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집에 머무는 사람의 자격 조건

어떤 사람이 진짜 ‘성도(聖徒)’입니까?

by Joseph H Kim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이나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사교 클럽, 혹은 국가 기밀을 다루는 연구소의 출입증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자격 조건이 있습니다. 뛰어난 성적, 막대한 부, 높은 사회적 지위, 혹은 흠결 없는 신원 같은 것들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이런 ‘자격’과 ‘스펙’을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집, 그분의 임재를 상징하는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 조건은 무엇일까요? 더 뛰어난 종교적 열심? 더 많은 헌금? 더 오랜 기도 시간? 시편 15편은 세상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그러나 훨씬 더 근본적이고 엄중한 자격 조건을 우리 앞에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인격’ 그 자체입니다.


시편 15편 (현대인의 성경)

1 여호와여, 누가 주의 성전에 머물 수 있으며 누가 주의 거룩한 산에 살 수 있겠습니까?

2 정직하게 살며 옳은 일을 하고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3 혀로 남을 헐뜯지 않고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며 친구를 비방하지 않는 사람,

4 악한 자를 경멸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경하며 손해가 되더라도 맹세한 것은 지키는 사람,

5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받지 않으며 뇌물을 받고 죄 없는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15편은 어떤 시입니까?

시편 15편은 성전에 들어가는 예배자가 갖추어야 할 윤리적 자격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입례송(Entrance Liturgy)’ 또는 ‘토라(율법) 시편’으로 분류됩니다. 마치 성전 문 앞에서 제사장과 예배자가 문답을 나누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줍니다.


“제가 이 거룩한 곳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까?” “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 시의 구조는 명확합니다.

예배자의 질문 (1절): “누가 주의 성전에 머물 수 있습니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답변 (2-5a절):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10가지 구체적인 윤리적, 관계적 조건들이 제시됩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과 소극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로 나뉩니다.

축복의 약속 (5b절): 이러한 삶을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복을 선언하며 마무리됩니다.


이 시는 참된 예배와 신앙이 단순히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정직하고 의로운 삶으로 나타나야 함을 강력하게 선언하는 ‘성도의 삶의 지침서’와 같습니다.


말씀 속으로


1. 가장 영광스러운 질문: "누가 주의 성전에 머물 수 있습니까?" (1절)


시인은 “주의 성전(בְּאָהֳלֶךָ, 베오홀레카 - 주의 장막)”과 “주의 거룩한 산(בְּהַר קָדְשֶׁךָ, 베하르 코드셰카)”에 머물 자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장막’과 ‘산’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는 거룩한 공간을 상징합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교회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차원을 넘습니다.


“누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그분의 보호와 통치 아래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한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질문입니다.


2. 삶으로 드리는 예배: 10가지 자격 조건 (2-5a절)


하나님의 대답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제사법이나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열거하십니다.

온전한 내면과 행동 (2절):


정직하게 사는 사람: 원어(תָּמִים, 타밈)는 ‘흠 없는, 완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관성 있고 온전한 인격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 정의(צֶדֶק, 체데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경건을 넘어 사회적 관계 속에서 공의를 세우는 삶입니다.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입술만의 진실이 아니라, 그 중심에 거짓이 없는 상태입니다. 생각과 말이 일치하는 진실된 마음입니다.


관계의 언어 (3절):


혀로 남을 헐뜯지 않는 사람: ‘헐뜯다(רָגַל, 라갈)’는 ‘돌아다니며 중상모략하다’는 뜻입니다. 근거 없는 소문과 비방으로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 나의 유익을 위해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가하지 않는 삶입니다.

친구를 비방하지 않는 사람: 가까운 관계일수록 쉽게 저지를 수 있는 비난과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분명한 가치관과 신실함 (4절):


악한 자를 경멸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경하는 사람: 세상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존중하는 분명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손해가 되더라도 맹세한 것은 지키는 사람: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어도, 자신이 한 약속과 서약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입니다. 신실함의 시금석과도 같은 덕목입니다.


깨끗한 돈 (5절):


가난한 자에게 이자를 받지 않는 사람: 당시 율법은 생계를 위해 돈을 꾸는 가난한 동족에게 이자를 받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는 경제적 약자를 착취하지 않는, 정의로운 부의 사용을 의미합니다.

뇌물을 받고 죄 없는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사람: 돈으로 정의를 왜곡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는 청렴결백함입니다.


3. 흔들리지 않는 삶의 약속 (5b절)


이 모든 조건을 나열한 후, 시편은 놀라운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돈과 권력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속삭이지만, 성경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의로운 삶, 즉 ‘인격’만이 우리를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세운다고 선언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스스로를 ‘성도’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시편 15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예배와 일치하고 있습니까?”


첫째, 신앙은 ‘삶의 현장’에서 증명됩니다. 시편 15편이 제시하는 10가지 조건 중 단 하나도 성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종교 행위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가정, 직장, 이웃과의 관계, 돈 문제 등 삶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주일의 예배자가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생활인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우리의 삶의 태도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둘째, 거룩은 ‘관계’ 속에서 드러납니다. 시편 15편의 조건들은 대부분 ‘혀’, ‘이웃’, ‘친구’, ‘가난한 자’ 등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나 홀로 경건해지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거룩이 아닙니다. 나의 말 한마디가 이웃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나의 경제 활동이 연약한 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바로 거룩의 시작입니다.


셋째, 진정한 안정감은 ‘인격’에서 옵니다. 우리는 왜 불안해합니까?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강한 힘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그러나 시편은 말합니다. 정직과 의, 진실과 신실함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세상이 주는 안정감은 파도 앞의 모래성과 같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안정감은 인격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 같습니다.


오늘 시편 15편이라는 거울 앞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봅시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집에 머물기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의 말과 행동, 나의 관계와 돈 씀씀이는 나의 신앙을 어떻게 증명하고 있습니까? 완벽해서가 아니라, 이런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들을 하나님은 기쁘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십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누가 주의 성전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 앞에 제 자신을 세웁니다.

제 삶이 주님 앞에 얼마나 부족하고 흠이 많은지 고백합니다.

정직하게 살기보다 적당히 타협하고, 옳은 일을 하기보다 저의 유익을 구하며,

진실을 말하기보다 거짓으로 포장할 때가 많았음을 용서하여 주소서.

제 혀를 다스려 주시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게 하시며,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신실함을 주옵소서.

돈의 유혹을 이기고,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소서.

그리하여 세상이 주는 안정감이 아닌, 주님 안에 거하는 흔들리지 않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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