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지명을 만나봅시다!

1막 4장 ― 고유명사, 특히 지명의 예시

by CCCV 츠스쿠


프롤로그에서 말씀드렸듯이, 창언창안은 현실의 언어 정도로 체계가 잘 짜인 언어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창언창안의 주된 목표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는 것이죠.


따라서 창언창안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공들여 만든답니다. 그리고 창작물에서 인공어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고유명사 부분이죠. 지역의 이름, 도시의 이름, 사람의 이름, 단체의 이름... 이런 곳을 빼면 인공어가 드러나는 부분은 아주 단순한 대화 정도밖에 없답니다.


그러니, 창언창안에서는 고유명사를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는지, 이 부분을 가장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그렇다 보니 한 장 안에 모든 예시를 집어넣을 수가 없었죠. 대신, 이번 장에서는 지명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첫 번째 구조 예시: 아이젠슈타트Eisenstadt

이 예시는 꽤나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여러 곳에서 많이 보이는 형태랍니다. 아이젠슈타트의 앞부분 아이젠Eisen은 철이라는 뜻이고, 뒷부분 슈타트Stadt는 도시라는 뜻이지요. 이름의 유래는 당연하게도 아이젠슈타트의 철광 산업이죠.


이 구조의 다른 예시도 볼까요?

뉴캐슬Newcastle {새로운 성}
노리치Norwich {북쪽 마을}
오스트리아Österreich {동쪽 나라}
대전大田 {큰 밭}
도쿄東京 {동쪽 수도}
중국中國 {가운데 나라}

이렇게 단순하게 성/도시/마을에 그곳의 특징을 붙여 이름을 짓는 방식은 지명을 지어보라고 할 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방식이고, 그만큼 단순하고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단점은 특징을 추상적이거나 비유적으로 정할수록 부각되는데, 검은 성채나 눈물의 도시 등이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름들이 주는 동화적인 느낌을 오히려 이용할 수도 있겠지요.


재밌는 점은 한 언어의 이름을 다른 언어로 바꿨을 때 얼마나 어색한 지를 가지고 한 구조가 얼마나 범용적인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예시로 든 아이젠슈타트는 한국에서는 금성이 되겠네요.


뉴캐슬은 한자로 하면 신성인데, 일본에 동일한 한자를 가진 신시로新城시가 있답니다. 대전을 번역한 지명은 영국의 발모어Balmore라는 도시라고 우길 수도 있겠어요. 이 방법은 아래에 나올 다른 구조를 가지고도 할 수 있답니다.


두 번째 구조 예시: 윌포드(Wilford)

이 예시는 너무 단순해서 어색해 보일지도 있지만 실제로는 현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형식이랍니다. 윌포드의 윌Wil은 버드나무를 뜻하고, 포드Ford는 여울을 뜻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이름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쓰였답니다.


이 구조의 다른 예시도 봅시다.

스톡홀름Stockholm {통나무 + 작은 섬}
마르세유Marseille {바다의 끝}
평택{平澤, 연못 있는 평지}
선전{深圳, 깊은 도랑}

이렇게 직관적으로 그 지역의 지형적 특징을 사용해 짓는 이름은 그 단순함 때문에 겹칠 것 같아도 신기하게 안 겹치고, 예로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지은 것처럼 자연적인 느낌을 줍니다. 물론, 스프링필드Springfield {봄 + 들판} 같이 미국에서만 67곳이 쓰는 이름도 있지만, 흔치 않죠. 만약 지명을 지어야 한다면 이 형식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자연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나고, 창의력을 발휘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위의 윌포드를 한자로 적으면 유탄柳灘으로, 실제로 있을 법한 이름이죠? 충청도 단양군 유탄면 같이 말이에요. 마르세유야 한국에도 땅끝마을이라는 곳이 이미 있으니 변환할 필요도 없네요!


