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조쌤의 하키토브
학생의 이직 수기를 읽으면서 그때의 상심을 떠올립니다. 심장 박동 수가 급하게 올라갑니다. 마음 한편에 묻어 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아립니다. 그만큼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되뇝니다.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바른 생각으로 이를 극복해 가는 굳은 의지를 존중합니다. 이직 수기를 쓰면서 마음이 무거운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영원히 지속하리라 믿었던 청년 시절의 열정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스스로 부정해도 세상은 우리를 기성세대라 칭합니다. 시간의 법칙을 거부하려는 기성세대는 순차적으로 철퇴를 맞아 잔인하게 부서집니다. 철퇴를 거부할수록 속된 말로 매만 더 법니다. 그렇게 모든 이는 시간의 굴레를 순응하여 기성세대에 안착합니다.
우리는 이미 오만과 만용으로 점철한 무지한 계획으로 수차례 실패를 겪었습니다. 개중 오만과 만용을 기세로 착각하여, 여전히 철퇴를 피할 수 있다는, 자기 본분을 잊은 기성세대도 있겠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은 훨씬 더 큰 철퇴로 누구보다 처절한 좌절을 겪을 예정입니다. 그래요, 이를 피하는 자도 더러 있습니다. 이들은 극소수입니다. 우리가 극소수에 속할 확률은 아쉽지만 제로입니다. 우리는 극소수에 속하지 않기에, 이는 열외로 우리의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곧 기성세대로 넘어올 청년에게
우리는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청년의 노력을 좋은 열매로 맺게 하는 게 기성세대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요즘 기성세대의 작태를 보노라면, 그들이 물려받은 게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임팩트만 전달해 가슴의 울림이 전부인 입바른 말은 하는 그들. 과정의 불편함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막연한 새로운 날이 다가온다는 헛된 꿈을 심어 주는 그들. 감정 호소로 이루어진 희망찬 미래의 외침은 이들의 희생을 시나브로 강요할 뿐입니다. 저 역시 일정 부분, 기성세대의 역할을 회피 중입니다.
우리는 끌어 줄 세대가 있었지만, 이들은 없습니다. 우리는 용서받았지만, 이들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음이 있었지만, 이들에게 다음은 없습니다. 우리는 부분을 잃었지만, 이들은 모든 걸 내주어야 끝이 납니다. 한 걸음만 잘못 걸어도 노력한 모든 과정을 잃어야 하는 안타까운 이들을 수없이 목도합니다. 그렇기에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은 도박 같은 베팅으로 삶을 연명합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대체 우리는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현재 B급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B급 인생은 사회적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원하는 목표에 100% 수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루고자 하는 결괏값에 65% 정도를 누리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100%의 목표에 이르지 못한 삶의 초기는 괴롭습니다. 무엇을 해도 35%는 다가갈 수 없다는 현실은 스스로 비참하게 합니다. 이러한 생각에 몰두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허망한 목표에 몰두해 기세라는 허울 아래 시간을 대부분 낭비합니다. 우리의 삶 중 성과의 기간은 길지만 짧습니다. 그렇기에 35%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다가오는 미래에 맞서야 합니다. 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이며 사회적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비즈니스 영어를 매개로 수많은 다른 인생을 공유하며 이들의 삶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35%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열정을 이들을 위해 사용 중입니다. 이타적인 행동이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타심의 출발은 이기심입니다. 인간은 이기심의 충족을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선택합니다. 결국 이타심의 결과물은 이기심의 결정체입니다. 물론 이에 속하지 않는 성인군자도 있습니다. 열외이니 논할 대상은 아닙니다.
이기심의 결정체가 모여 이타심의 결과물을 이루려면, 시스템의 이해를 근간으로 35%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35%의 부족함을 지닌 채 살아가려면, 스스로 빛나는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외의 곳에서는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많은 이가 존중과 존경의 의미를 혼동합니다. 천둥벌거숭이는 모든 곳에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나이 값을 못하는 자의 특징입니다. 존경은 빛나는 자리에서 상대방이 보내는 찬사입니다. 존경은 노력한다고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주어진 선택권입니다. 존중은 이와 다릅니다. 존중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우리가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존중과 존경의 차이는 사회 시스템을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이 둘을 혼동하면 자기 분야에서 빛나기가 어렵기에 연봉도 오르지 않으며 승진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들은 자기 객관화가 불가능한 천둥벌거숭이로 살아갑니다. 상대방을 미워하며 살아갑니다. 사회 시스템을 부정하며 살아갑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존중의 다른 이름입니다. 자기 자리가 아닌 타인의 자리에서 겸손하지 않으면 그들의 결괏값은 뻔합니다. 겸손하지 않는 자는 남들과 다르다고 착각하기에 그렇습니다. 모든 이는 다릅니다. 왜 본인만 특별하다고 착각하는지요? 그 다른 특징을 지닌 개인이 모여 하나의 시스템을 영유하여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규칙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그 규칙을 나만 어기며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우리를 내버려 두지도 않습니다.
붉은 기운을 품은 늠름한 말의 힘찬 몸짓과
방향을 잃은 많은 청년이 눈앞에 있습니다.
2026년 병오년,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전달해야 할까요?
올해도 모두 고생했습니다.
내년에도 행복한 일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