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14. 시간을 본다. 2시간 정도 남았다. 카쿠르터와 처음 만나는 자리다. 곧 카페 안은 이들로 그득하겠지? 긴장된다. 임 대표와 승기는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분주하다. 그나저나 임 대표가 초대한 자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혹시? 정호님이? 한국에? 그렇다면 나 또한 너무나 기대된다. 우현이의 아버님이라는 사실을 떠나, 살면서 이처럼 세상의 흐름을 이해한 어른을 만난 적은 없어서다. 또한, 임 대표가 아들이기에 다른 프로젝트보다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지 않을 거다. 기대는 기대일 뿐이다. 임 대표가 관련한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아서다. 정호님은 우리 프로젝트 말고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관리한다. 그래, 임 대표에게 묻는 게 제일 빠르다.
“임 대표, 사업 설명회에 초대한 사람이 누구야?
혹시 정호님이야? 정호님이 한국에 오신 거야?”
“그건 비밀이다.
효상아. 그나저나 카쿠르터는 어때?
단톡방 상황은?”
“임 대표, 그러니까 단톡방에 참여하라니까.
나와 승기만 참여하니까 상황을 알 수가 없잖아.”
15. 임 대표는 카쿠르터가 모인 단톡방에 참여하지 않는다. 대표가 있으면 방 안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게 불편하다고 느껴서다. 그래,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 승기와 같이 근무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기억나는가? 승기와 술자리 했던, 본인 삶을 ‘이생망’이라 한탄하다가 승기에게 잔소리를 들은 과장님. 그 과장님은 승진해 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팀원과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대화를 끌어내고 싶다는 명목으로 팀원과 함께하는 단톡방을 만들었다. 나와 승기는 그를 ‘이생망 팀장’이라고 부른다. 이생망 팀장이 만든 업무용 단톡방은 일반적으로 조용하다. 그리고 그게 무엇에 관련한 내용이든지, 단톡방을 울리게 하는 주범은 팀원이 아닌 이생망 팀장이다. 업무에 관련한 내용은 대부분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단톡방에서 업무를 주고받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이생망 팀장이 단톡방에 무언가 공지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다.
1. 정치에 관련한 내용.
2. 시답잖은 유머.
3.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처형하거나 칭찬할 때.
에피소드 하나를 말하자면, 정말 정치에 관련한 기사를 하루도 안 쉬고 이생망 팀장은 공유한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폭력적인 처사라 느낀다. 세상의 정의가 바로 서려면, 이러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그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이생망 팀장의 정치적 성향으로 얼룩진, 이 단톡방에 있는 게 괴롭다. 문제는 말이다. 점심시간마다, 공유한 기사를 읽었는지를 점검한다는 사실이다. 솔직하게 말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정말 엄청난 실수다.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 이생망 팀장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친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야.
자네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는 거야?”
16. 아, 제발 네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소리치고 싶다. 이게 무슨 강아지가 소리치는 삼단논법이냐? 무덤 속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깨어나 비웃는다. 아직 이생망 팀장의 핏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노려본다.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하다.
“자네는 앞으로 매일 공유하는 기사를 읽고, 단톡방에 의견을 말해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네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미래라고. 정치를 외면하면, 미래는 있을 수 없어. 지금은 내가 꼰대처럼 느껴지겠지만, 다 자네를 위해 하는 소리야.”
아, 이런! 우라질! 휴...., 어쩔 수 없이 난 승기를 바라본다. 도대체 이 상황을 해결할 적절한 답변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승기는 과거 술자리에서 팀장과 허물없이 의견을 공유한 사이다. 승기도 나의 구조 신호를 눈치챈다.
“팀장님, 요즘 당뇨 관리는 제대로 하세요? 담배와 술을 끊는다고 하더니만, 벌써 몇 개월째인가요? 도대체 하루에 몇 개비나 태우세요? 제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본 것만 6번은 족히 되는 것 같아요. 이제 겨우 점심시간이라고요. 그리고 며칠 전에도 다른 팀장님과 술 드신 것 같던데.... 언행일치해야지요? 당뇨병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요? 정말로 합병증으로 죽을 수 있어요. 우리는 팀장님만 바라보고 있다고요. 팀장님 건강에 문제 생기면, 우리 부서는 어찌합니까?”
