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3장 ― 국제 음성 기호
저번 장에서는 음소의 개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음소란
말소리 중에서
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같다고 생각하는
소리의 범위
였죠. 한국어에서는 [ㅂ], [ㅍ], [ㅃ]이 각각 /p/, /pʰ/, /p͈/이라는 음소였고, 영어에서는 [b], [p]이 각각 /b/, /p/이라는 음소였죠. 그래서 한국어의 [ㅂ], [ㅍ], [ㅃ]를 들은 영어 화자는 이 세 소리를 모두 /p/로 이해한다는 것이 저번 장의 핵심이었답니다. 사람의 말소리는 무한히 많지만, 인간의 뇌는 그 중 한 범위를 정해 하나의 음소로 이해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이 지식을 인공어를 만드는 데에 적용해 봅시다! 근데 잠시만요, /b/나 /p/는 그렇다 치고, /pʰ/? /p͈/? 이런 기호들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죠? 그리고, 사람의 말소리가 무한히 많다면, 또 한국어나 영어에서 쓰이지 않는 소리를 내 인공어에 넣고 싶은데, 이 소리들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요?
자, 자, 하나씩 차근차근 다뤄봅시다. 가장 먼저, 음소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인공어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창언창안 1막에서는 음소에 대한 지식 없이도 인공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활용했었던 게 기억나시나요?
1막 2장에서는 이미 있는 언어에서 소리를 가지고 오는 방법을 소개했었고, 바로 다음 장에서 제가 직접 이 방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드렸었답니다. 그리고 1막 10장에서 한 언어의 소리를 바꾸는 방법까지 다뤘었죠.
하지만, 이미 있는 언어에서 소리를 가져온다고 이런 저런 자료를 들춰보고, 귀로 들어보며 이런 저런 소리가 있는 것 같다고 일일이 적어두는 것은 꽤 귀찮은 과정이죠. 그러나 음소를 활용하면 이런 과정 없이 곧장 한 언어의 소리를 가져올 수 있답니다!
한국어로 "○○어 음소"라고 검색하시거나, 영어로 "○○ phonology"라고 검색한다면 쉽게 한 언어의 음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렇게 찾은 음소는 보통 위에서 다룬 이상한 기호로 적혀 있을 거랍니다.
이 기호들은 국제 음성 기호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 줄여서 IPA라고 부른답니다. 국제 음성 기호는 사람의 말소리를 기호로 적기 위해 국제 음성 협회에서 고안해 낸 기호죠. 그러면 이 기호를 모두 배워야 할까요?
그럴 이유는 하나도 없답니다! 이걸 외웠나 안 외웠나를 시험 치는 것도 아닌데요. 대신, 옆에 이 표를 펼치시기만 하면 된답니다. 이 표는 국제 음성 기호의 거의 모든 것을 깔끔하게 A4 한 장에 담은 표니까요. 그리고 각 기호의 소리가 궁금하다면 이곳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고요!
하지만 이렇게 표만 던져드리고 알아서 하라고 말씀드리면 당연히 안 되겠죠? 이제부터 이 표를 읽는 방법에 대해 알아봅시다. 가장 먼저, 이 표를 보시면 아래의 일곱 구역으로 나눠져 있는 게 보이시나요?
자음(폐에 의한 발동)
자음(폐 이외의 발동)
여타 기호
모음
초분절음
성조 및 단어 악센트
구별 기호
그럼 각 구역을 차례대로 알아봅시다. 가장 먼저 모음부터 알아보죠!
모음 표를 보시면 사다리꼴의 삐뚤어진 격자 위에 이상한 기호들이 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사다리꼴은 모음을 발음할 때 혀의 대략적인 위치를 나타낸 것이죠. [이] 소리와 [아] 소리를 비교해 보시면, 혀가 위에서 아래로 이동한 게 느껴지실 겁니다. [이] 소리와 [우] 소리를 비교하면 혀가 앞에서 뒤로 이동한 게 느껴지실 거고요.
혀가 위에서 있으면 고모음, 혀가 아래에 있으면 저모음이라고 하고, 혀가 앞에 있으면 전설모음, 뒤에 있으면 후설모음이라고 한답니다. 고/저 대신에 입이 닫히고 열린 정도를 기준으로 폐/개로 부르기도 하지만요.
