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키는 160.
평균보다 모자라는 키.
가뜩이나 키도 작고 비율도 좋지 않은데, 풍채까지 좋으면(?) 안된다는 압박을 늘 스스로 가져왔다.
20대까지만 해도 한 끼니 정도 건너뛰면 몸무게는 곧 원상복구 되었다.
하지만 30대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같은 양을 먹고, 같은 루틴으로 생활을 해도 체중계는 늘 기록이 경신되었다.
그럼 더 적게 먹고, 더 많이 움직이라는 건데 애초에 먹기 위해 운동하는 내게 너무나 가혹한 말이다.
그래서일까. 피부과에서 '다이어트 약'이라는 단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딱! 3kg만 빨리, 그리고 손쉽게 빼고 싶었다. 30kg도 아니고 3kg 지 않는가. 평생 먹는 것도 아니고 3kg만 빼고 끊을 자신이 나는 있었다.
약을 먹었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곧 기분이 좋아졌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아드레날린이 쭉쭉 뻗어나갔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새벽 3시.
나는 싱크대 상판을 닦았다, 어둠 속에서.
빡! 빡!! 빡빡!
힘들지 않았다.
배 고프지도 않았다.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어서 뭐라도 해야 했다.
이게 부작용이라면 겪고 싶은 부작용이었다.
네 알째 먹던 날.
그날은 영어연설클럽에서 연설을 했다.
베스트 연설상에 꼽히진 못했지만, 진심으로 상대방을 축하했다. 오래간만에 클럽 회원분들과 2차 모임도 가졌다. 원래라면 신이 나서 부어라 마셔라(?)했을 텐데 어째 흥도 나지 않고 한 마디 할 기력도, 의지도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 것 아닌가. 회원들의 걱정에도, 끝내 나는 두 시간 반 동안 몇 마디 내뱉지도 않고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그렇다고 연설 결과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분이 널을 뛰더니 알 수 없는 화가 났다. 왜 화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전 밑에서 조용히 부글부글 거리는 그 감정은, 화였다.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한 마디라도 어울리고 싶었는데 입이 당최 달싹거리지가 않았다. 어떤 이는 진심 어린 걱정을, 어떤 이는 상을 못 타서 저러나, 어떤 이는 이럴 거면 여기에 왜 앉아있나 등등 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은 더더욱 목구멍 안으로 사라져 갔다..
다섯 알.
나는 다섯 번째 알을 뜯지 않았다.
2kg가 빠졌다.
일상의 평화를 잃었다.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잃었다.
2kg의 대가치고는 너무 밑지는 장사였다.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곳은,
막다른 곳이었다.
우리는 인생에서 늘 지름길을 찾는다.
공부 안 하고, 성적 잘 받는 법.
운동 안 하고, 몸짱 되는 법.
실패 안 하고, 성공하는 법.
하지만 지름길은 대개 더 먼 길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내가 뺐던 2kg도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으니까.
글쓰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글쓰기에 지름길이 있을까?
지름길의 유혹에 빠지고 싶을 땐 으레 먹다 만 다이어트약을 꺼내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겪었던 긴 여정도 떠올려본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텅 빈 화면을 지겹지만 응시해야 했다. 그 시간은 매우 고독하고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그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만 글이, 내 생각이 비로소 나온다.
지금 이 글이 마음에 들진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일주일에 1개씩, 9개의 글을 올렸다.
2026년 동안 52개의 글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2027년이 끝날 무렵엔 무려 100여 개의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투박하고 멋없는 내 문장이 다듬어질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다섯 번째 약을 먹지 않은 마음으로 다시 글을 써내려 본다.
아니, 아직까지는 써제껴본다.
오늘 위험한 지름길을 찾고 있진 않는가.
조금 느리더라도, 자기 발로 직접 걷는 그 길이 결국 가장 빠른 길이다.
기억하자.
인생의 가치 있는 것은 모두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 것들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