나이스, 그레잇, 땡큐, 김승기! 이생망 팀장의 서슬 퍼런 핏대가 사라진다. 목소리도 차분해진다. 역시 팀장님 잡는 김승기다.
“승기야, 세상이 나를 치료에 집중하게 하지 못하게 해. 이처럼 세상이 어수선한데, 어떻게 담배를 끊고, 술을 멀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약은 꾸준히 먹고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도 나를 걱정하는 사람은 승기밖에 없어.”
17. 이생망 팀장은 에둘러 말하지만, 이 대화를 끝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승기가 이 대화를 끝내줄 리가 없다.
“팀장님, 도대체 누가 팀장님을 괴롭혀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아요. 그리고 정말 누가 우리를 괴롭히는지 모르세요? 아니면 모른 척하고 있나요? 아무도 팀장님한테 세상의 무게를 짊어지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정말로 정치 문제로 마음이 힘드세요? 지지하는 정권이 세력을 잡지 못해서 그래서 매일 같이 그 응어리를 단톡방에서 해소하려고 하나요? 팀장님, 저랑 효상이는 팀장님 라인이잖아요. 이번에 팀장으로 승진한 것도, 스스로 쟁취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전 팀장이 다른 곳으로 이직해 어부지리[175]로 얻었다고, 다른 부서 사람이 얼마나 비웃는지 아세요? 나와 효상이가 업무 협조를 위해 다른 부서에 부탁하면, 그들이 얼마나 비협조적으로 나오는지 모르지 않잖아요. 그게 다 우리 팀, 아니 팀장님을 무시하는 처사라고요. 문제가 이리도 많은데, 그깟, 정치가 뭐라고, 그것 때문에 담배와 술을 끊을 수 없다는 말하는 팀장님, 전 이런 팀장님의 모습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18. 승기야, 술자리도 아니고, 점심시간인데 너무 맵다. 이처럼 몰아붙이라고 구조 신호를 보낸 게 아닌데, 괜히 이생망 팀장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이생망 팀장의 목에 핏대가 다시 올라온다.
“승기야, 정치를 모르니 그렇게 말하는 거야. 아직 어려서. 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않아. 그렇다고 말이야. 승기야, 우리가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무너지는 대한민국을 손 놓고 볼 수는 없잖아. 난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라고.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꼴을 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다른 부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치 않아.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거든. 팀장만 알고 있는 정보라는 게 있어. 그런 게 있다고.”
결국, 이생망 팀장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대관절 인신공격이라니. 어려서 정치를 모른다고 말하다니. 우현이와 셋이 있을 때, 매일 같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김승기인데. 아, 이제 나도 모르겠다. 정말 이 자리를 뜨고 싶구나.
19. 침묵은 우리를 감싼다. 승기는 숨을 고른다. 무슨 말을 하려고 숨까지 고르냐. 미안합니다. 이생망 팀장님.
“팀장님, 도대체 대한민국은 몇 시 몇 분에 무너지는데요? 정말 무너지는 게 맞나요? 팀장님과 우리만 무너지는 게 아니고요? 팀장님, 지금 우리 부서가 무너지고 있다고요. 팀장님, 효상이, 그리고 제가 무너지고 있다고요. 도대체 오후 9시 이전에 퇴근한 기억은 언제세요? 주 52시간이라고 법으로 정하면 뭐 합니까? 우리는 도대체 주에 몇 시간을 근무 중인인지는 알고 있나요? 워라밸은 기대도 안 해요,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 셋이 이처럼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세요? 이것도 팀장님이 염두에 둔 원대한 계획의 일부인가요?
그리고 과도한 업무로 새로운 사람을 충원해야 한다고 대표님께 강력하게 어필한다면서요, 그런데요, 우리는 매일 밤을 지새우고 있어요. 그리고 과도한 업무를 실수 없이 해내고 있다고요. 실수 없이 해내는 게 정말로 문제라고요, 이러니 위에서 미쳤다고 새로운 인원을 보충하려 하겠냐고요. 이것도 마음속에 꼭꼭 숨겨 놓아 누구도 알 수 없는 팀장님의 치밀한 전략입니까?
