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승리와 오늘의 패배, 그 사이에서 부르는 노래
어제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영혼의 가장 깊은 독백과 싸움을 지나, 이제는 한 개인의 아픔을 넘어 우리 공동체 전체가 함께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탄식의 노래, 시편 44편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이 시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가장 당혹스럽고 어려운 질문 중 하나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한때 모두가 우러러보던 전설적인 축구팀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의 박물관에는 수많은 우승 트로피가 빛나고 있고, 팬들은 과거의 영광스러운 승리들을 노래하며 자부심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그 팀은 이해할 수 없는 연패의 늪에 빠져 리그 최하위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여전히 최고이고, 감독의 전략도 예전과 다르지 않으며, 훈련량도 줄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패배뿐입니다.
과거의 위대한 역사는 현재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 오히려 더 큰 고통과 질문을 낳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우리의 영광은 다 어디로 갔는가?”
시편 44편은 바로 그와 같은 영적 혼란과 고통 속에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국가적 탄식가’입니다. 그들은 과거에 자신들의 조상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의 역사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하나님의 완전한 부재와 외면, 그리고 국가적인 수치와 패배뿐입니다. 이 시의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이 모든 고통이 자신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항변한다는 점입니다.
이 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과거의 하나님과 현재의 하나님 사이에서 길을 잃은 한 백성이 드리는 가장 정직하고도 가슴 아픈 부르짖음입니다.
시편 44편 (현대인의 성경)
1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시대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 주어 우리가 귀로 들었습니다.
2 주께서는 주의 능력으로 여러 민족을 몰아내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정착시키셨으며 다른 민족들은 괴롭게 하시면서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3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정복한 것이 아니며 자기 능력으로 승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주의 자비로운 얼굴빛으로 그들이 승리하였으니 주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4 주는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의 자손에게 승리를 명령하소서.
5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물리치고 주의 이름으로 우리를 치는 자를 짓밟겠습니다.
6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않을 것이며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7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구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8 우리가 온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고 주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였습니다.
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가지 않으십니다.
10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물러가게 하시므로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우리를 약탈하였습니다.
11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우리를 여러 나라에 흩으셨습니다.
12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셨으니 그들을 판 돈으로 이익을 얻은 것도 없습니다.
13 주께서 우리를 우리 이웃의 조롱거리로 만드시고 우리를 둘러싼 자들의 조소와 멸시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14 주께서 우리를 여러 나라의 이야기거리로 만드시고 여러 민족의 머리 저음의 대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15 내가 온종일 수치를 당하여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16 이것은 나를 비웃고 모욕하는 자들 때문이며 내 원수와 복수하려는 자들 때문입니다.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쳤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않았고 주의 계약을 어기지도 않았습니다.
18 우리 마음이 주를 떠나지 않았고 우리 발이 주의 길에서 벗어나지도 않았습니다.
19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를 승냥이의 소굴에 버려 두시고 죽음의 그늘로 우리를 덮으셨습니다.
20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이방 신에게 우리 손을 쳐들고 기도했다면
21 사람의 마음속 비밀을 아시는 하나님이 이것을 찾아내지 않으셨겠습니까?
22 우리가 주를 위해 온종일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있으며 도살할 양처럼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23 주여, 깨소서! 어째서 주무시고 계십니까? 일어나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 어째서 주의 얼굴을 숨기시고 우리의 고통과 압박을 잊으십니까?
25 우리는 먼지 구덩이에 파묻히고 땅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소서.
시편 44편은 한 개인이 아닌, 국가나 민족 공동체 전체가 겪는 재난 앞에서 드리는 ‘공동체 탄식시(Community Lament)’입니다.
이 시는 뚜렷한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푸셨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회상하며 찬양하는 부분(1-8절),
둘째는 현재 겪고 있는 비참한 패배와 수치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부분(9-22절),
그리고 마지막은 잠들어 계신 듯한 하나님을 향해 깨어나 도우실 것을 절박하게 호소하는 부분(23-26절)입니다.
이 시의 가장 큰 신학적 딜레마는, 이 모든 고난이 자신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신실한 자의 고난’이라는 매우 어려운 신학적 주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1.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기억 (1-8절)
시는 “우리가 귀로 들었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의 신앙은 조상들로부터 전수받은 생생한 역사적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기억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과거의 모든 승리는 “자기 칼로… 자기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주의 자비로운 얼굴빛”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자랑은 군사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기억은 현재의 기도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됩니다. “주는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에 그러셨듯) 지금도 우리에게 승리를 명령하소서.”
2. 이해할 수 없는 현재의 현실 (9-22절)
그러나 9절의 “그러나 이제는(אַף־זָנַחְתָּ, 아프-자나흐타)”이라는 한마디와 함께 시의 분위기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과거에 함께 행진하시던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그들은 ‘잡아먹힐 양’처럼 원수에게 넘겨지고, 여러 나라에 흩어졌으며, 심지어 ‘헐값’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겪습니다.
이 고통 속에서, 그들은 하늘을 향해 항변합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쳤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않았고 주의 계약을 어기지도 않았습니다(17절).”
이것은 놀라운 선언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지도, 주의 길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마음속 비밀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어주실 것이라고 외칩니다. 이 고난은 죄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그들로서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당한 고통이었습니다.
3. 잠자는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 (23-26절)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들의 기도는 마침내 폭발합니다. “주여, 깨소서! 어째서 주무시고 계십니까?” 이는 신성모독적인 불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면 결코 이렇게 하실 수 없다는,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가장 강력한 믿음의 항변입니다.
그들은 먼지 구덩이에 파묻힌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가리키며,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주의 한결같은 사랑(חַסְדֶּךָ, 하스데카)”을 근거로 우리를 구해달라고 마지막으로 호소합니다.
시편 44편은 성공과 승리의 간증만이 신앙의 전부는 아님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정직하게 질문하고 부르짖는 것 또한 깊은 신앙의 일부입니다.
첫째, 설명되지 않는 고난 앞에서 정직하게 하나님께 질문하십시오. 우리는 종종 고난이 닥치면 무조건 “내 죄 때문입니다”라고 자책하거나, 반대로 무조건적인 긍정으로 고통의 현실을 외면하려 합니다.
그러나 시편 44편은 우리에게 제3의 길을 보여줍니다. 바로, 우리의 신실함에도 불구하고 닥쳐온 고난 앞에서 “하나님, 왜입니까?”라고 정직하게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불신앙이 아니라,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기 위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둘째, 개인의 신앙을 넘어, 공동체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십시오. 이 시편은 ‘나’의 기도가 아닌 ‘우리’의 기도입니다.
혹시 지금 당신이 속한 교회, 가정, 혹은 사회가 이유 없는 고통과 쇠퇴를 겪고 있습니까? 그것을 남의 일처럼 여기지 마십시오. 시편 44편의 백성들처럼, 공동체의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함께 기억하고, 현재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며, 회복을 위해 함께 부르짖는 것이 바로 언약 백성의 책임입니다.
셋째, 모든 논리가 막힐 때, 주의 ‘한결같은 사랑’에 호소하십시오.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우리의 신실함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자격이나 행위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변치 않는 ‘헤세드’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먼지 구덩이 속에서도, 이 마지막 생명줄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왕, 우리의 하나님이시여,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 베푸셨던 위대한 승리와 구원의 역사를 우리가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도살할 양처럼 취급받는 이 비참한 현실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시고, 우리의 고통과 압박을 잊지 마소서.
우리의 행위나 자격을 내세울 수 없사오나, 오직 우리를 향한 주의 한결같은 사랑(헤세드)을 의지하여 부르짖사오니, 일어나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