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언어로는 만족할 수 없어!

2막 1장 — 서곡

by CCCV 츠스쿠

우리는 창언창안 1막에서 쉽고 빠르게 창작물을 위한 언어를 만드는 과정을 알아봤습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왜 창작물을 위해 언어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2장에서는 어떻게 언어를 만들기 위한 소리를 모을 수 있는지를, 3장에서는 그 예시를, 4/5/6장에서는 현실 고유명사의 예시를, 7/8장에서는 고유명사를 위한 단어를 만드는 방법을, 9/10장에서는 단어의 의미와 소리가 변하는 과정을 알아봤죠.


하지만 이 과정으로 만든 언어에는 하나의 큰 문제가 있답니다. 바로 문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문법을 하나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죠. 단어들 사이의 규칙을 정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문장을 만들 수 있겠어요?


물론, 제가 암시한 내용을 추측해 한국어의 문법을 그대로 따와 문장을 만드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간단히 단어를 나열해 문장을 만드셨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한국어의 문법을 그대로 가져왔다면, 겉모습만 바꾼 한국어에 지나지 않겠죠. 물론 이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언어학 용어로는 재어휘화relexification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한 언어의 어휘를 통째로 갈아끼우면서 문법 같은 다른 부분들은 그대로 두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은 각자 제각각의 문법을 가지고 있답니다. 예시를 볼까요?

이번 역은 ○○,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This stop is ○○, ○○. The doors are on your left.
{이} {역} {이다} {○○}, {○○}. {그} {문들} {이다} {위에} {너의} {왼쪽}.
前方到站是, ○○, ○○站。
{앞} {쪽} {에} {역} {이다}, {○○}, {○○} {역}.
まもなく、○○、○○駅です。
{사이} {도} {없} {이}, {○○}, {○○} {역} {입니다}.

모두 동일한 뜻을 가진 문장이지만, 각 언어 아래에 직역한 글을 보면 정확한 구조는 모두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양만 다른 한국어를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닌, 독창적인 언어를 만들고 싶으시다면 어휘를 비롯한 문법과 소리를 처음부터 쌓아올려야겠죠.


그래서 창언창안 2막에서는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직접 적용하는데에도 시간이 걸리는 내용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언어의 소리를 정하는 방법에서부터, 언어의 문법을 만드는 과정까지, 언어를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과정을 다룰 예정이랍니다. 일단 남들에게 선보일 어휘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둔 1막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이죠.


그러면 언어를 만들기로 했으니, 언어의 구성 요소를 알아야겠죠?


언어란 한 상 차림 식사랍니다. 한 상을 차려 내기 위해서는 먼저 요리가 있어야겠죠? 그리고 그 요리를 담을 그릇이 필요할 겁니다. 어떤 요리에 어떤 그릇을 사용할지, 그릇들을 어떻게 배치할지 규칙도 필요하겠죠.


한 상 차림에서 핵심이 요리인 것처럼, 언어의 핵심은 의미랍니다. 언어는 무엇보다도 소통을 위한 것이니까요. 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펄펄 끓는 김치찌개를 양손에 얹어줄 순 없겠죠? 요리를 내올 때에는 그릇이 꼭 필요한 것처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의미를 담아줄 그릇이 필요하답니다. 언어에 따라 그릇은 아무거나 사용할 수 있죠. 대부분의 언어는 소리를 그릇으로 삼지만, 수화처럼 손이나 얼굴의 움직임을 그릇으로 삼을 수도 있고, 언어를 글자로 적으면 기호가 그릇이 된답니다.


그렇다고 아무 요리를 아무 그릇에 담을 수는 없답니다. 국을 접시에 담거나 생선 구이를 국그릇에 담을 순 없겠죠. 또, 반찬보다는 밥을 가까이 두고, 나눠 먹는 음식은 사람들 가운데 둬야하겠죠? 이렇듯 어떤 그릇을 사용할지, 그릇을 어떻게 놓을지에 대해서는 규칙이 있답니다.


언어의 세 요소는 이렇듯 의미, 그릇, 규칙이랍니다. 그리고 언어학에는 이 세 요소를 각각 탐구하는 여섯 분야가 있죠.


음성학은 언어학에서 가장 자연과학에 가까운 학문이랍니다. 음성학은 음성, 즉 사람이 만드는 소리에 대해 연구하죠. 사람의 혀, 입, 성대, 코 등등이 어떻게 소리를 만드는지, 그걸 뇌가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해 탐구한답니다.


음운론은 음성과 같은 물리적인 현상을 뇌가 어떻게 그릇으로 바꾸는지에 대한 학문입니다. 단순히 음성뿐만 아니라, 수화 같은 그릇도 다 다루죠. 인간의 뇌가 그릇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서 다룬답니다. 이 두 분야를 합쳐 음성음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형태론은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릇이 모여서 어떻게 의미를 담는지에 대해 배우죠. 즉, 그릇이 의미를 담는 규칙을 배우는 학문이랍니다.


통사론은 문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다루는 학문이죠. 단어가 어떻게 나열되어 문장이 되는지, 문장에서 단어 사이의 규칙은 무엇인지를 연구합니다. 흔히 문법이라고 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인 거죠. 이 두 분야를 합쳐 형태통사론으로 부르기도 한답니다.


의미론은 단어의 뜻을 탐구합니다. 단어에 어떤 의미가 담기는지, 담긴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을 탐구하죠. 그리고 더 나아가 문장의 뜻도 연구한답니다. 단어의 조합이 달라지면 문장의 뜻도 어떻게 달라지는가 같은 질문 같은 거죠.


화용론은 문맥과 의미를 함께 보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 여기, 사과, 배고파는 모두 각각의 의미가 있지만, "나 배고파" "여기 사과"라는 대화에서 단순히 문장에 {나는 배고프다}, {여기 사과가 있다}라는 의미만 담긴 것은 당연히 아니겠죠. {나는 배고프니 해결책을 달라}, {여기 사과가 있으니 먹으라}라는 숨겨진 의미가 들어있답니다. 화용론은 철학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학으로, 언어학에서 가장 인문학적인 학문이랍니다. 이 두 분야를 합쳐 의미화용론으로 부르기도 한답니다.


이 중에서 창언창안 2막에서는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을 주로 다룰 예정이랍니다.


그러면 이번 장은 여기서 이만 마치고 다음 장에서 음운론부터 다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