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사라진 시대, 순결한 약속을 붙들다.

시편 12편:

by Joseph H Kim

[시편 12:1-8, 현대인의 성경]

¹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사람이 없어지고 진실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² 사람마다 자기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

³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실 것이다.

⁴ 그들은 ‘우리의 혀로 우리가 이길 것이며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누가 우리를 이기겠는가?’ 하고 말합니다.

⁵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가난한 사람이 억압을 당하고 가난한 사람이 탄식하므로 내가 이제 일어나 그들이 갈망하는 안전한 곳에 그들을 둘 것이다.”

⁶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한 말씀이니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다.

⁷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이 세대에서 영원히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다.

⁸ 비열함이 사람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으니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혹시 이런 피로감을 느껴보신 적 없으신가요? TV를 켜면 온갖 과장 광고와 교묘한 말장난이 넘쳐나고, SNS를 열면 진심인지 계산인지 알 수 없는 관계와 잘 포장된 일상들이 가득합니다. 회의실에서는 실속 없는 아첨이 오가고, 돌아서면 험담이 난무합니다. 어느 순간, '과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라는 깊은 회의감에 빠지게 됩니다. 시편 12편은 바로 이처럼 진실이 사라진 시대를 향한 한 영혼의 처절한 탄식과, 그 속에서 발견한 유일한 희망에 대한 노래입니다.


시인은 "경건한 사람이 없어지고 진실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절규하며, 모든 사람이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한다"고 고발합니다(1-2절).


여기서 '두 마음'은 히브리어로 [בְּלֵב וָלֵב | be-lev wa-lev | 베-레브 와-레브] '마음과 마음으로'인데, 이는 상황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말을 바꾸는 이중적인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치 내 앞에서는 내 편인 척하다가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교묘하게 나를 깎아내리는 동료의 모습, 혹은 달콤한 말로 환심을 산 뒤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돌아서는 사람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혀로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자랑하며(4절), 진실이나 정의가 아닌, 자신의 화려한 언변과 설득력이 곧 힘이라고 믿습니다.


이처럼 거짓된 말들이 세상을 뒤덮어 연약한 자들이 탄식할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 침묵을 깨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시편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


"내가 이제 일어나 그들이 갈망하는 안전한 곳에 그들을 둘 것이다."(5절)


하나님의 행동을 촉발시킨 것은 강한 자들의 화려한 혀가 아니라, 눌리고 있는 가난한 자들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였습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성공한 사람들을 비출 때, 하나님의 시선은 오히려 그늘진 곳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신음 소리에 머물고 계심을 보여주는 강력한 위로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세상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한 말씀이니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다."(6절)


'일곱 번 단련했다'는 것은 불순물이 전혀 없는 100%의 순도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약속들이 종종 자기 이익과 계산이라는 불순물이 섞인 합금과 같다면, 하나님의 말씀[אִמֲרוֹת יְהוָה | imrot YHWH | 임로트 야훼]은 한 치의 거짓이나 변질 없는 순수한 진리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가짜 뉴스'와 깨어진 약속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신뢰하고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순결한 말씀뿐입니다.


그러나 이 시편은 값싼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굳게 신뢰한다고 고백하면서도(7절), 마지막 절에서는 "비열함이 사람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으니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고 있습니다"라는 냉엄한 현실을 다시 한번 직시합니다(8절).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이, 우리 눈앞에서 모든 악이 즉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여전히 악인들이 날뛰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순결한 약속을 붙들고 그분의 보호하심 아래 거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오늘 나의 말은 어떠했습니까? 다른 사람을 칭찬할 때, 그 사람의 유익을 위한 진심이었습니까, 아니면 나의 이익을 위한 '아첨하는 입술'이었습니까?


세상의 화려하고 설득력 있는 말(광고, 뉴스, SNS)과, 일곱 번 단련된 은처럼 순결한 하나님의 약속 사이에서, 나는 무엇에 더 무게를 두고 나의 선택을 결정하고 있습니까?


세상에 여전히 비열함과 거짓이 가득한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침묵을 느끼며 좌절합니까? 아니면, 그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라는 시편 12편의 마지막 약속을 붙들 수 있습니까?


<저자의 노트>

시편 11편에서 흔들리지 않는 하늘 보좌를 향한 굳건한 신뢰를 선포했던 우리는, 시편 12편에서 다시 한번 땅의 현실, 즉 거짓된 말이 가득한 사회의 부패와 마주했습니다. 이는 거시적인 정의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미시적인 일상의 언어생활 속에서 시험받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침묵처럼 느껴지는 사회의 부패를 경험한 후, 시편 13편은 이제 그 고통을 극도로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차원으로 가져갑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이 절규는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는 한 개인의 영혼이 경험하는 가장 깊은 어둠을 노래합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넘어선 개인의 처절한 탄식을 통해, 우리는 신앙의 가장 어두운 밤을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흔들리지 않는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