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역사, 권외3
예문 1. 나는 빵을 안 먹었다.
① 빵을 먹은 것은 내가 아니다.
② 내가 먹은 것은 빵이 아니다.
③ 내가 빵을 먹은 것이 아니다.
예문 2. 빵을 다 먹지 않았다.
① 빵을 아예 먹지 않았다.
② 빵을 일부만 먹었다.
예문 3. 기차로 갔다.
① 기차를 향해 가다.
② 기차를 타고 가다.
예문 4. 나는 철수와 영희를 만났다.
① 나와 철수 둘은 영희를 만났다.
② 나는 철수와 영희 둘을 만났다.
예문 5. 똑똑한 홍길동의 부하 마숙.
① 홍길동이 똑똑하다.
② 마숙이 똑똑하다.
위의 예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문 1에서는 "안"이 부정하는 것이 주어(나)인지, 목적어(빵)인지, 서술어(먹었다)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모호함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죠.
예문 2에서는 "다"가 아닌 이유가 ① 전부 아니기 때문인지, ② 일부만 아니기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모호함이 생긴답니다.
예문 3에서는 한국어의 조사 "-로"가 목적지를 의미할 수도(향격lative), 수단을 의미할 수도(조격instrumental) 있기 때문에 모호해졌습니다. 동음이의어로 인해 생긴 모호함이기도 하죠.
예문 4에서는 공동격comitative(함께 한다는 의미) 조사 "-와"가 "나"와 "철수"를 묶는지, "철수"와 "영희"를 묶는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해석에 모호함이 생긴답니다.
예문 5에서는 수식어 "똑똑한"의 피수식어가 "홍길동"인지 "마숙"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모호함이 생깁니다.
이렇듯 자연적으로 생긴 언어는 여러 모호함, 즉 중의성ambiguity을 가지고 있답니다. 위의 예문은 한국어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닌, 다른 언어를 가지고도 만들 수 있죠. 각 언어의 어휘적·문법적 특징에 따라 수많은 애매모호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답니다.
나아가 그런 언어를 사용하며 만든 창작 언어도 모호함을 가지고 있답니다. 우리는 모두 좋으나 싫으나 우리가 쓰는 언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니까요.
한국어 화자는 어째서 "with" 같은, 조격과 공동격에 동일한 단어를 쓰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영어 화자에게는 너무나 당연히 느껴지죠. 마찬가지로, 영어 화자는 어째서 향격과 조격에 동일한 단어를 쓰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한국어 화자에게는 일상이고요.
그러니 한국어 화자가 언어를 만들면 무의식적으로 향격과 조격을 하나로 묶고, 영어 화자가 언어를 만들면 무의식적으로 조격과 공동격을 하나로 묶는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진 언어는 모양만 다른 한국어, 소리만 다른 영어가 되기 십상이죠.
이렇듯 모호함은 한 언어의 특색을 정해주는 요인 중 하나랍니다. 여러 문법적 기능 중 무엇을 동일한 도구로 나타낼지, 수많은 의미 중 무엇이 동음이의어가 될지, 다 한 언어의 특징이 되죠.
모호함은 보시다시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지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남아있습니다. 모호함은 왜 있는 것일까요? 모든 문법적 기능을 별도의 형태로 나타내고, 모든 동음이의어를 구분하면 모호함은 하나도 없는, 완벽하게 명료한 언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모호함은 각 언어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각 언어의 약점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언어는 이래서 이 두 의미를 구별하지 못하고, 저 언어는 저래서 저 두 의미를 구분하지 못하니까요. 또 누군가는 이래서 저 언어가 더 낫다고, 또 어디서는 저래서 이 언어가 낫다고 평가합니다.
창언창안에서 여러 번 강조하듯이 자연적인 언어 자체에는 어떠한 우열 관계도 없다는 점을 제치고 보더라도, 모호함은 여전히 한 언어의 약점, 단점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모호함이 없는 것은 절대 좋지 못하죠.
