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 중세시대까지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고 문명을 건설하면서 인간은 사회현상과 자연현상에 대한 이치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자연이 돌아가는 원리를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그 시대의 자연관과 인식의 틀에 기반을 두었으며 비과학적인 요소가 대부분이 었다. 자연현상을 설명하다 보면 자신들의 인식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났는데, 그럴 때면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곤 했다. 이렇게 한 시대의 세계관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발견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방법을 찾아 내 곤하였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인류는 자연과 사회를 이해하는 지식을 축적하였다.
동양과 서양에서 고대인들의 세계관은 현대와는 아주 달랐다. 고대에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자연에 대한 인식은 음양설과 오행설을 바탕은 둔다. 우리나라 태극기는 빨강과 파랑이 태극을 이루고 어울려 있다. 빨강은 양(positive)을 뜻하고 파랑은 음(negative)을 뜻한다. 자연이 두 개의 극성을 가지고 있다는 세계관을 음양설이라 한다. 음양설은 어두움과 밝음, 추움과 따듯함, 수동적인 것과 능동적인 것 등 서로 대비되는 것을 말한다. 음양설은 기원전 3세기 경에 편집된 <국어 (國語)>에 처음 등장한다. 전기현상에서 양전하(+)와 음전하(-)는 음양 현상에 비유할 수 있다. 한편 오행설은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최초의 기록이 나타나며 사물은 수-화-목-금-토 다섯 개의 성질이 서로 상생과 상극의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순환하며 나타난다. 음양설과 오행설은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에 결합하기 시작하여 음양오행설로 발전한다. 제나라의 추연이 두 개념을 결합하였다고 전해오지만, 기록은 없다. 중국의 한나라 대에 이르러 두 개념이 통합된 기록이 나타난다. 음양오행설은 사물의 속성, 특성을 기반으로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른바 “현상론(phenomenology)”이라 할 수 있다. 음양오행설은 성리학과 결합하여 동양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동양에서 근대 이전의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그림 1] 동양의 음양오행설. 사물은 음과 양의 극성을 가지며 수-화-목-금-토 5개의 특성이 상생과 상극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물의 특성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든 자연현상은 신이 관장하며 신들이 인간사도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기원전 3세기에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현상에 대한 법칙을 찾기 위해서 자연을 관찰하는 학자들이 출현했다. 그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384~322)의 철학은 고대 근동뿐만 아니라 서양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었으며, 물리학, 생물학, 형이상학, 철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은 물체는 4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4원소설을 주장하였다. 우주의 4개의 원소는 뜨겁고 건조한 성질을 가진 불(fire), 차갑고 건조한 성질을 지닌 흙(earth), 뜨겁고 습한 성질을 가진 공기(air), 차갑고 습한 성질을 가진 물(water)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물이 겉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성질을 대변하는 물, 불, 흙, 공기가 사물을 형성하는 원소라고 생각했다. 사물의 특성이 4 원소의 구성비에 따라서 성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또한 사물의 운동과 변화는 사원인(四原因)인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예를 들어 식탁은 질료적 측면에서 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형상적인 측면에서 식탁의 형상을 띠며, 목수의 작용으로 식탁이 만들어졌다. 식탁은 목적에 부합하는 용도인 밥을 먹는 데 사용된다. 이렇듯 모든 사물의 존재 이유와 변화를 사원인으로 설명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주장은 동양의 음양오행설에서 주장한 현상론과 매우 유사한 주장이다.
[그림 2]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과 그 속성. 사물의 특성은 4원소의 구성비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운동을 관찰하고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먼저 떨어진다”라고 주장하였다. 지상은 불완전하면 불완전한 인간이 사는 세상으로 보았으며, 반대로 천상은 신이 사는 완전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지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마지막에는 반드시 정지”한다고 주장하였다. BC332년 시리아를 점령한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를 점령하였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전쟁은 고대 근동과 그리스-로마 지역의 사상적 교류를 유도하였다. 헬레니즘 그리스에 그리스 문명을 절정에 달했으며 지중해 동쪽으로 문화를 전파하였으며, 반대로 점령지의 문화를 흡수하였다. 찬란하던 그리스도 알레산드로스 사망 후에 분열되면서 약화하였으며, 신생 로마에 의해서 BC146년에 멸망하였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또는 프톨레미, Claudius Ptolemy, 100~170)는 로마제국 알렉산드리아에서 천문학을 연구하였다. 그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이며 태양계는 지구를 중심으로 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의 순서로 자리 잡고 있으며, 지구를 중심으로 원운동 한다는 “천동설”을 주장하였다. 기원전 4년에 팔레스타인 나사렛 지방에서 출생한 예수(Jesus, BC4~AD30)는 30세가 되던 해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고행하며 깨달음을 얻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까지 3년 동안 그리스도교를 설교하였다. 한낮 지방 종교였던 그리스도교는 예수 사후 그를 추종하던 제자들에 의해서 로마지방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313년에 로마의 콘티탄티누스 1세는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의 박해를 중시시켰으며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380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제국의 국교로 채택하였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상론과 운동에 관한 생각은 기독교적 교리와 합치된다고 생각했다. 프톨레미의 천동설 역시 기독교 교리와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천상이 완벽한 기하학적 도형인 원 또는 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하늘의 별들은 완벽한 도형인 원운동을 해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상론과 프톨레미의 천동설은 중세시대에 기독교 교리와 결합하면서 엄청난 “신학적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오늘날의 과학적 관점에서 두 이론은 모두 틀린 이론이다. 과학에 무지했던 중세시대에는 사람보다 신이 먼저였다. 비록 두 이론이 틀린 이론이었지만 이 두 이론에 반대하는 주장을 하는 경우 이단으로 판정하여 처단하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천상의 법칙과 지상의 법칙이 중세에 기독교 교리처럼 대접받으면서 권세를 누렸다. 종교적 교리와 결합한 권위는 설사 그 이론이 틀렸더라도 타파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4세기에 일어난 유럽의 문예부흥 운동인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1453년에 동로마제국인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함으로써 기독교적 권위는 해체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참고문헌
이재우, "생활과 과학", 교문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