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19. 여느 날과 같은 아침이다. 사무실 풍경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작은 까치집을 머리에 달고 출근하는 직원. 머리를 밤에 감아서일까? 아니면, 베개의 문제일까?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사무실에 출근하는 직원. 한 손에 커피를 들면서 다른 손에 책을 들고 오는 모습은 영 어색하다. 몇 개월째 같은 책을 들고 다닌다. 인생의 책이라서 그런가? 정말로 책을 읽기는 할까? 오자마자 탕비실에 들어가 주전부리를 잔뜩 챙겨 자기 책상에 놓는 직원. 다이어트 중이라 말하며,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한다. 그런데 이미 하루 동안 먹는 주전부리의 칼로리만 계산해도 족히 2000칼로리는 넘는다. 차라리 운동해라. 괴롭지 않나? 그렇게 살면? 레트로에 푹 빠져, 한 손에는 워크맨을 쥐고 길게 늘어진 줄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 출근하는 직원. 정작 음악은 복고풍과 거리가 먼 최신 음악을 좋아한다. 실제로 워크맨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냥 멋이다. 다른 한쪽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연동해 음악을 듣는다. 그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냐? 다른 사람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 아침부터 스트레칭 삼매경에 빠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청하면서, 미라클모닝을 실천하는 직원. 요가 매트만 있다면 이곳은 회사가 아니라 헬스장이다. 그렇게 살면, 아침은 좀 상쾌해지나? 제발 오전 미팅 때, 졸지 좀 마라. 그러게, 정시에 출근하고 잠을 더 자라고 그리 말했는데. 그래, 여느 날과 같은 아침이다. 사무실 풍경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승기야, 요즘 임 대표는 어때? 일이 많아서 매일 야근하는 것 같아서. 건강을 챙기면서 일은 해?”
“그러게나 말이다, 친구로서 임 대표를 바라보면, 안쓰럽지. 본사와 연락도 혼자서 하니까, 우리가 모르는 부담감이 얼마나 크겠어?”
“그래도, 너와는 좀 속 이야기를 하지 않아? 예전보다 좋아지기는 했는데, 그래도 나와 임 대표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건 순전히 네 오해라니까. 임 대표, 아니 우현이는, 변하지 않았어. 친구로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고.”
“그래, 네 말이 맞겠지. 늘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너는 뭐 아는 것 없어? 본사의 방향이나 앞으로 계획 등, 뭐 그런 것 있잖아. 임 대표와 본사만 알고 있는 그런 말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임 대표가 이것저것 지시를 하기는 해. 그런데 그게 본사의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특별히 둘이서 따로 회의하지는 않아.”
“그래? 지시는 해? 그렇다면, 요즈음, 임 대표가 따로 지시한 게 있어?”
“안효상, 도대체 뭐가 궁금한 건데? 빙빙 돌리지 말고, 원하는 것을 물어.”
“아, 별것은 아니고. 카쿠르터와 임 대표는 친해?”
“친하냐고? 그게 무슨 말이야, 효상아. 좀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러니까, 보통 카쿠르터의 업무 지시는 네가 하지 않아? 가끔은 임 대표가 직접 지시하는 게 있는가 해서.”
“효상아, 임 대표는 카쿠르터와 관련한 업무는 내게 일임했어. 임 대표가 따로? 카쿠르터와? 그런 적 없었는데? 왜 물어? 뭐 아는 게 있어?”
20. 승기는 임 대표가 카쿠르터와 따로 일을 진행하는 상황을 전혀 모른다. 승기도 모르게 무엇을 진행하지? 긁어 부스럼 만들 이유가 없다. 확실한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임 대표에게 직접 물어야 하나? 그러면, 또 의심하는 꼴인데, 임 대표가 명확하지 않은 의심을 더는 너그럽게 받아줄지도 알 수 없다. 무언가 확실한 물증이 나오면, 그때 승기와 상의를 하는 게 좋겠다.
“있기는 뭐가 있어, 그냥 다 같이 모여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그동안 너무 뜸했어. 아무리 회사에서 얼굴을 본다고 해도 말이야, 그래도 가끔은 동료가 아닌 친구로서 만나기도 해야지. 안 그래?”
“난 또 뭐라고, 임 대표도 얼마 전, 비슷한 이야기 하더라. 조만간 모여서 회포나 풀자고, 강변역 포장마차 기억난다. 참 세월 많이 흘렀네. 이따가 임 대표에게 슬쩍 물어볼게.”
어르신의 죽음으로 이사를 안 하고 머무르겠다고 하는 세입자는 4 가구다. 아? 3 가구다. 한 가구는 카쿠르터의 설득으로 위로금을 받고 떠나기로 한다. 임 대표는 말한다. 더는 직접 가지 말라고. 어르신 사건 이후로, 카쿠르터를 통해 보고만 받는다. 임 대표의 수상한 통화 이후로, 모든 상황은 그대로다. 과민반응이었을까? 보다시피, 내 직감은 신통하지 않다. 맞은 적이 없어서다. 직감을 통한 합리적 추론으로 결괏값에 이르기도 전에, 모든 게 상상으로 끝난다. 오히려 그게 다행이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직감이 맞는다 한들, 솔직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황을 알면서도 침묵해 사적인 이익을 취하거나, 아니면 내부 고발자가 되어 카테피아를 스스로 무너뜨려야 한다. 무엇을 선택해도 잔인한 결과다. 침묵해 사적인 이익을 취한들, 그게 오래갈까? 그리고 행복할까?