요점은, 사다리꼴의 격자는 좌표라는 뜻입니다. 전설 고모음에는 [i]과 [y]가 있고, 후설 저모음에는 [ɑ]과 [ɒ]이 있다는 것이죠. 각 좌표를 보시면 대부분 한 쌍의 기호로 되어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한 쌍의 기호 중 오른쪽에 있는 것은 입술을 둥글게 한 모음이고, 왼쪽에 있는 것은 입술을 평평하게 한 모음을 뜻하죠. 후설 고모음 [ɯ]과 [u]을 봐봅시다. 전자는 한국어의 [ㅡ] 소리, 후자는 [ㅜ] 소리인데, 두 소리를 비교하면 다른 건 다 똑같은데 입술의 모양만 다른 게 느껴지시나요? 입술이 둥근 모음을 원순모음, 입술이 평평한 모음을 평순모음이라고 한답니다.
모음에 이름을 붙일 때는 혀의 앞/뒤, 입술의 둥긂/평평함, 혀의 높음/낮음 순서로 이름을 붙인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ㅣ] 소리는 전설 평순 고모음이고, 이 소리에 해당하는 IPA 기호는 〈i〉죠. 만약 처음 보는 기호가 등장한다면, 이 표를 펼치고 어느 위치에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답니다.
그나저나, 사다리꼴이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보이시나요? 이건 혀가 내려갈수록/입을 벌릴수록 혀를 앞뒤로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것을 상징한답니다. 사실 저모음의 경우엔 전설/후설의 구분을 못한다고 보는 언어학자도 많죠. 마찬가지로, 이 표의 소리 중에서 구분이 잘 안 가는 소리가 있으시다면, 구태여 구분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답니다. 괜히 힘만 빼는 일이니까요. 창작에 더 집중해야죠!
다음은 자음이랍니다!
자음 표를 보면 두 개의 표로 나눠져 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위의 큰 (폐에 의한 발동) 표와 아래의 작은 (폐 이외의 발동) 표죠. 위의 큰 표부터 봅시다.
가로줄에는 양순음, 순치음, 치음... 해서 성문음이라는 분류가 있고, 세로줄에는 폐쇄음, 비음... 설측 접근음이라는 분류가 있죠. 가로줄은 자음을 소리 내는 위치, 세로줄은 소리 내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랍니다. 예시로 함께 봅시다.
[ㅂ]을 소리 내 보면, 두 입술이 서로 닿았다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시나요? 두 입술에서 소리를 냈기 때문에 양순음이고, 두 입술로 공기의 흐름을 막았다가 터트리니 파열음(폐쇄음)이라고 한답니다.
[ㅅ]을 소리 내 보면, 혀가 잇몸에 가까이 가서, 그 사이로 공기를 흘려보내는 것이 느껴지시나요? 잇몸에서 소리를 냈기 때문에 치경음이고, 공기를 마찰시키며 흘려보냈다고 해서 마찰음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면 가로줄의 소리 내는 위치(조음 위치), 세로줄의 소리 내는 방법(조음 방법)에 대해 알아봤으니, 각각에 대한 한 줄 설명을 봅시다!
조음 위치:
양순음: 입술과 입술이 만나 나는 소리
순치음: 입술과 이가 만나 나는 소리
치음: 이와 혀끝이 만나 나는 소리
치경음: 잇몸과 혀끝이 만나 나는 소리
후치경음: 잇몸보다 약간 뒤와 혀끝이 만나 나는 소리
권설음: 후치경음과 같지만 혀가 조금 말려/들어 올려져 만나 나는 소리
경구개음: 센입천장, 즉 입천장의 중간의 딱딱한 부분과 혓바닥이 만나 나는 소리
연구개음: 여린입천장, 즉 입천장 뒤의 연한 부분과 혓바닥이 만나 나는 소리
구개수음: 목젖과 혀뿌리가 만나 나는 소리
인두음: 목구멍과 혀뿌리가 만나 나는 소리
성문음: 성대와 성대가 만나 나는 소리
조음 방법:
파열음(폐쇄음): 숨결을 순간적으로 막았다 터트리는 소리
비음: 코로 숨결이 빠져나가는 소리
전동음: 두 조음 기관을 빠르게 떠는 소리
탄음(탄설음): 한 조음 기관을 튕기는 소리
마찰음: 숨결이 조음 기관 사이로 살살 빠져나가는 소리
설측 마찰음: 혀는 위에 붙이고 혀 양옆으로 숨결이 나가게 한 마찰음
접근음: 숨결이 지나가는 길을 살짝만 조인 소리
설측 접근음: 혀는 위에 붙이고 혀 양옆으로 숨결이 나가게 한 접근음
그럼 마지막으로 왜 표의 한 칸에 한 쌍의 기호가 있는지를 다뤄봅시다! 표 아래에 친절한 설명도 있네요! 오른쪽은 유성음, 왼쪽은 무성음이라고요? 무슨 용어일까요?