세 번째 구조 예시: 츠津

이 구조는 위 방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거랍니다. 옛사람들께서는 지명을 지을 때 너무 귀찮아진 나머지 한 단어로 지명을 짓기도 했는데요, 츠시 같은 게 예시죠. 츠つ는 한자 나루 진津의 일본어식 발음으로, 도시 이름이 나루인 셈입니다. 경기도 나루시라고 하면 입에 착 달라붙네요!


또 런던London이라는 예시도 있답니다. 런던의 어원은 불분명하나, 척박한 땅을 뜻하는 런드Lond에 명사 파생 접속사 언on이 붙어 생긴 이름이라는 게 통설이죠.

다른 예시도 봅시다!

비크Vík {작은 만} (이 한 단어가 {작은 만}이라는 뜻입니다)
프로방스Provence {행정 단위}
베를린Berlin {늪} + 접속사
폭포동瀑布洞 {폭포} + 접속사
루魯 {소금 습지}
메디나المدينة {도시}
알마그리브المغرب 정관사 + {서쪽} (모로코가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

이렇게 단순히 한 단어로 이루어지거나 한 단어에 지명에 붙는 접속사가 붙어 이루어지는 지명들은 이전의 예시보다 드물긴 하지만 여전히 널리 보이는 지명으로, 특히 서양권에서 많이 보입니다. 여전히 자연스러운 이름이고, 지명이란 것이 본래 현지 주민들이 적당한 랜드마크로 그 주변을 지칭하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래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메디나의 경우가 유독 특이해 보인다면, 베이징의 원래 이름을 볼까요? 베이징의 원나라 시절 이름은 대도大都입니다. 네. {큰 도시}라는 이름이죠. 이스탄불은 그리스어로 {저 도시}라는 뜻의 [이ㅅ 탐 볼린]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일본의 교토京都는 말 그대로 수도인 도시라는 뜻이고, 한국의 서울은... 딱히 더 말할 필요도 없겠네요.


네 번째 구조 예시: 옴스크Омск

옴스크는 옴Омь강에서 따온 이름으로, 지명을 지을 곳 주변을 흐르는 강의 이름에서 따와 지명을 짓는 것은 흔친 않지만 자연스러운 방법입니다. 뉴캐슬어폰타인(타인강 옆의 새로운 성) 같은 예시도 있겠네요. 서울의 옛 이름 한성도 한강 옆의 성이라는 뜻이랍니다.


이 구조를 위해선 강의 이름을 짓는 것이 필수적이겠죠? 혹여나 막막하신 분들께 강의 이름을 짓는 법에 대한 몇 가지 팁을 드리자면, 먼저 강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짓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나일النيل의 뜻은 {강}이고 헤일Hayle의 뜻은 {강어귀}이죠.


또는, 강에 수식하는 말을 더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예시를 봐볼까요?

에이본베그Avonbeg {작은 강}
과달키비르Guadalquivir {큰 강}
한강漢江 {큰 강}
메콩ແມ່ນ້ຳຂອງ {물의 어머니}
라인Rhein {흐른다}
아르반드 루드اروندرود {빠른 강}
브리어데Breede {넓다}
장강長江 {긴 강}
카라슈Karaš처럼 {어둡다}
세피드루드سفیدرود {희다}
무오이Mooi처럼 {아름답다}

이외에도 강에서 흐르는 것의 이름이나 강이 닮은 것의 이름을 붙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로는 노예무역이 이루어졌던 에스크라보스Escravos{노예} 강, 진흙이 많은 모더Modder{진흙} 강, 소처럼 생긴 코마티Komati{소} 강 등이 있습니다. 특이한 예시로는 클랜라이Clanrye {왕의 계곡} 강 같은 것이 있네요. 언제나 그렇듯 신이나 인물의 이름을 붙여도 되고요!