타인을 속여 얻은 부를 통해 행복해질 자신은 없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의 화려한 겉치레와 달리,
입고 뽐내는 옷의 안감은 거짓의 유리 섬유로 이루어져,
평생 가렵고 따가운 삶을 살아갈지도 몰라서다.
그렇다면, 내부 고발자가 되어서 스스로 카테피아를 무너뜨릴 용기는 있는가? 최고의 선이라 믿고, 우리를 따르는 카쿠르터와 투자자의 꿈을 한꺼번에 짓밟을 수 있는가? 그들에게 우리는 인생을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누구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 인생 2막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리라 확신해서다. 그렇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힘으로 완성한 카테피아를 통해서 이들은 성취감을 얻게 될 거다. 성취감은 또 다른 성취감을 도전할 용기를 선물한다. 그렇게 그들의 소박한 꿈을 완성해 간다. 무슨 자격으로 그들의 소박한 꿈을 박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진정한 정의라 말할 수 있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의란 말인가? 사랑하는 동반자 모두, 실의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할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불편한 내 마음만 편하고자, 그들의 슬픔을 이용한다면? 그렇게 실체가 간악하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후폭풍을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무엇도 선택할 수 없다. 겁쟁이니까. 악마가 될 자신도, 그렇다고 천사가 될 자신도 없다. 평범한 인간이니까. 쓸모없는 직감이라 다행이다. 그렇게 나를 다독인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그릇된 일은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
21. 출근하는 길에 임 대표가 보인다. 인사를 하려 손을 올린다. 나를 보지 못한다. 임 대표는 서둘러 누군가 차에 올라탄다. 처음 보는 차이다. 쓸모없는 직감은 내게 말한다.
‘임 대표를 따라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임 대표를 미행 중이다. 왜 또 찰나에 택시가 눈에 보이는가! 허겁지겁 택시에 승차 후,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장면을 연출한다.
“기사님, 저 차, 검은색 SUV를 따라가 주세요.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택시기사도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형사님이세요? 용의자 차량을 추적 중이시군요? 이래 봬도, 모범시민으로 선정된 사람이에요. 소매치기 검거를 도운 적이 있었어요. 나쁜 놈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 엄벌로 단죄해야 합니다. 형사님, 안전띠 매시고, 반드시 끝까지 추적할게요.”
“네, 그럼 부탁합니다. 기사님.”
아무 말하지 않는다. 당분간 형사로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일단, 미행하는 게 들켜서는 안 된다. 말하지 않아도 택시기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검은색 SUV를 따라간다. 이런 신호가 걸렸다. 임 대표가 탄 차량은 떠난다.
“기사님, 따라갔어야죠. 여기서 신호를 지키면. 기사님, 저기 지하철역이 보이네요. 저기서 세워주세요.”
“형사님, 성격도 급하십니다. 무리하게 따라가면 오히려, 발각될 수 있어요. 저 도로를 통해 가는 곳은 뻔해요. 다른 길로 빠질 수가 없어요. 결국, 중간에 만나요. 지름길로 가면, 다시 추적할 수 있어요. 만약에, 그렇게 안 되면, 택시비를 받지 않을게요.”
역할 놀이에 푹 빠진, 확신에 찬 택시기사를 말리기는 어렵다. 일단 이곳 지리에 밝은 이 사람을 믿어보자.
“알겠습니다. 기사님.”
택시기사의 말대로 임 대표가 탄 차량이 멀리서 보인다. 택시기사는 힐끗 나를 본다. 개구쟁이 얼굴로 윙크를 날리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이 상황이 이렇게 신이 날 일인가?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검은색 SUV가 속도를 높인다. 택시기사 또한, 오른쪽 발에 흥분한 감정을 실어 가속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가속 페달은 엔진과 실린더에 공기와 연료를 선물한다. 그 힘을 통해 점화 플러그가 점화를 일으킨다. 플러그의 점화로 실린더의 내부폭발로 엔진은 회전하기 시작한다. 청신호다. 그리고 서서히 회전수가 올라간다. 엔진의 빠른 움직임은 구동축에 지시한다. 움직이라고. 구동축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구동축이 돌기 시작하면, 변속기는 서서히 속도를 높일 준비를 한다. 변속기를 통해 기어가 맞물린다. 작은 기어는 큰 기어에 자신이 받은 지시를 전달한다. 그렇게 구동축의 회전수는 올라간다. 모든 힘은 바퀴에 전달된다. 바퀴는 지면을 디딤대 삼아 차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완벽해야 한다.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차는 움직이지도 가속하지도 않는다. 카테피아를 완성하는 과정은 차가 가속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임 대표를 미행하는 지금 나의 행동은 어디에 속할까? 가속 페달? 엔지? 변속기? 구동축? 바퀴? 아니면 가속과 관련 없는 고장 신호일까? 쓸모없는 직감을 따라, 정신을 차리니 임 대표를 쫓는다. 제발 내 직감이 오늘도 틀렸으면 한다. 예상한 결과를 당당하게 마주할 자신도 없지만, 지금 내 행동으로 그동안 쌓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시발점일 거라고, 쓸모없는 직감은 강하게 경고한다. 갑자기 너무나 불안하다. 미행을 멈추고 싶다. 갈피를 못 잡겠다. 미행하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제대로 된 지시를 하라고. 그럼 처음부터 미행하라고 말하지 말았어야지.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넌 뭐냐. 나를 구원할 천사? 혹은 지옥으로 끌고 갈 악마?
“형사님, 도착했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