그래요, 팀장님 말씀처럼, 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다면, 팀장님이 정치로 바로 세워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우리 부서잖아요. 그리고 팀장님의 가정입니다. 사모님과 자녀분의 걱정은 안 하세요? 팀장님 저번에 검사한 당화혈색소 수치가 여전히 13이라면서요.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이해합니까? 저희 아버지도 당뇨로 고생하다가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고요. 당화혈색소 수치가 13이면, 정말로 언제든지 합병증으로 객사[176]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모님과 자녀분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나요? 아마도 모를 확률이 높아요. 팀장님이 처음이라면서요. 당뇨병에 걸린. 이처럼 가족력이 없으면, 주위 사람은 알 수 없어요. 당뇨병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더군다나, 하루가 멀다고 술을 먹는 팀장님을 보면서, 걱정이나 하겠습니까? 당뇨병을 가볍게 생각할 게 분명하다고요. 이러한 모습으로 사모님과 자녀분을 안심? 정말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네요. 이러한 상황이 정말로 바르다고 생각하세요?
팀장님, 자기가 관리하고 사랑하는 공간은 바르게 세우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아니 대한민국을 걱정하고 있다니요, 대한민국이 먼저 무너지겠습니까? 팀장님이 먼저 무너지겠습니까? 이게 말입니까? 방귀입니까?”
20. 승기가 던진 모든 말은 이생망 팀장의 몸에 꽂힌다. 형체가 없는, 설명할 수 없지만, 승기의 모든 말이 살아있는 총알처럼 보인다. 매트릭스의 주인공인 네오였으면 한다. 7.62mm 기관총 구경에서 쏘아 대는, 무차별적인 51mm 총알 세례를 허리를 굽혀 이리저리 움직이며 피했을지도 몰라서다. 하지만 이생망 팀장은 네오가 아니다. 총구로부터 나오는 가스 압력에 밀려난 첫발은 공기 저항을 뚫어 직진으로 이생망 팀장의 가슴에 꽂힌다. 하지만 정확하게 심장을 노린 게 아닌 듯하다. 사망에 바로 이르는 치명상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첫발 후로 쏟아지는, 무차별적인 총알 폭격의 아픔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비틀거리는 이생망 팀장을 조롱하듯,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수십 발의 총알은 속도를 다르게 공기의 저항을 뚫어 직진으로 이생망 팀장에게 박힌다. 아프겠다. 아주 많이. 2대 0. 김승기의 방어전은 승리로 끝난다.
총알이 몸의 표면에 닿는다.
몸을 관통해 근육, 뼈, 내장에 도달한다.
총알이 닿은 모든 부위가 파괴된다.
파괴된 모든 부위에서 붉은 선혈이 솟구친다.
아프겠다.
보는 내가 다 찌릿하다.
아프니?
그러게 항상 말하잖니.
총은 너만 사용하는
전유물[177]은 아니라고.
21. 이생망 팀장은 아무 말이 없다. 어느 때보다 숟가락이 빠르게 움직인다. 밥만 먹는다. 반찬은 손도 대지 않는다. 자리를 빨리 뜨고 싶다는 무언의 행동이다. 갑자기 적막하다. 이생망 팀장은 승기와 말하기를 거부한다. 아니, 그것보다 두려워한다. 무서운 정적 공간은 긴장감과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더는 벌어지지 않는다.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가득한 이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누구도 섣불리 공격할 마음이 없어서다. 그렇게 평화는 이루어진다. 그렇게 점심 식사는 끝났다. 그리고 그렇게 이생망 팀장의 단톡방도 끝났다.
○○ 님이 나가셨습니다.
채팅방으로 초대하기
to be continued....
[175] 어부지리 (漁夫之利): 쌍방이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애쓰지 않고 가로챈 이득.
[176] 객사 (客死): 객지에서 죽음.
[177] 전유물 (專有物): 혼자 독차지한 물건. 독점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