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른 이유가 뭘까요?

2막 2장 ― 음소의 개념

by CCCV 츠스쿠

저번 장에서 창언창안 2막을 열며 언어학을 좀 더 다뤄볼 거라고 말씀드렸었죠? 그래서 이번 장은 음운론을 다룰 거랍니다! 그럼 음운론은 정확히 어떤 학문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말소리인 음운을 대상으로 음운 체계를 밝히고, 그 역사적 변천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되어있고, 위키백과에는 「언어가 음가를, 수어의 경우 신호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정리하는지에 관한 학문」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용어가 한꺼번에 많이 튀어나왔으니, 차근차근 알아봅시다.


말소리, 혹은 음성은 인간의 발음 기관, 즉 입술에서 성대까지의 다양한 신체 부분들이 만드는 소리입니다. 말 그대로 말할 때 나는 소리죠.


음가는 서로 구분되는 말소리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ㄱ]와 [ㅋ]입니다.


음소(또는 음운)는 한 언어에서 뜻을 구분하는 음가의 묶음입니다. 예시를 들어보죠. [가타카나]라는 단어를 봅시다. 한국인에게 이 단어의 [ㄱ]과 [ㅋ]은 다른 소리입니다. 그러나 일본어로 가타카나는 [カタカナ]로, 일본인은 두 소리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똑같은 문자가 두 번 반복되는 게 보이죠? 음가는 무수히 많지만, 언어는 그런 음가들을 묶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똑같은 소리야"라고 정의한답니다.


비유를 들어볼까요? 인간이 볼 수 있는 색깔은 무수히 많죠? 하지만 우리는 색깔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지정해서 말하지 않죠. 보통 빨갛다, 노랗다, 파랗다, 하얗다, 까맣다 중 하나를 말하죠. 무지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지개의 많은 색깔을 일곱 가지로만 나눠서 부르잖아요. 빨주노초파남보로요. 이렇듯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연속적인 범위여도, 인간은 연속적인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비슷한 것끼리 묶어 똑같다고, 똑같진 않아도 충분히 비슷하다고 정의한답니다.


이젠 알겠네요! 음소가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말소리인 이유를요! 현실의 말소리는 다양하지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하나의 말소리라고 여기니,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말소리인 것이지요. 마치 현실의 색은 다양하지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를 하나의 '빨간색'이라고 여기는 것처럼요.


간단한 실험으로 이걸 확인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를 계속해 끊김 없이 소리 내봅시다. [이이이이이] 이제 [아]를 소리 내 봅시다. [아아아아아] 마지막으로, [이]에서 [아]까지 입을 서서히 움직이며 이어서 소리를 내봅시다. [이이에에애애아아] 정도가 되려나요? 모든 소리가 다른 건 느끼실 수 있겠지만, 진짜로 다르다고 인식하는 소리는 몇 개이신가요?


만약 표준어를 정확히 발음하시거나, 연세가 있으시다면 4개라고, 그렇지 않다면 3개라고 여기실 겁니다. 이렇듯 말소리는 연속적이고, 음가는 많지만, 한 언어에서 실제로 나누는 기준에 따라 음소의 개수가 정해지죠.

음소의 다른 예시를 봅시다. 한국어에는 세 개의 음소, /p, pʰ, p͈/이 있습니다. 영어에는 두 개의 음소 /b, p/이 있습니다(기호에 대한 설명은 일단은 넘어갑시다). 한국어의 세 음소는 정확히 [ㅂ], [ㅍ], [ㅃ]에 대응할 수 있죠. 그럼, 영어의 두 음소는 한국어의 세 음소에 어떻게 대응될까요?


〈비빔밥〉이라는 단어가 좋은 예시랍니다. 〈비빔밥〉은 [비빔빱]이라고 소리가 나지만, 실제로 [ㅂ]이라고 생각한 소리들은 사실 모두 다른 음가를 지니고 있답니다.


첫 번째 <ㅂ>은 사실 [p]이고, 두 번째 <ㅂ>은 사실 [b]이며, 마지막 <ㅂ>은 사실 [p̚]입니다. 그러나 한국어의 음소는 오직 /p, pʰ, p͈/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어에서 이 세 음가는 (한국어 화자 기준으로) 가장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p/ 음소에 속하죠.


