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두 갈래 길,
그 최종 목적지를 향한 안내서

시편 1편:

by Joseph H Kim

[시편 1:1-6]

¹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²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³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⁴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⁵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⁶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들어가며: 인생의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울 것인가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사소한 고민부터 어떤 길을 가야 할까 하는 중대한 결정까지,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시편 전체의 서문이자 지혜의 문을 여는 시편 1편은, 바로 그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선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인류의 오랜 질문에 대해, 성경은 세상과는 전혀 다른 두 갈래 길을 선명하게 보여주며 우리를 초대합니다.


1.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 복 있는 사람의 거룩한 거리두기 (1절)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은’(אַשְׁרֵי־הָאִישׁ, 아쉬레 하이쉬)이라는 감탄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복’(아쉬레)은 단순히 신이 위에서 내려주는 선언적 축복(בָּרוּךְ, 바루크)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보며 “아, 저 사람 정말 행복하겠다! 참 부럽다!”라고 터져 나오는, 존재의 상태에 대한 감탄사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이토록 행복한 존재로 만들까요? 놀랍게도 시편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가’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행복은 ‘No’라고 말해야 할 때 단호히 ‘No’라고 말하는 용기, 즉 거룩한 거리두기에서 시작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음’: 삶은 하나의 길입니다. 첫 단계는 잘못된 내비게이션을 켜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기적인 가치관, 성공 지상주의,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꾀’(조언)를 무심코 따라 걷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 길의 시작점에 발을 들이지 않습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음’: ‘죄인’(חַטָּאִים, 카타임)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과녁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길을 걷다 보니, 이제는 그 길 위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며 동조하기 시작합니다.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뭐 어때?’라며 잘못된 방식을 자신의 삶의 표준으로 삼아 머무르는 단계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 대열에 합류하여 서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음’: ‘오만한 자’(לֵצִים, 레침)는 한술 더 떠 하나님과 선한 가치들을 냉소적으로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아예 그 길에 주저앉아 자리를 잡고, 그들의 냉소와 불신을 편안한 자기 자리로 삼아버린 단계입니다. 21세기 버전으로 말하자면, 온갖 부정적인 소식이 넘쳐나는 커뮤니티에 죽치고 앉아 세상을 욕하고 다른 사람을 헐뜯으며 자신의 냉소주의를 정당화하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 죽음의 자리에 결코 엉덩이를 붙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행복은, 세상의 유해한 흐름에 나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의식적인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2. ‘예’라고 말할 기쁨: 행복의 진짜 콘텐츠를 채우다 (2절)


‘하지 않음’으로 비워진 마음의 공간에, 복 있는 사람은 행복의 진정한 원천을 채워 넣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율법’(תּוֹרַת יְהוָה, 토라트 예호와)입니다.


‘율법’(토라)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딱딱하고 숨 막히는 규칙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토라’의 본래 의미는 ‘가르침’, ‘지침’에 가깝습니다. 마치 전자제품을 가장 잘 아는 제조사가 제공하는 친절한 사용 설명서처럼,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장 행복하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주신 ‘인생 사용 설명서’이자 사랑의 가르침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 가르침을 의무나 숙제로 여기지 않고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온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그 마음을 헤아리듯, 기쁨과 설렘으로 말씀을 대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묵상하다’(הָגָה, 하가)는 히브리어 단어는 단순히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는 조용한 명상을 넘어섭니다. 원래는 사자가 먹이를 앞에 두고 만족하여 ‘으르렁거리거나’, 비둘기가 ‘구구구구’ 소리를 내듯, 나지막이 소리 내어 읊조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마치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도는 좋아하는 노래의 멜로디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입으로 되새기고 곱씹으며 그 의미가 내 삶에 완전히 스며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3. 뿌리내린 삶의 증거: 시절을 따라 열매 맺는 나무 (3절)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요?

