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의 렌즈가 칠흑 같은 우주를 부유한다.
이윽고 푸른 보석처럼 빛나는 행성, 지구가 나타난다.
렌즈는 대기권을 뚫고 빠르게 하강하며 시간의 층을 꿰뚫는다.
문명의 여명기, 거대한 두 강이 비옥한 땅을 적시는 메소포타미아.
그 중심에 달의 신 '난나'의 위용을 자랑하는 도시,
갈대아 우르의 심장부로 우리는 들어간다.
이 이야기는 신과 인간, 약속과 의심,
믿음과 두려움에 관한 가장 원초적인 드라마다.
한 평범한 남자가 어떻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믿음의 강'이 되었는지,
그 장대한 여정을 이제부터 당신의 눈과 심장으로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다.
책을 열며
이것은 먼지 쌓인 고대의 기록이 아니다.
한 남자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신념과 의심의 처절한 싸움,
사랑과 질투, 비겁한 실패와 위대한 순종에 관한 장대한 서사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신화 속에 박제된 영웅이 아닌,
우리와 똑같이 흔들리고 고뇌하는 '인간 아브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의 숨결을 바로 곁에서 느끼며, 메소포타미아의 흙먼지를 함께 마시고,
이집트 궁전의 위압감에 숨죽이고,
약속의 땅 밤하늘의 별을 함께 헤아리는 경이로운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한 평범한 남자가 어떻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믿음의 강'이 되었는지,
그 위대한 드라마가 이제 막을 올린다.
갈대아 우르의 공기는 짙고 축축했다.
유프라테스 강이 실어 온 비옥한 진흙 냄새와,
도시의 수호신 '난나'에게 바치는 향불,
그리고 수많은 가축과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가 뒤섞여 있었다.
해가 기울자 그 열기는 한풀 꺾였지만, 도시의 활기는 쉬이 잠들지 않았다.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의 작업실에서 무릎을 꿇은 채
삼나무 조각을 매끄럽게 다듬고 있었다.
그의 손놀림은 수십 년간 반복해 온 장인의 그것처럼 정교하고 익숙했다.
그의 손끝에서 또 하나의 작은 달의 신상이 형체를 갖추어갔다.
도시의 모든 집안에 평안과 다산을 가져다준다는, 바로 그 신이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신이 만드는 신에게서 어떤 평안도,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였지만, 그의 영혼은 메마른 사막 같았다.
작업실 밖, 저녁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골목 너머로
아내 사래가 이웃 여인과 나누는 대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이들의 재롱을 자랑하는 이웃의 목소리와,
애써 밝은 척 대꾸하지만 그늘이 묻어나는 사래의 목소리.
아브람은 잠시 눈을 감았다.
사래의 텅 빈 자궁처럼, 그의 영혼도 마른 우물 같았다.
그는 손에 든 나무 조각을 힘주어 쥐었다.
이 작은 나무 조각이, 저 거대한 지구라트 신전이, 과연 생명을 줄 수 있는가?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질문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밤이 깊어지자 그는 옥상에 올랐다.
도시의 등불이 별처럼 반짝였고,
거대한 지구라트는 침묵 속에 밤하늘을 이고 있었다.
그는 이 도시의 질서와 풍요를 사랑했다.
그러나 동시에 숨이 막혔다. 그는 하늘을 향해 나직이 읊조렸다.
"이것이… 전부입니까? “
바로 그때였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멎는 듯한 정적과 함께,
그의 존재를 관통하는 울림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심장에서, 그의 뼛속에서 직접 울려 퍼지는,
거부할 수 없는 위엄과 이상한 따스함이 담긴 현존(presence)이었다.
"아브람. “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엎드렸다.
온몸이 제어할 수 없이 떨려왔다. 두려웠지만, 이상하게도 평온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
떠나라니. 수십 년간 뿌리내린 이 삶의 터전을?
친구들과 친척들, 익숙한 문화와 언어, 나의 안정된 모든 기반을 버리라고?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아브람은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그 음성에는 그가 평생토록 갈망해 온 생명의 힘이 있었다.
그분은 약속하셨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는 복 자체가 될 것이라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며칠 밤낮을 고뇌했다. 그는 병든 사람처럼 수척해졌다.
마침내 그는 결심하고, 등잔불 아래서 바느질하는 사래의 앞에 앉았다.
"사래,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소. “
사래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의 눈은 퀭했지만, 그 안에는 광기가 아닌,
흔들림 없는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브람은 지난 며칠간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떨리는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사래는 처음에는 남편이 상심 끝에 헛것을 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말.