반대로, 영어에는 /b, p/의 음소밖에 없기 때문에, [비빔빱]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첫 번째 [ㅂ]도, 마지막 [ㅂ]도, 거기에 [ㅃ]도(얘는 [p͈]입니다), 다 /p/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두 번째 [ㅂ]은 [b]이기 때문에, 영어 화자는 이 소리는 /b/이라는 다른 음소에 속한다고 생각한답니다.


음소와 음성의 차이가 이제는 확실해지셨나요? 세상엔 다양한 음가가 있고, 그걸 임의로 나눈 것이 음소인 것이죠. 그럼 이제 아마 왜 굳이 음소와 음성을 나누는지 궁금해하시겠죠. 가장 큰 이유는 음소의 또 다른 정의, 바로 「말의 뜻을 구별하여 주는 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표준국어대사전) 때문입니다.


이 정의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물과 불이 있겠네요. [물]과 [불]에서 유일하게 다른 부분은 [ㅁ]과 [ㅂ]이죠? 또 {물}과 {불}의 뜻이 완전히 다르죠. 따라서 [ㅁ]과 [ㅂ]은 뜻을 구별해주는 가장 작은 단위가 되겠네요.

그럼 이번에는 제가 {불}의 [ㅂ]을 발음하면서 성대를 떨어보겠습니다. 마치 영어의 [b]처럼요. 그러나 한국어 화자한테 이 차이는 들리지 않습니다. 성대를 떨면서 발음해도, 한국어 화자는 {불}이라는 단어로 이해하죠. 아하! 한국어에서 [p]과 [b]은 구별되는 소리가 아니군요!


반대로, 제가 {불}의 [ㅂ]을 발음하면서 숨을 거칠게 내쉬겠습니다. 이러면 한국어 화자는 제가 말한 단어를 {불}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풀}로 이해하죠. 아하! 한국어에서 [p]과 [pʰ]은 서로 구별되는 소리군요!


아, 그리고 하나 정리할 것이 있습니다. 대괄호[]는 음가를 뜻하는 기호입니다. 이 안에 있는 것은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죠. 그래서 여태까지 대괄호를 "이 안에 들어있는 글자의 소리를 보라는 의미입니다"라는 약속 아래 이렇게 쓴 것입니다.


슬래시, 또는 빗금//은 음소를 뜻하는 기호입니다. 이 안에 있는 기호, 예를 들면 /p/이 이 언어에서 음소로 쓰인다는 뜻이죠. 빗금 안의 기호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겠지만, 일단은 이것만 알아두셨으면 해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럼 복습을 해볼까요? 이번 장에서는 음소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알아봤습니다. 세 줄로 요약하자면, 음소란:

말소리 중에서

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같다고 생각하는

소리의 범위

랍니다. /p/ (ㅂ)을 [b], [p], [bˠ] 중 무엇으로 발음해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다 /p/으로 들린다는 것이죠. 한국어에서는 [b]에서 [p], [bˠ]까지의 소리의 범위가 모두 /p/이라는 음소에 속한다는 뜻이고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인공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냐고요? 물론, 제가 1막에서 말씀드리고 1막 자체가 성립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창언창안에서는 인공어를 한글로만 표기할 것을 전제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1막에서는 소리는 대충 필수적인 것만 빠르게 다루고 넘어갔고요.


하지만 소리에 대해서 딱 두 주제는 제대로 다뤘답니다. 하나는 언어의 소리를 고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언의 소리를 변화시키는 방법이었죠. 이 두 과정을 1막에서는 한국어의 소리로 된 언어를 만든다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가정을 두고 진행했었답니다.


하지만 이제 좀 더 잘 짜여진 된 언어를 만들 것이니, 언어의 소리와 관련된 두 과정을 좀 더 정확히 분석해야겠죠? 그래서 어떻게 언어의 소리를 정하는데 음소가 도움이 되는지 다음 세 장에서 알아보고, 그 뒤에 언어의 소리가 변하는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장에서 만나요!

이전 01화이런 언어로는 만족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