시편 기자는 한 폭의 그림을 보여줍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마르지 않는 생명의 공급원: 여기서 ‘시냇가’(פַּלְגֵי מָיִם, 팔게 마임)는 단수가 아닌 복수형입니다. 메마른 땅에 겨우 흐르는 단 하나의 시냇물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풍성한 물줄기들이 흐르는 곳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 어떤 가뭄이 찾아와도 결코 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력이 다각적이고 풍성하게 공급됨을 보여줍니다.


시절을 따라 맺는 열매와 푸른 생명력: 이 나무는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이 표현은 정말 현실적이고 지혜롭습니다. 열매는 1년 365일 내내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성장의 시기, 때로는 휴식의 시기, 때로는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시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때가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시기에, 인격과 사역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또한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열매가 없는 시기에도 그 내면에는 생명력이 넘쳐흘러 어떤 역경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궁극적인 형통: 그 결과,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여기서 ‘형통’(יַצְלִיחַ, 야츨리아흐)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세속적인 성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심으신 본래의 목적, 즉 그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그의 삶을 통해 온전히 성취되어 가는 ‘목적 달성’으로서의 성공을 의미합니다.


4. 뿌리 뽑힌 삶의 결국: 바람에 흩어지는 겨 (4-6절)


복 있는 사람의 삶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악인의 운명은 ‘겨’(מֹץ, 모츠)에 비유됩니다. 겨는 알곡을 감싸던 껍질로, 무게가 없고 텅 비어있습니다. 뿌리내린 나무와 달리, 겨는 자기 정체성도, 방향성도 없이 심판의 바람이 불 때 허무하게 흩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믿음의 공동체인 ‘의인의 모임’에 결코 속할 수 없습니다.


시편 1편은 두 길의 운명을 선언하며 끝을 맺습니다.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여기서 ‘인정하다’(יָדַע, 야다)는 히브리어는 단순한 인지를 넘어선 깊고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걸음걸음을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시고, 친히 동행하시며,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강력한 약속입니다. 반면,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힘을 의지했던 ‘악인의 길’은 결국 멸망이라는 막다른 길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향한 물음>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우리 인생은 무언가에 뿌리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어떤 사람은 명예와 권력에, 또 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인정에 깊이 뿌리내리고 그것으로부터 삶의 자양분을 얻으려 애씁니다. 그것들이 잠시 잠깐 우리를 풍성하게 해주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은 묻습니다. “당신이 뿌리내린 그것은, 인생의 가뭄이 찾아올 때에도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줄기인가? 아니면 시대의 바람이 바뀔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허무한 겨인가?”


‘복 있는 사람’의 길은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어리석고 답답해 보일 수 있습니다. 더 빠르고 더 높아지려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잠잠히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멈춤과 읊조림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마르지 않는 생명의 시냇가에 연결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형통은 모든 폭풍우를 피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푸른 잎을 잃지 않을 힘을 주시는 것임을. 진정한 행복은 내 뜻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내 삶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로 맺혀가는 것임을 말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을 어디에 심고 계십니까? 바람에 나는 겨의 길이 아닌, 시냇가에 심긴 나무의 길을 함께 선택하기를 소망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의 편지처럼 즐거워하고 깊이 되새김으로, 그분의 생명력을 풍성히 공급받아 시절을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그 어떤 시련에도 마르지 않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편 저자의 노트>

시편의 정문(正門)을 여는 1편을 함께 지나오셨습니다. 이 시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 여행할 149편의 모든 시편을 읽는 가장 기본적인 관점을 제시합니다. 바로 복 있는 사람의 길과 악인의 길, 이 두 갈래 길입니다. 시편은 때로 탄식하고, 때로 환호하며, 때로 분노하고, 때로 경배하지만, 그 모든 노래의 궁극적인 방향은 바로 이 '복 있는 사람의 길'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제 개인의 길을 다룬 1편을 지나, 시편 2편에서는 카메라가 갑자기 줌 아웃하여 온 세상의 왕들과 민족들이 등장하는 거대한 역사와 정치의 무대로 확장됩니다. 한 개인의 경건이 요동치는 세계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요? 이 극적인 장면 전환을 기대하며 다음 장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