평생 '저주받은 여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온 그녀에게
그 약속은 너무나 아득하고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눈에서 거짓을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바느질감을 내려놓고, 남편의 떨리는 손을 마주 잡았다.
"당신이 섬기는 하나님이라면, 저의 하나님입니다.
어디든… 함께 가겠습니다."
그 한마디는 아브람에게 천군만마와 같았다.
그것은 그녀 인생 최대의 도박이자, 가장 위대한 순종이었다.
그들이 도시의 성문을 나서는 날 아침,
소식을 들은 친척과 이웃들이 몰려나와 수군댔다.
75세의 노인이 아내와 조카 롯을 이끌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전 재산을 정리해 떠나는 모습은 조롱거리 그 자체였다.
늙은 아버지 데라는 아들의 무모함을 꾸짖으며 눈물을 흘렸지만,
결국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여정에 동참했다.
아브람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아닌,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약속의 땅을 향하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종의 여정이,
그렇게 세상의 끝처럼 보이는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가나안 땅은 낯설었다. 공기부터 달랐고,
사람들의 눈빛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아브람이 처음 발을 디딘 세겜 땅은 울창한 상수리나무 숲이 있었지만,
그곳은 이미 그 땅의 신들을 섬기는 가나안 족속의 성소였다.
비옥한 땅은 이미 그들의 차지였다.
아브람의 일행은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그 이교의 땅 한가운데서 놀라운 행동을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거친 돌들을 모아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자신을 부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었다.
이 땅의 영적 주인이 누구인지를 선포하는 용감한 행위이자,
낯선 땅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잡는 거룩한 의식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두려움과 경외심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믿음만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끔찍한 기근이 찾아왔다.
하늘은 놋쇠처럼 굳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고,
뜨거운 태양은 메마른 땅을 거북 등처럼 갈라놓았다.
가축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천막 사이를 파고들었다.
식솔들의 굶주린 눈빛과 원망 섞인 수군거림이 아브람의 리더십을 시험했다.
밤마다 그는 잠 못 이루고 갈등했다.
'하나님, 이게 당신의 약속입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기도는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느껴졌다.
그의 시선은 자꾸만 남쪽을 향했다.
나일강이 있어 결코 마르지 않는 땅, 거대한 문명과 식량이 넘쳐나는 곳, 이집트.
결국 그는 인간적인 계산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장로들을 모아놓고 선언했다.
"하나님도 우리가 이곳에서 굶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다.
살길을 찾아 남쪽으로 간다."
그의 목소리에는 권위가 실려 있었지만,
사래는 그의 눈에서 믿음이 아닌 두려움을 보고 불안해했다.
약속의 땅을 등지고 생존을 향해 떠나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의 영적 슬럼프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집트는 경이로움과 동시에 위협이었다.
피라미드의 위용과 나일강의 풍요,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 앞에서 아브람과 그의 일행은
초라한 유랑민에 불과했다.
그의 두려움은 곧 현실이 되었다.
아내 사래의 눈부신 미모가 국경을 넘자마자 이집트 관리들의 눈에 띈 것이다.
아브람은 사래의 손을 붙잡고 애원했다.
그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잠겨 있었다.
"사래, 제발… 내 누이라고 해주시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소."
그의 비겁함에 사래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지만,
남편을 위해 침묵으로 동의했다.
그녀의 순종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을 위한 체념이었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결국 사래는 파라오의 궁으로 불려 들어갔다.
아브람은 '미래의 처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파라오에게서 엄청난 재물을 하사 받았다.
양과 소, 노비와 낙타. 그는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지만,
그의 영혼은 갈가리 찢기는 듯했다.
아내를 판 대가로 얻은 부유함이었다.
그는 밤마다 이집트의 화려한 궁전 한구석에서 자신의 비겁함을 곱씹으며 신음했다.
바로 그때,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다.
파라오의 집에 원인 모를 큰 재앙이 내렸다.
왕실의 사람들이 끔찍한 피부병으로 쓰러지고, 가축들이 역병으로 죽어 나갔다.
이집트 최고의 주술사들도 속수무책이었다.
마침내 모든 재앙의 근원이 새로 들인 히브리 여인 때문임을 알게 된 파라오는
분노에 휩싸였다.
그는 당장 아브람을 끌고 오라 명했다.
옥좌에 앉은 파라오의 얼굴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같이 속였느냐!
네가 믿는 신은 위대할지 모르나,
너는 참으로 비겁한 자로구나!
당장 네 아내를 데리고 이 땅에서 떠나라!