얼핏 보기에 거짓말 같은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한 인공어를 봅시다.
이스쿠일Ithkuil은 세상에서 가장 명료한 언어입니다. 소리 하나하나, 강세 하나하나에 의미를 욱여 담아 단어 하나만으로 다른 언어에서는 한 문장이 필요할 의미를 담아내죠.
하지만 단순히 의미를 욱여 담는다는 점이 이스쿠일의 특징이 아닙니다. 욱여 담긴 의미가 극도로 세밀하다는 점이 진정한 이스쿠일의 특징이죠. 예시를 보며 자세히 알아봅시다.
iţkuîl [이스쿠일]
어근 kl:
이스쿠일의 각 단어는 어근에 여러 접사를 더하는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어근의 뜻은 {말言}, {목소리}, {해석} 등을 의미합니다.
접요사 -u-:
이스쿠일의 각 어근의 의미는 셋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접요사는 그 중 두 번째 의미를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말의 의미 있는 단위}, 또는 {단어} 정도로 번역됩니다.
접요사의 변형 u > uî:
접요사의 변형을 통해 {말의 의미 있는 단위}가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가상의, 혹은 정신적인 것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즉, 뜻을 {만들어낸 단어}로 바꿉니다.
첫 번째 자음 부수의 변형 k > ţk:
첫 번째 자음 부수의 변형을 통해 단어의 "구성configuration"을 바꿉니다. 이 변형은 구성을 "혼성composite"으로 정의합니다. "혼성"은 다소 이질적인 것들이 가까이 있거나 접촉해 있어서 함께 움직이면서 연결되거나 융합해 창발적 모습을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성"은 자연어의 "수" 개념과 유사합니다.
여러 {만들어낸 단어}가 뭉쳐 있으니 {어휘}라는 의미로 변합니다.
접두사 i-:
이 접두사는 "주안extension"이 "전체delimitive"이고 "연계affiliation"가 "협심coalescent"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주안"은 시공간적 규모를 의미합니다. "전체"라는 것은 이 개념의 전체를 다루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계"는 이 개념의 구성원들 사이에 공통된 목적이 있는지, 그 형태는 어떠한지를 의미합니다. "협심"이라는 것은 구성원들의 목적이 상호보완적이며 창발적으로 더 큰 목적을 지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휘}가 목적을 가지고 모였으니 {언어}가 됩니다.
끝에서 두 번째 음절에 강세:
이 명사의 "관식perspective"가 "단일monadic"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관식"은 단어의 경계가 얼마나 확실한지를 나타냅니다. "단일"은 경계가 확실해 다른 개념들과 확실히 분리되고, 내적으로는 통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어}라는 개념을 지칭하는 게 아닌, {한 언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합니다.
이 모든 의미가 합쳐져 iţkuîl은 {말의 요소들이 상호보완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모인 완전한 체계를 상상한 것}, 즉 {가상의 언어}를 의미합니다.
이렇듯 이스쿠일은 현실의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구성", "주안", "연계" 따위의 개념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격의 종류가 96개나 되어 주어, 목적어 등을 수많은 종류로 세분하고 소유의 의미를 세세히 분석하기도 하며, 다양한 서법이나 언향을 활용하여 화자의 믿음이나 확신의 정도를 확실히 한답니다.
그러나, 이런 언어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이스쿠일의 창시자 존 키하다John Quijada마저 이스쿠일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한 단어를 적을 때마저 수많은 문법적 요소를 통해 의미를 철저히, 확실히,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보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배¹.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서 위장, 창자, 콩팥 따위의 내장이 들어 있는 곳으로 가슴과 엉덩이 사이의 부위.
배². 사람이나 짐 따위를 싣고 물 위로 떠다니도록 나무나 쇠 따위로 만든 물건.
배³. 배나무의 열매.
로⁶ 1. 움직임의 방향을 나타내는 격 조사.
