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끝나지 않는 터널 속에서 부르는 노래

by Joseph H Kim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혼자 걷는 듯한 기분입니다. 분명 어딘가에 출구가 있을 텐데, 사방은 온통 어둡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제 목소리는 차가운 벽에 부딪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입니다. 중요한 시험 결과를 기다릴 때, 간절히 바라던 취업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 때, 관계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이 도무지 열리지 않을 때, 혹은 영혼을 짓누르는 우울감 속에서 허덕일 때, 우리는 터널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것만 같고, 신의 침묵은 동의인지 거절인지, 아니면 무관심인지조차 알 수 없어 우리를 더욱 절망케 합니다. 바로 이 지독한 막막함의 한복판에서 한 영혼이 터뜨리는 울부짖음, 그것이 바로 시편 13편입니다.


시편 13편 (현대인의 성경)

1 여호와여,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겠습니까? 영원히 잊으시겠습니까? 언제까지 나에게서 주의 얼굴을 숨기시겠습니까?

2 내가 언제까지 번민하며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해야 합니까? 내 원수가 언제까지 나를 비웃어야 합니까?

3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돌아보시고 나에게 응답하소서. 내가 죽지 않도록 내 눈을 밝히소서.

4 그렇지 않으면 내 원수가 '내가 그를 이겼다!' 하고 말할 것이며 내 대적들이 나의 실패를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5 그러나 나는 주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내 마음이 주의 구원을 기뻐할 것입니다.

6 여호와께서 나에게 선을 행하셨으므로 내가 그를 찬양하겠습니다.


시편 13편은 어떤 시입니까?

시편 13편은 한 개인이 겪는 극한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토로하는 ‘개인의 탄식시’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 짧은 시 안에는 한 영혼의 드라마틱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탄식과 질문 (1-2절): 시인은 네 번에 걸쳐 “어느 때까지니이까(עַד־אָנָה, 아드-아나)”라고 절규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잊고, 얼굴을 숨기시고, 스스로 번민하게 내버려 두시며, 원수 아래에 방치하신다고 호소합니다.


간절한 간구 (3-4절): 절망적인 질문을 쏟아낸 시인은 이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이는 단순한 요청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향한 필사적인 몸부림입니다.


신뢰의 고백과 찬양 (5-6절): 놀랍게도 시의 분위기는 급반전됩니다. 아무런 외부 상황의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지했다”고 선언하며 기쁨과 찬송으로 나아갑니다.


이 구조는 고통받는 영혼이 어떻게 절망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신뢰와 찬양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신앙의 역동적인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소중한 지도와 같습니다.


말씀 속으로


1. 영혼의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질문: "어느 때까지니이까?" (1-2절)

시인은 무려 네 번이나 “어느 때까지”라고 묻습니다. 이 반복은 단순한 수사법이 아니라, 그의 고통이 얼마나 총체적인지를 보여줍니다.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있겠습니까?


“주의 얼굴을 숨기시겠나이까”: 고대 근동에서 왕이 신하에게 ‘얼굴을 숨기는 것’은 관계의 단절과 심판을 의미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부재, 즉 가장 친밀해야 할 관계가 끊어진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근심하기를”: 여기서 ‘영혼(נֶפֶשׁ, 네페쉬)’은 단순한 정신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의미합니다. 외부의 고통이 이제는 내면을 잠식하여, 스스로의 생각과 번민에 갇혀 버린 상태, 즉 ‘생각의 감옥’에 갇힌 모습을 보여줍니다.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내면의 고통은 외부의 조롱과 억압으로 이어집니다. 나의 실패가 곧 원수의 승리가 되는 상황은 고통을 배가시킵니다.


이 네 가지 절규는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모든 차원—신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이 모두 무너져 내린 상태를 비명처럼 토해내는 것입니다.


