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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기가 제대로 달렸으면 몬주익의 영웅이 달라졌을까..

마라톤 풀코스 완주 도전기 55

by 띵선생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우리나라 육상 역사에 길이 남을 날로 기억된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첫 번째로 마라톤 금메달을 얻은 날로, 그 주인공은 다들 아는 황영조 선수다. 일본의 모리시타 선수와 '죽음의 언덕'으로 불리는 몬주익 언덕에서 벌인 레이스는 지금도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종종 회자된다. 그만큼 치열했고, 황영조 선수는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레이스를 마친 그가 한 동안 트랙에 엎어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치열한 접전이었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 경주에서 35km 지점 선두 그룹에는 위 두 사람 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심지어 그는 선두로 치고 나가기도 했었다. 불과 10km도 남지 않은 지점에서 보인 그의 퍼포먼스는 그날의 올림픽 영웅으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이며, 그는 결국 28위로 골인했다. 그가 바로 '비운의 마라토너'로 불리는 김완기 선수이다.

<모리시타, 황영조, 김완기(좌로부터), @e영상역사관>


어릴 적 마라톤이라는 스포츠를 보면,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달리지? 저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이겠지'라고 생각했다. 2시간이 넘는 시간을 계속 달린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김완기 선수는 살짝 관심을 불어넣어 줄 만한 걸출한 기록을 쏟아냈다.


1990년 동아마라톤 1위(2시간 11분 34초/ 한국 최고기록)

1991년 춘천마라톤 1위(2시간 11분 2초/ 한국 최고기록))

1992년 뉴욕마라톤 3위

1993년 동아마라톤 1위

1994년 동아마라톤 1위(2시간 8분 34초/ 한국 최고기록)


나가는 대회마다 그는 우승을 휩쓸었고, 1991년 이후 4년간 한국 신기록을 세 번이나 경신했다. 이는 황영조와 이봉주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당시 2시간 8분~9분 대는 세계 톱클래스 수준이었다. 그는 그런 선수였다.

<김완기 선수의 역주하는 모습 @나무위키>

하지만, 황영조 선수가 손기정 선수 이후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봉주 선수가 '국민 마라토너'로 주가를 올린 반면, 그의 존재감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물론 기록은 영원하지만..)


이 글을 쓰며 그의 흔적을 찾아보니 올림픽 출전 및 은퇴 이후 참 많은 어려운 시간을 보낸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에서도 함께 보았듯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그는 최고의 영웅이 될 순간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이 꺾일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마주하며 페이스가 급격히 망가졌고, 결국 28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4년간 절치부심하며 준비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경기장 트랙을 두 바퀴만 뛰고 중도에 포기했다. 갑자기 발견된 아킬레스건 부상이 원인이었다.


최고의 기록과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이던 그가 이렇게 좌절을 겪게 되니 신체적 심리적인 피로감으로 1997년에 은퇴를 하고 만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사회는 마라톤 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여러 사업을 전전하며 그동안 모은 재산과 노력을 소비한 그는 빚만 떠안고 말았다고 한다.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현역을 떠난 그에게 마라톤 관계자들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마라톤으로 돌아오라는 요청도 많았다. 그래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복귀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고질적인 부상 등으로 실질적인 도전은 성공되지 못했다. 아쉬울 따름이다.




마라톤이 제2의 붐을 이루고 있는 지금, 몇몇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과거 선수시절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에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마라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사회생활에서 그가 살아남기 위해 겪을 흔적이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세상에는 승자도 있고 패자도 존재한다. 빛이 있으면 그에 따른 그늘도 생긴다. 하지만 전자 이기 때문에 잘했고, 후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빛과 그늘이 생긴 과정이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 그 자리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지치지 않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고 42.195km를 달렸 듯이..

<다리가 또 아프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김완기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황영조 #이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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