평해서는 못써.” 오늘 너하고 나의 처지를 바꿔보자고 하였다. “내가 소를 몰고 가서 일할 터 넌 내 옷을 입고 여기서 맹자를 읽어라.”      


머슴은 서방님 차림새처럼 모시 도포 입고 버선 신고 행전치고 상투를 틀고 망건 쓴 후 딱딱한 마루에 앉아 맹자를 읽으려 하였다. 그러니 우선 옷 차림새가 몸에 전혀 맞지 않아 무척 불편했고 또 삼복더위에 버선까지 신은지라 더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맹자의 한 대목도 못 읽고서는 “소인이 잘못을 하였습니다. 전 소를 몰고서 일을 하는 게 낫지 도저히 맹자를 못 읽겠습니다.”     


항복을 하고서 다시 쇄꼴 잠뱅이(가랑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남자용 홑바지)로 갈아입고 소를 몰고 나가 일을 하는데 소가 영 말을 듣지 않았다. 


일루 가라 하면 저쪽으로 가고 저러하면 이 짝으로 가구, 나중에 화가 나니까  “이 놈의 소!  말 안 들으면 대청에 올려 앉혀 놓고 맹자를 가르쳐 주겠다.  요놈의 자식.”  

 

설화의 이해


왜 이런 설화가 생겼을까? 전근대 시대는 계급의 구분과 역할이 뚜렷하여 상위계층이라 할 수 있는 사대부들은 그들을  규율하는 규범에 의거 행위를 하였으며 그래야만 위엄이 생긴다고 여겼다. 그런 위엄을 통해 백성들을 관리하고 통제하였다.    

  

그래서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다는 불만을 가진 백성들을 사대부의 위엄에 도전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런 백성을 상대로 ‘입장 바꾸기’ 체험을 통해 사대부는 지키기 어렵고 힘든 규범이 있지만 이를 인내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백성과 다름을 일깨워 주려는 의도가 있었을까?     


아니면 지배층의 ‘공자왈 맹자왈’의 행위를 못마땅해하는 설화층의 반감을 잠재우려는 고단수 수작일까?

설화 내용을 보면 맹자를 읽음 보다는 읽기 전의 통과해야 할 행동거지를 중시하고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양반 차림과 자세를 하고 책을 읽어보려 하나 우선 자세가 불편하고 힘이 들어서 책을 읽을 수 없음에도 그 상태에서 맹자를 읽어보라 한다.


 그들도 어렸을 때부터 많을 시간이 들여 비로소 행태가 몸에 익혀졌을 것이다. 그런 과정 없이  다 큰 어른 백성이 바로 사대부처럼 행동거지 절차를 하라 하니 책을 읽을 마음이 생기겠는가?     


아니면 사대부의 규범이 지나치게 형식화되어 삼복더위임에도 버선까지 신고 지내는 그들의 융통성 없는 인식을 비웃으려는 설화층의 의도일까?      


맹자는 누구인가     


본명은 맹가이며 중국 산동성에서 태어났다. 공자 사후 100년 흐른 시기이다. 그는 편모가정에서 자랐으며 공자의 손자 자사에게서 수학했다. 천하를 돌아다니며 그의 주장을 펼쳤으나 주류층의 인정을 못 받고 현실에서 은퇴하는데  삶의 궤적이 공자와 상당히 닮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도전에 의해 고려왕조를 뒤엎는 역성혁명의 이론 제공자가 되었다. 또한 임진왜란 시기의 의병이나 근현대서 일어났던 독립항쟁이나 반정부 투쟁의 핏줄도 맹자의 사상과 닿아있는 면이 있다.     


설화 채집된 지역 영동 지명


삼국시대에 길동(吉同)으로 불리다 통일 신라 경덕왕이 757년 전국 지명을 일제히 개명할 때 영동(永同)으로 개명하였다. 영은 길과 뜻과 유사한 한자음의 글자로 바꾼 것이며 경덕왕 때 개명한 지명중 약 24%가 현존하는데 그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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