다섯 번째 구조 예시: 천안天安

이 구조는 동양에서는 낯설지 않지만 서양권에서는 드문 방법입니다. 천안이라는 이름은 그 지역의 형태와는 관련이 없고, 대신 긍정적인 단어로 지어진 이름이죠.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 ‘이곳이 편안하면 천하가 평안한 곳’ 등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결국 추상적인 단어로만 이루어진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구조의 예시를 볼까요?

니스Nice {승리}
소피아София {지혜}
톈진天津 {천자의 건널목}
교와초共和町 {공화 마을}
일본日本 {해가 뜨는 곳}

이 방법은 일단 저러한 이름을 내리거나 지을 정치 집단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늦게 등장한 방법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생각보다 여기저기 많이 등장하는 방식이랍니다!


또한, 상술한 대로 동양권에서는 자주 보이는 작명 방식이지만 서양권에서는 근대화 이후에나, 그리고 덜 등장하고, 서양에선 보통은 거리나 광장 같은 작은 크기의 지명에서 자주 보이는 방식이랍니다. 근대화 이후에는 동양권에서도 작은 지명에서 종종 보인답니다.


여섯 번째 구조 예시: 상파울루São Paulo

이 예시는 한자문화권에선 찾아볼 수 없는 방법이죠. 상파울루는 번역하면 성聖 바울이라는 뜻으로, 서양권에서는 성인이나 위인의 이름을 지명으로 쓰는 사례가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식민지에서 많이 보이며,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많은 국가의 국명이 인명에서 비롯됐고(콜롬비아: 콜럼버스, 세인트 루시아: 성 루시아, 모리셔스: 마우리츠 등), 아메리카라는 대륙 명도 아메리고 베스푸치에서 따왔죠.


또 정복 군주가 자신의 이름을 여기저기에 붙이고 다니는 경우가 있답니다. 알렉산더 3세가 대표적이죠.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 붙여진 도시가 적어도 7개, 많으면 수십 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애마 부케팔로스의 이름을 붙여 부케팔라라는 도시를 세우기도 했죠.


그밖에도, 러시아의 ○○그라드라는 지명들(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크 등)도 유명하답니다.


이 구조는 인명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으니, 바로 다음 장에서 다룰 인명 이야기 이후 사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곱 번째 구조 예시: 브르타뉴Bretagne

이 예시는 보통 조금 더 큰 지명의 이름으로 등장한답니다. 보통 한 나라였던 곳의 지명이죠. 브르타뉴Bretagne는 그 지방에 살았던 브리튼인Britons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브리튼이라는 부족 명은 아마 ‘몸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추측되죠.


다른 예시도 많습니다!

러시아Росси́я의 유래가 된 루스인은 {노 젓는 사람들}
프랑스France의 유래가 된 프랑크족은 {창 쓰는 사람들} 또는 {매서운 사람들}
독일Deutschland의 유래가 된 도이치인은 {사람들}
한국韓國의 유래가 된 한족은 {우두머리}

이 방법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민족을 작명하고 나서야 사용할 수 있겠죠. 민족명을 작명하는 방법은 나중에 다룰 예정이니 그때 다시 이 예시를 보러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여기 예시를 보고 직접 지금 사용하셔도 되고요. 다만, 민족명이라는 점에서 큰 지역의 이름으로 적당하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번외

위에서는 거주지와 강의 이름을 짓는 법만 언급했지만, 지형이 이것 두 개가 다는 아니죠. 지형에는 볼록 튀어나온 것(산, 언덕 등)도, 움푹 들어간 것(골짜기, 계곡 등)도, 평평한 것(들, 평야)들이 있습니다. 습한 지역(늪, 뻘)도 있고, 건조한 지역(사막, 황야)도 있죠.


이런 지형의 이름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생긴 형태를 보고 지은 것, 다른 하나는 형태와 관련이 적은 것이죠.