2. 침묵을 깨는 간구: "나의 눈을 밝히소서" (3-4절)

탄식만 하던 시인은 이제 행동을 바꿉니다. 그는 하나님을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며, 끊어진 것만 같았던 관계의 끈을 다시 붙잡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를 간청합니다. 보시고(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특히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는 표현이 탁월합니다. 이는 단순히 무언가를 깨닫게 해달라는 지적인 요청이 아닙니다. 생명의 빛을 잃고 죽음의 그늘(사망의 잠)로 침잠해가는 영혼에게 다시 생명의 광채와 활력을 불어넣어 달라는 처절한 호소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회복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임을 상기시킵니다. ‘제가 패배하면 원수가 기뻐하고, 결국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당하지 않겠습니까?’라며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3. 상황을 뛰어넘는 믿음의 도약: "나는 오직..." (5-6절)

이 시의 가장 큰 미스터리이자 위대한 지점입니다. 어떻게 그 깊은 절망 속에서 갑자기 찬양이 터져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응답이 와서일까요? 상황이 해결되어서일까요? 성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본질과 마주합니다.


시인은 “나는 오직(But I)”이라는 의지적인 선언과 함께 자신의 시선을 옮깁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성품’으로 말입니다.


그가 의지한 것은 ‘주의 인자하심(חֶסֶד,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조건 없는 사랑, 언약에 기초한 신실함, 배신하지 않는 꾸준한 사랑을 의미하는 위대한 단어입니다. 시인은 ‘제 기분은 여전히 최악이고, 제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믿는 하나님은 한결같이 신실하신 분(헤세드)이심을 저는 선택하겠습니다’라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 결단은 감정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은 ‘주의 구원(יְשׁוּעָה, 예슈아)’을 미리 기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미래의 구원을 이미 받은 것처럼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셨음이로라”라고 과거형으로 노래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 선포하는 찬양의 능력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삶에도 시편 13편의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라고 외치고 싶은 순간이 왜 없겠습니까. 사업의 실패, 깨어진 관계, 끝없는 투병 생활, 깊은 영적 침체 속에서 우리는 시인과 똑같은 절규를 터뜨립니다.


시편 13편은 그런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첫째, 정직한 탄식은 불신앙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입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솔직하게 울부짖으라고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해 따지고 질문하는 것은 관계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관계를 끝까지 붙들고 있기에 가능한 몸부림입니다. 당신의 아픔과 분노, 실망을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쏟아놓으십시오.


둘째, 관점의 전환이 상황의 전환보다 먼저 옵니다. 시인의 상황은 1절부터 6절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오직 그의 시선뿐이었습니다. 그는 끝없이 자신을 짓누르는 문제에서 눈을 들어,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헤세드)을 바라보기로 ‘선택’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기로 결단할 때, 우리는 상황을 뛰어넘는 하늘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셋째, 기다림의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믿음이 자라는 시간입니다. ‘어느 때까지’라는 질문과 ‘나는 찬송하리니’라는 고백 사이의 ‘침묵의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신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이 뿌리를 내리고, 감정과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뢰로 자라나는 시간입니다. 마치 캄캄한 땅속에서 씨앗이 싹을 틔우듯, 우리의 영혼은 그 어두운 기다림 속에서 가장 깊이 성장합니다.


혹시 지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을 지나고 있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소리 내어 울부짖으십시오. 하나님께 따져 물으십시오. 그리고 그 절규의 끝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고백해보십시오. “하지만 주님, 저는 주님의 헤세드, 그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그 믿음의 고백이 당신의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찬양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기도

여호와 나의 하나님,

때로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고, 주님의 침묵이 영원할 것만 같습니다.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절규가 제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제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사망의 잠에 빠져들지 않도록 제 영혼의 눈을 밝혀 주십시오.

상황은 변하지 않았을지라도, 변치 않는 주의 인자하심(헤세드)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오늘의 고통 속에서도 내일의 구원을 노래하게 하소서.

마침내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셨다”고 온 맘 다해 찬양할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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