네가 받은 재물도 모두 가져가,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말라! “
이방인 왕의 불호령 앞에서 아브람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의 실패는 만천하에 드러났고, 그의 수치심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그는 그 나락의 끝에서 자신을 건져 올리시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은혜를 보았다.
그가 모든 것을 망쳤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친히 개입하셨다.
이집트에서 쫓겨나듯 나온 아브람의 행렬은 전보다 훨씬 거대했지만,
그의 마음은 가난했다.
그는 실패를 통해 배웠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지,
그리고 그런 실패자마저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는 다시 한번 약속의 땅을 향해, 예배의 자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집트에서 얻은 재산은 축복이 아닌 갈등의 씨앗이었다.
아브람과 조카 롯, 두 집안의 가축 떼가 불어나자
한정된 목초지와 우물을 둘러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목자들 사이의 사소한 시비였지만,
곧 두 집안의 자존심 대결로 번졌다.
"이 우물은 우리 양들이 먼저 썼다! “
"무슨 소리냐! 어젯밤부터 우리 소들이 마시던 물이다! “
험한 말이 오가고, 이내 멱살잡이가 벌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나안 원주민들의 차가운 시선이
아브람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는 이집트에서의 실패를 통해 뼈저리게 배운 교훈을 떠올렸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인간적인 계산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
그는 롯을 불렀다.
그의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롯아, 우리는 한 핏줄이다.
어찌 우리가 다투고, 저 이방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겠느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이제 우리가 헤어질 때가 된 것 같다.
네가 먼저 선택하거라. 네가 왼쪽을 택하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을 택하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제안이었다.
롯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내 그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희색이 떠올랐다.
그는 한 치의 사양도 없이, 탐욕으로 번득이는 눈으로 사방을 훑었다.
그의 시선은 동쪽, 물이 넉넉하여 마치 에덴동산처럼 기름져 보이는
요단 들판에 꽂혔다.
"저는 동쪽 땅을 택하겠습니다, 삼촌. “
그의 목소리에는 삼촌에 대한 존경심이나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세속적 성공에 대한 야망만이 이글거렸다.
그는 감사의 인사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이끌고 미련 없이 떠나갔다.
그의 장막은 점점 더 화려하지만 죄악이 가득한 도시, 소돔을 향해 나아갔다.
홀로 남은 아브람은 쓸쓸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인간적인 허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 하나님의 따뜻한 음성이 그의 마음을 감쌌다.
"아브람아,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네가 포기한 그 땅이 아니라, 이 모든 땅이 너의 것이다. “
롯은 스스로 가장 좋은 것을 '택했지만',
하나님은 양보한 아브람에게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람은 묵묵히 헤브론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또다시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았다.
그의 예배는 이전보다 더욱 깊어져 있었다.
평화는 길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의 강력한 네 왕이 동맹을 맺고 가나안을 침공했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한 다섯 왕의 군대를 궤멸시키고,
모든 재물과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 포로 중에는 소돔에 살던 롯도 끼어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자가 아브람에게 비보를 전했다.
아브람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조카.
그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상대는 무적의 연합군. 섣불리 덤비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축복의 통로'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그 부르심에 응답할 때였다.
그는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섰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평화로운 목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결단하는 족장의 눈빛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킨 정예 사병 318명을 이끌고,
불가능해 보이는 추격에 나섰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는 병력을 나누어 칠흑 같은 밤에 적진을 기습했다.
승리에 취해 방심하고 있던 연합군은 혼란에 빠져 무너졌다.
아브람과 그의 용사들은 맹렬하게 적을 추격하여
롯과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찾는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쟁은 인간의 용기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이 승리를 통해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급부상하며,
그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명했다.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
아브람은 왕의 골짜기에서 두 명의 왕을 만났다.
이 만남은 그의 영적 분별력을 시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먼저 나타난 것은 소돔 왕이었다.
그는 패전의 잿더미 속에서 자신의 백성과 재물을 되찾아준 아브람을
영웅으로 맞이했다.
그는 아브람에게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했다.
"사람은 내게 돌려보내고, 모든 전리품은 그대가 가지시오."
그것은 아브람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묶어두려는,
세상이 주는 달콤한 '가짜 축복'이었다.
아브람이 갈등하는 순간,
신비로운 인물인 살렘 왕 멜기세덱이 나타났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는 떡과 포도주로 전쟁에 지친 아브람을 위로하며,
이 승리의 영광을 아브람이 아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돌리며
그를 영적으로 바로 세워주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멜기세덱과의 만남을 통해 영적으로 무장한 아브람은
소돔 왕을 향해 단호히 선언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그의 선언은 세상의 부와 권력에 대한 완벽한 승리였다.