로⁶ 3. 변화의 결과를 나타내는 격 조사.
로⁶ 8. 지위나 신분 또는 자격을 나타내는 격 조사.
로⁶ 9. 시간을 나타내는 격 조사.
로⁶ 13. 어떤 사물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 표준국어대사전 中 발췌
한 언어에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모호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뇌를 최대한 덜 쓰려고 노력하니까요. 모호함은 언뜻 보면 쓸데없는 혼란만 만드는 요소일 수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의 정보를 집어넣으려는 인간의 지혜랍니다.
동일한 그릇에 서로 비슷한 뜻이든,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뜻이든, 서로 완전히 상관없는 뜻이든, 여러 뜻이 담겨있더라도 큰 문제는 없답니다. 인간에게는 문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하는 "탑"이 내 눈앞에 있는 {이 탑}인지, {탑}이라는 개념인지, 항상 가보고 싶었다는 {그 탑}인지, 매번 명시할 필요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의 [탑]이라는 그릇에 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죠. 사람은 컴퓨터가 아니니까요. 수많은 상충하는 의미 중 적절한 것을 뽑아 문장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답니다.
오직 한 종류의 사물만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몇천 개씩 가지고 있기 보다는 열 가지, 백 가지 사물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몇백, 몇십 개만 가지고 있어도 충분하답니다. 아니, 충분한 것을 넘어서 오히려 낫죠. 인간의 뇌는 이런 쪽의 계산을 훨씬 잘하니까요.
모호함은 한 단어를 한 의미에 특화해 사용하는 것이 아닌, 한 단어를 범용성 있게 쓸 수 있게 해 문맥에 따라 의미를 확정 짓는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유용한, 인간 언어가 가진 중요한 특징 중 하나랍니다.
이번 장을 시작할 때 본 예문 1을 다시 봐 봅시다.
예문 1. 나는 빵을 안 먹었다.
① 빵을 먹은 것은 내가 아니다.
② 내가 먹은 것은 빵이 아니다.
③ 내가 빵을 먹은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 문장은 ③의 뜻으로 쓰이지만, 상황에 따라 ①이나 ②의 의미로 쓰일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어의 경우 보조사의 위치를 옮기는 것으로("내가 빵은 안 먹었다" 등) 모호함을 해결할 수 있지만, 다른 언어처럼 단순히 문장을 말할 때 원하는 단어를 강조하는 것으로도 모호함을 해결할 수 있죠.
언어를 불문하고,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단어를 느리게·크게·또박또박 말하는 것으로 모호함을 해결할 수 있답니다. 이것은 인간 언어의 유연함을 크게 늘려주죠. 물론 글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인간이 문자를 사용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으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도 매우 짧으니 인간의 언어가 구어 위주로 진화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이것 말고도 맥락을 바탕으로 모호함을 해결할 수 있답니다. 예문 4(나는 철수와 영희를 만났다)의 경우, 이전까지 나와 철수가 함께 있었다는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면 {나와 철수 둘은 영희를 만났다}로 해석할 수 있죠.
맥락에는 단순히 대화의 맥락만이 아닌, 현실과 상식에 기반한 맥락이 있답니다. "맛있는 아빠의 밥"이라는 문장에서, 서술어 "맛있는"의 피서술어를 "아빠"로 해석하는 사람은 없죠.
이렇듯 모호함으로 생기는 단점은 매우 적답니다. 구어에서는 여러 도구와 맥락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고, 문어에서는 계획적인 글쓰기로 아예 모호함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반대로, 모호함 덕분에 생기는 장점은 굉장하죠. 인간의 인지적 한계 안에서 수많은 단어와 문장을 만들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소통을 원활하고 빠르게 해준답니다.
모호한 문장 때문에 이런 저런 일이 생길 때가 많지만, 소통의 기본 전제인 "양측이 서로를 이해를 돕기 위해 협력한다"가 지켜진다면, 모호함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적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