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지도 않지만, 차지도 않은 신앙 고백
예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에 전혀 반감이 없었다. 중학교 수련회 때, 자기를 믿지 않으면 지옥을 보낸다는 하나님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하나님은 절대주권이 있기에 당연히 그럴 수 있는 분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었다.
정확히 20년이 지난 지금, 나의 신앙은 달라졌다. 그때 보다 더 많은 의심과, 회의와,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신앙이 되었다. 내일은 부활절.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이 몸의 부활을 하셨음을 고백하는 기독교의 절기이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고 생각한다. 인류를 사랑해서 자신의 자식마저 제물로, 혹은 자기 자신마저 제물로 줄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율법주의자들과 유대교 지배층들이 왜곡하던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다시 잘 가르쳐 주신 것도 맞다고, 그리고 종교마저 품지 못하던 배제된 사람들을 주목하고 사랑해 주신 것도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나님이 허락하신 혹은 하나님이신 신성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부활만큼 확실하게, 엄청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순교하면서 까지 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인류 죄 대속을 위한 죽음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문자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온 교회가 전통적으로 예수님을 그렇게 해석하고 교리를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역사적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개입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교리와 정경을 정한 것은, 진리라기보다는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교회만 남은 어느 시점부터, 자신들의 신앙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교회의 전통과 고백을 존중한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많은 분들이 그 전통과 고백이 진리라고 믿고 많은 세월과 에너지를 들여 공부하시고 설파하시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어떤 분들은 그 전통과 고백은 오히려 실제의 예수를 왜곡한다고 생각하고, 역시 많은 세월과 에너지를 들여 연구하고 설파한다. 나도 그 사이 어디에서, 많은 세월과 에너지를 들여 나의 진리, 나의 신앙을 정리하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물음표를 남겨놓자고 생각한 상태이고, 나의 삶에서 시간이 될 때마다 조금씩 정리하자는 결론이다. 왠지 과정을 밟는 공부로 그 결론이 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예수님을 실제로 본 사람은 지금 현재 없다. 남겨진 문서들로 추론해 볼 뿐이다. 꽤 그럴듯하게 추론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학문적인 추론에 내 소명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내 정리가 그렇게 명쾌하게 느껴질 것 같지도 않다. 직접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어떻게 진실을 알 수 있을까? 신학과 교회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느꼈던 그나마 나에게 확실한 것은, 신앙 없는 신학처럼 그리고 신학 없는 신앙처럼 공허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내 작은 삶에서, 내가 느끼고 공부한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살아내는 것이 내 소명이다. 최대한 이웃과 나, 가족에게 친절하고 그들을 섬기는 삶. 그러기에는 부족한 나의 마음과 지혜에 매몰되지 않고, 용기와 인내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 구하는 삶.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기에. 나는 예수님의 역사적 존재를 사람들의 사랑을 통해서 설득되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고대 근동에서 생겨난 유대교의 분파였던, 어쩌다 유럽의 주류 종교가 되고 어쩌다 세계로 많은 피를 흘리며 퍼져나간 이 종교를 나의 신앙으로까지 가질 이유가 없다.
나에게 예수님은 아주 중요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없는 혹은 성령으로 계시는 지금, 교회도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내일의 부활절기를 나는 기념한다. 고난이 없이는 면류관이 없다. 죽기까지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신 예수님. 그런 예수님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나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나의 소명, 딸들을 건강하게 지키는 일. 가족을 사랑하는 일. 이웃을 섬기는 일. 그리고 요즘 구체적인 직업은 헷갈리지만 다른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일. 그런 것에 열심을 다 하자고 생각해 본다. 폐허에 생명을 내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신뢰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