유성음은 소리를 낼 때 성대를 울리는 소리, 무성음은 울리지 않는 소리를 말한답니다. 영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이 [b]와 [p]를 구분하는 방식이죠. 한국어에서는 이 방식으로 자음을 구분하지 않아서 생소할 수도 있답니다. 둘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싶다면 [고고하다]를 발음해 보면 된답니다. 첫 번째 [ㄱ]과 두 번째 [ㄱ]이 서로 다른 소리라는 게 느껴지시나요? 앞의 [ㄱ]은 [k] 소리고, 뒤의 [ㄱ]은 [g] 소리랍니다. 둘 다 연구개음이고 파열음이지만, 유/무성의 차이만 있는 소리죠.
자음에 이름을 붙일 때에는 유/무성, 조음 위치, 조음 방법의 순서대로 이름을 붙이면 된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ㅎ]은 무성 성문 마찰음이고, 이 소리에 해당하는 IPA 기호는 〈h〉죠. 만약 처음 보는 기호가 등장한다면, 이 표를 펼치고 어느 위치에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답니다.
그럼 폐에 의한 발동/폐 이외의 발동은 무슨 뜻일까요? 자음을 소리 낼 때는 숨결(기식)이 필요한데, 보통은 폐에서 나오는 숨을 사용해 자음을 소리내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답니다.
흡착음은 조음 위치의 조음 기관을 딱 붙이고, 턱을 아래로 내려 입 안의 압력을 낮춰 공기가 뻑 하고 들어오는 소리를 말한답니다. "똑딱"이나 "쯧!"할 때 내는 소리기도 하죠. 내파음과 방출음은 서로 반대되는 방식이랍니다. 마찬가지로 조음 기관을 딱 붙이고, 울대(목의 튀어나온 부분 뒤에 있는 기관)를 아래위로 움직여 기도 안의 기압을 낮추거나 높여 기식을 만드는 소리죠. 세 소리는 각각 전 세계 언어의 2, 13, 16% 정도에서만 등장하기 때문에 힘들다면 억지로 소리 내보려 노력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자신의 언어에는 자신이 발음할 수 있는 소리를 넣는 게 좋으니까요.
여타 기호 중에서 볼 만한 것은 이중 조음과 파찰음인데요, 이중 조음은 두 소리가 동시에 나는 것을 말한답니다. 세계에서 가장 흔한 이중 조음인 〈w〉, 양순 연구개 유성 접근음(한국어의 [ㅘ], [ㅝ], [ㅙ]에서 공통으로 나는 소리)을 보면 입술과 연구개가 둘 다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죠! [사시]를 발음하면 뒤의 [ㅅ]의 소리가 약간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건 〈ɕ〉, 무성 치경구개 마찰음이죠.
파찰음은 파열음으로 시작해서 마찰음으로 끝나는 소리를 말하는데, 한국어의 [ㅈ]을 발음해보면 시작은 파열음처럼 공기를 막았는데, 곧 마찰음처럼 숨결을 마찰시키며 내보내는 것을 알 수 있죠. 이건 [ㅈ]이 〈t͡ɕ〉, 무성 치경구개 파찰음이라 그렇답니다.
초분절음과 성조 및 단어 악센트는 모음에 더하는 기호랍니다. 부운율과 주운율을 제외하면 이름만으로도 무슨 의미인지 쉽게 아실 수 있겠죠? 이 둘은 거의 볼 일이 없으실 테니 넘어갈게요. 아, 주강세는 첫 번째 강세, 부강세는 두 번째 강세라는 의미랍니다. 단계 하강과 단계 상승은 뒤따르는 모음의 음높이가 내려가거나 올라갔다는 뜻이고요.
구별 기호(다이어크리틱)는 앞에서 본 모음/자음 기호에 추가해 더 정확한 소리를 적기 위한 방식이랍니다. 한국어의 [ㅂ], [ㅍ], [ㅃ]가 [p], [pʰ], [p͈]인데, 기식이 추가됐다는 뜻의 ◌ʰ 구별기호와 목을 더 조여서 발음한다는 ◌͈ 구별기호가 더해진 것을 볼 수 있죠! 마찬가지로, 각 구별 기호를 처음부터 한 번에 외우려고 할 필요는 없고, 그때 그때 하나씩 외워가면 된답니다.
그러면 이제 당장 검색을 통해 원하는 언어의 음소를 그대로 가져올 수도 있고, 음소에 대한 여러 사이트의 설명을 보며 독특한 소리를 언어에 넣어보고 싶으실 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렇게나 소리를 섞어 넣으면 물론 독특하긴 하겠지만 별로 현실적인 언어가 되진 않는답니다.
그러니 현실적인 언어를 만들기 위해 현실의 언어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을 다음 장에서 하기 전에! 국제 음성 기호와 더 친해지기 위해 한국어의 음소를 국제 음성 기호를 사용해 조각조각 뜯어봅시다! 그럼 다음 장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