그는 눈에 보이는 전리품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했다.
전쟁은 끝났고, 승리의 흥분도 가라앉았다.
아브람의 장막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정적 속에서,
아브람의 마음에는 더 근원적인 불안이 독초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은 10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바로 그 불안의 한가운데로,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전과 달리 아브람은 이제 잠잠히 듣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친구에게 하듯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제게 주시려나이까?
저는 자식이 없사오니, 저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될 것입니다.
주께서 제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제 집에서 길린 자가 제 후사가 될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과 탄식, 그리고 깊은 체념이 섞여 있었다.
하나님은 그의 불평 섞인 기도를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상하게 그의 의심을 풀어주셨다.
"그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그리고는 그를 장막 밖으로 이끌어내셨다.
그날 밤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마치 검은 벨벳 위에 무수한 다이아몬드를 쏟아부은 듯,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 하늘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이 눈에 보이는 별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당신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깨닫기를 원하셨다.
그 순간, 아브람의 마음을 짓누르던 불안과 의심의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는 변한 것 없는 자신의 늙은 몸과 아내의 현실 대신,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선택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구절은 인류 구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선언이다.
그는 그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진실되다고 받아들였을 뿐인데,
하나님은 그 믿음 하나를 보시고 그를 '옳다'고 인정해 주셨다.
자손에 대한 약속은 이제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브람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바로 '땅'에 대한 문제였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그는 지금 나그네 신세였고, 자신 소유의 땅은 한 뼘도 없었다.
하나님은 그의 연약한 믿음을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의 눈높이로 내려와,
당시 사람들이 가장 엄숙하게 여기던 방식으로 언약을 맺어주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아브람은 짐승들을 가져와
그 몸을 반으로 쪼개어 마주 보게 놓았다.
이것은 목숨을 건 언약 방식이었다.
언약을 맺는 두 당사자가 쪼갠 고기 사이를 함께 지나가며,
약속을 어길 시에는 이 짐승처럼 죽임을 당할 것을 서약하는 의식이었다.
해가 질 무렵, 아브람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덮쳤다.
마침내 해가 져서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
즉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불꽃이,
아브람은 그대로 둔 채, 홀로 그 죽음의 길을 지나가셨다.
이것은 이 언약이 쌍방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홀로 책임지시는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이라는 의미였다.
만약 이 약속이 깨어진다면,
그 저주를 받아 쪼개지는 것은 아브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라는,
자기 목숨을 건 하나님의 보증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확고했다.
그러나 현실의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기다림에 지친 것은 아브람만이 아니었다.
아내 사래의 고통은 더욱 깊었다.
그녀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그녀는 더 이상 하나님만 바라보고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궁리 끝에 사래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녀에게는 하갈이라는 이름의 이집트인 여종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나의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소서.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나이다.“
사래의 제안은 당시 사회적 관습으로는 용인되는 방법이었다.
이것이 바로 '위험한 계산'이었다.
그녀는 인간적인 계산을 하느라 하나님을 빼놓았다.
아브람은 아내의 말을 들었다.
그 역시 초조했을 것이고,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아내의 고통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아내의 경건하지 못한 제안을 수용하고 말았다.
계획대로 하갈은 임신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역풍뿐이었다.
하갈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주인 사래를 멸시하기 시작했다.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 사래는 남편 아브람에게 책임을 돌렸고,
가정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아브람은 두 여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당신 여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라며 책임을 포기해 버렸다.
남편의 허락을 받은 사래는 하갈을 혹독하게 학대했고,
견디다 못한 하갈은 결국 광야로 도망치고 말았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조급한 영성,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하지 않은 위험한 계산은 결국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태어난 이스마엘의 후손과 이삭의 후손은
오늘날까지도 끊임없는 갈등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아브람과 사래의 조급한 선택이 남긴 상처는 이토록 깊고 길었다.
아브람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또다시 넘어지고 실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일어설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삶 속에서 경
이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의 여정을 통해 흠 없는 믿음의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고 실수투성이인 한 인간을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의 실패마저도 선으로 바꾸어
당신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났다.
아브람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님의 이야기다.
지금 당신은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어쩌면 낯선 부르심 앞에 망설이거나,
인생의 기근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다림에 지쳐 위험한 계산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도 바로 그 길을 걸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시선을 당신의 연약함이 아니라,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이다.
그분의 약속은 십자가의 피로 보증된,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다.
자, 이제 다시 당신의 길을 걸으라.
아브람처럼, 믿음으로. 약속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