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편:
[시편 11:1-7, 현대인의 성경]
¹ 내가 여호와께 피하는데 어째서 너희는 나에게 ‘새처럼 너의 산으로 도망가거라!
² 악인들이 활을 당기고 시위에 화살을 먹여 마음이 정직한 사람을 어두운 곳에서 쏘려 한다’ 하느냐?
³ 기초가 무너지면 의로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⁴ 여호와는 자기 성전에 계시고 그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 그가 온 세상을 내려다보시며 모든 사람을 살피신다.
⁵ 여호와는 의로운 사람을 시험하시고 악한 사람과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을 몹시 미워하신다.
⁶ 그가 악인들에게 불과 유황을 비처럼 쏟고 타는 듯한 뜨거운 바람으로 벌하실 것이니 이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⁷ 여호와는 의로우셔서 의로운 일을 사랑하시므로 정직한 사람이 그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삶에 위기가 닥쳐올 때, 진심으로 걱정하는 친구나 가족들은 보통 현실적인 조언을 건넵니다. "상황이 안 좋으니 잠시 피하는 게 좋겠어." "굳이 맞서 싸우지 말고, 너 자신을 먼저 지켜." 충분히 합리적이고 사랑이 담긴 충고입니다.
시편 11편은 바로 이 현실적인 조언과 신학적인 신뢰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친구들은 시인에게 "새처럼 너의 산으로 도망가라!"고 외치지만, 그는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이라고 답하며, 전혀 다른 차원의 피난처를 선언합니다.
이 갈등은 3절의 절망적인 질문에서 극에 달합니다. "기초가 무너지면 의로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기초' [הַשָּׁתוֹת | haššāṯôṯ | 핫솨토트] '토대, 법적/사회적 기반'는 단순히 건물의 토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 사회를 지탱하는 법과 질서, 정의와 진실이라는 도덕적 기둥 전체를 의미합니다.
마치 우리가 믿었던 사회의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거짓과 불의가 승리하는 것을 목도할 때 느끼는 무력감과도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세상이 썩었다면, 나 한 사람 정직하게 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라는 탄식이 바로 이 질문의 현대적 메아리입니다.
시인의 친구들은 세상의 근간이 흔들리는 우주적 혼돈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도피'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땅의 무너지는 기초에서 눈을 들어, 하늘의 흔들리지 않는 보좌를 바라봅니다. 이것이 시편 11편의 극적인 전환점이자 핵심입니다. "여호와는 자기 성전에 계시고 그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4절) 하나님은 부재하시거나 혼돈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보좌 위에 여전히 앉아계신다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 보좌 위에서 그분은 세상을 능동적으로 살피십니다. "그가 온 세상을 내려다보시며 모든 사람을 살피신다." 여기서 '살피신다'는 표현에 사용된 '안목' [עַפְעַפָּיו | ‘ap̄‘appāyw | 아프아파우] '눈꺼풀'이라는 단어는, 어떤 것을 면밀히 관찰할 때 눈꺼풀을 좁혀 시선을 집중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는 CCTV처럼 수동적으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명탐정이 작은 단서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우리의 가장 깊은 동기와 마음의 중심까지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강렬하고 적극적인 감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이 예리한 시선은 필연적으로 세상을 둘로 나눕니다. 그분은 의로운 사람을 '시험' [בָּחַן | bāḥan | 바한] '(금속을) 제련하다, 시험하다' 하십니다(5절).
이는 우리를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불순물을 제거하고 더 순수하게 만드시려는 연단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과 폭력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영혼이 '몹시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이 폭력과 불의를 본능적으로 거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부는 무서운 심판의 폭풍으로 이어집니다(6절). 악인들이 어두운 곳에서 숨어 수평으로 화살을 쏘았다면(2절), 하나님의 심판은 하늘에서 수직으로, 공개적으로 쏟아지는 불의 비와 같습니다. 시인은 "불과 유황"을 언급하며 소돔과 고모라의 완전한 멸망을 상기시킵니다.
어떤 학자는 여기서 '그물'로 번역된 [פַּחִים | paḥîm | 파힘]을 '번갯불'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는 어둠 속에 숨어 공격하던 악인들을, 숨을 곳 없이 모든 것을 드러내는 번갯불로 심판하신다는 시적인 정의의 실현을 보여줍니다.
마침내 시편은 가장 영광스러운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셔서 의로운 일을 사랑하시므로 정직한 사람이 그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7절) '그의 얼굴을 본다' [יֶחֱזוּ פָנֵימוֹ | yeḥĕzû p̄ānêmô | 예헤주 파네모]는 것은, 모든 억울함이 풀리고 재판에서 최종 승소하여 왕의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 그와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갖 거짓과 오해 속에서 고통받던 이에게, 진실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는 것보다 더 큰 위로와 완전한 명예 회복은 없을 것입니다. 기초가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보좌를 신뢰했던 자에게 주어지는 최종적인 상급입니다.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최근 당신의 삶에서, 현실적인 '도피'의 유혹과 신학적인 '신뢰'의 결단 사이에서 고민했던 영역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당신은 어떤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나요?
당신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 혹은 내 삶의 '기초'는 무엇이며, 그것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낄 때 당신의 시선은 어디로 향합니까? 무너지는 땅의 기초입니까, 아니면 흔들리지 않는 하늘의 보좌입니까?
시편 11편의 저자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로우심' 자체를 신뢰하고 찬양하기로 결단할 수 있습니까? 오늘 당신의 가장 큰 걱정거리를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보좌 앞에 올려드리는 기도를 드려보십시오.
<저자의 노트>
시편 10편에서 "하나님, 어찌하여 멀리 계십니까?"라며 그분의 침묵 앞에 절규했던 우리는, 시편 11편에서 그에 대한 강력하고도 분명한 대답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거나 숨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 앉아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며 의로운 통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시편 11편은 혼돈의 현실 앞에서 신앙이 어떻게 담대한 선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뢰의 선언문'과도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선포한 후, 시편 12편은 다시 한번 땅의 현실로 우리의 눈을 돌립니다. 그곳은 여전히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이 보이지 않는 현실 사이의 긴장감 속에서,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 중요한 질문을 가지고 다음 여정을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