전자는 단순히 희다, 높다(알프스의 어원이 {높다}인 걸 아시나요?), 험하다 등에서부터 아홉 마리 용이 굽이치는 모습(구룡산), 무희가 옷자락을 휘날리며 춤추는 모습(무의도), 소처럼 생긴 산의 심장 부분에 위치했다는 점(염곡동)까지 다양한 이름을 지어낼 수 있습니다.


후자는 위치(첫 번째 구조처럼), 좋은 말(다섯 번째 구조처럼), 사람의 이름(여섯 번째 구조처럼), 발견한 날 등등이 있습니다. 좋은 예시로는 각각 남산, 금강산, 빅토리아 호, 이스터 섬 등이 있죠.


그리고 반대로 이런 것들을 참고해서 거주지나 강의 이름을 지어도 되겠죠! 지명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니까요. 특히 바다가 그런 면이 있죠.


바다가 순수하게 자기 이름을 가진 경우는 드물고, 보통은 주변에 있는 것의 이름을 따라갑니다. 위치에 따른 동해, 남해, 서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인도양(인도 주변에 위치), 티레니아해(티레니아 부족에서 유래) 같은 예시도 있죠. 물론, 특징(태평양, 평화롭다), 색깔(홍해, 흑해, 백해), 지형(지중해)에서 따온 이름도 있답니다.


그리고 지명을 다루면서 하나 빼먹은 아주 커다란 게 있는데요, 바로 대륙의 이름이죠. 대륙의 이름의 경우 스스로 지은 이름은 하나밖에 없는데요, 바로 유럽이죠.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지중해의 동쪽(아나톨리아의 서북부)과 지중해의 남쪽(리비아)을 지칭하던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라 외부에서 지은 이름이고, 아메리카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에서 왔다고 하고, 오세아니아는 바다라는 뜻을 가진 신조어고, 남극은 단순한 위치를 지칭하는 이름일 뿐이죠.


사실 유럽도 원래는 발칸 산맥 남쪽의 지역을 지칭하던 말이었는데, 후에 의미가 확장된 것입니다. 애초에 고대인이 대륙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대륙을 부르는 말은 없었죠. 유럽이라는 이름은 넓다는 뜻의 에우뤼스εὐρύς에서 왔다고 추정되고, 지구/대지의 이명이라고 추정된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지구를 천하, {하늘의 아래}, 또는 세상이라고 불렀었죠. 한국어에는 누리라는 단어가 있답니다. 세상이라는 뜻인데, 어원은 "누렇다"라는 단어와 같다고 추측하죠. 아마 흙을 보고 지은 뜻이겠죠? 이렇게 보면 스스로 지은 대륙명은 세상을 의미하는 단어와 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여러 구조들이 있지만, 일단 자주 쓰이는 건 이 정도인 것 같네요. 그럼 어떤 단어들이 필요할 지 고민해 보며 다음 장을 기다려 봅시다!


아,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한국어에 강, 내, 시내, 개울, 개천, 실개천 등 다양한 크기와 상황에 맞춘 "흐르는 물"이라는 지형에 대한 많은 단어가 있는 것처럼, 여러 언어는 크기나 주변 지형을 두고 동일한 지형이라도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답니다.


그래서 한 단어의 뜻이 "나무가 많고 크기가 작은 골짜기"여도 상관없죠. 아니면 "나무 없이 풀만 있는 들"이나요. 이런 뜻의 단어를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리고 더 재밌는 점은 이런 단어가 대부분 한 음절이나 두 음절이라는 사실로, 그만큼 먼저 만들어진 단어란 뜻이죠.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고대인에겐 위치를 설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그만큼 주변의 지형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답니다. 지금이야 "언덕" 하나로 대신하고 넘어가겠지만, 그 언덕에 나무가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가파른지, 샘물이 흐르는지, 이런 정보는 고대인에게 필수적이었겠죠. 그래서 각각의 언덕을 별도의 이름으로 불렀답니다.


어이쿠, 너무 길어졌네요! 이번 장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 장, 인명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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