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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동차 노동자 Dec 21. 2021

현대차 선거와 ‘MZ 세대론’?

허구적 담론이 노리는 것

2년에 한 번 치러지는 금속노조 중앙임원 선거가 끝나고 각의 지부 지회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다. 가장 큰 규모의 자동차와 중공업 지부들의 선거 결과에 기업과 국가기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작 현장 조합원들의 관심은 예전만큼 뜨겁지 않다. 물론 각 지부와 지회 사이에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일단 최종 결과가 나온 현대중공업, 한국지엠, 현대차의 경우 상대적 ‘강성’ 성향의 후보들이 당선됐다.


이를 두고 기성 언론들은 “현대차, 현중에 ‘강성’ 노조 들어서...내년 노사 관계 험난”(조선일보), “더 센 노조 온다...현대차 한국 GM 전운”(뉴 데일리), “'강성후보' 맞대결…현대차노조 차기지부장 선거 7일 결판"(한경) 등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우려를 쏟아냈다. 


‘강성’ 성향의 지부장들이 당선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저들의 우려가 현실화될지 알 수 없다. 좌파적 언사를 하다 배신적 타협을 한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현장 조합원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어 두고 볼 일이다. 


언론들이 ‘강성’ 당선을 호들갑스럽게 우려한 기사들보다 내 눈에 들어온 건 12월 3일 자 한국경제신문 “현대차노조 선거 MZ 손에 달렸다…강성후보 나란히 결선” 기사였다. 도대체 MZ세대가 얼마나 큰 힘을 가졌기에 이런 기사를 쓰나 하고 꼼꼼히 읽어 봤다. 그런데 기사 제목을 입증하는 내용의 근거가 희박하거나 왜곡 과장됐고 논리 전개도 엉망이다. 


핵심 논지는 한 노사관계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남양연구소로 대표되는 현대차 MZ세대(R&D 분야 연구원들)의 지지를 받은 두 후보가 나란히 결선에 올라갔다”며 “실제 지부장 선거 최대 표밭 (유권자 6000명)인 남양연구소에서 권오일 후보가 1671표, 안현호 후보가 1873표 획득한 게 승패를 좌우했다는 평가다”고 주장한다. 어이없는 헛소리다. 


첫째 : 현대차 남양연구소 조합원 수는 4308명이다. 

둘째 : 4만 9천 조합원 중 최대 표밭은 3만 명이 모여 있는 울산 공장이다.

셋째 : 각 후보 간 전체 득표율이 남양연구소 득표율과 별반 차이 없다. 기성 언론이 합리적이라며 찬양 고무한 친 사측 서향의 이상수 후보가 공장 부문에서나 남양연구소에서 형편없는 득표를 한 것도 비슷하다. 


‘MZ세대론’이 유행한다지만 조합원 수 같은 간단한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고 억지 과장까지 해가며 ‘MZ 세대론’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그중에서도 연구소를 콕 집어 거론하는 이유는? 물론 남양연구소에 공장과 정비 판매 부문보다 상대적 연령대가 낮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MZ세대가 남양연구소에만 모여 있는 것도 아니다. (MZ세대 1980초반~2000초반에 출생) 이 연령대 조합원들은 공장 부분에도 적지 않다. 특히 비정규직이었다가 정규직으로 특별채용된 조합원 대다수가 바로 MZ세대에 포함된다. 이렇게 봤을 때 MZ세대와 기존 조합원을 분리해서(특히 연구소와 생산 부분을) 분석하는 것 자체가 억지다. 


난 의도가 궁금해 MZ세대론과 현대차 관련 기사를 좀 더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21년 봄부터 여름까지 꽤 많은 기사가 조중동과 경제지에 볼 수 있었다.



임금동결과 주식 배당금 잔치

처음 쟁점이 되기 시작한 것은 21년 성과급 문제였다. 2020년 현대차지부 이상수 집행부가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임금동결에 합의했다. 이로 인해 현대차 노동자들의 임금이 남성 800만 원 여성 600만 원가량 삭감됐고 현대 기아차 그룹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역시 삭감됐다. 이 뿐 만이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한국 전체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9년 만에 0.1% 하락했다. 현대차지부처럼 강력한 힘이 있는 노조가 임금동결에 합의하자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 역시 임금인상 요구가 어려워진 것이다. 


2020년 노동자들이 고통을 전담하며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는 동안 SK, LG, 현대, 삼성 등 일부 대기업과 대형은행들의 이윤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윤이 증가하자 대기업들은 주주 배당을 늘리고 오너들의 상여 성과급은 대폭 인상하는 등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데 혈안이었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2020년, 2019년에 비해 연봉이 15% 오른 59억 8천만 원으로 늘었다. 그 외 주식 배당금 2019년 정몽구 정의선 일가 950억 천문학적인 돈을 챙겼지만 노동자들에게 추가 성과급을 한 푼 지급하지 않았다. 


현대차 그룹의 정몽구 정의선 일가뿐만이 아니다. 21년 상반기 배당을 공시한 140개 상장사의 총배당액은 9조 3084억 원이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1조 7748억 (23.5%) 증가했다.

삼성의 홍라희는 992억 이재용은 704억, 현대중공업 정몽준 389억을 챙겼다. 



연봉 반납 ‘쇼’ 최태원

올 초 입사 4년 차 직원이 SK 이석희 사장을 포함한 전 구성원에게 공개적으로 작년 성과급에 대해 항의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례적인 사건으로 성과급 불평등에 대한 여론에 불을 지폈다. 이런 불만을 달래기 위해 최태원 회장은 연봉 반납하고 공정한 성과급 제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SK 최태원 회장은 21년 상반기 주식 배당금으로 194억을 챙기며 연봉 반납 ‘쇼’를 무색하게 했다.


임금동결로 코로나 19 위기극복에 헌신한 노동자들은 부동산 폭등, 대기업 오너들의 성과급 잔치를 보며 올 초 성과급에 대한 불만이 세대 불문하고 대기업 곳곳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런데 보수언론들은 불만의 원인을 뒤틀어 기존 노조가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차등 성과급 제를 반대하고 있어 ‘능력 있는 MZ 세대’가 불만이 증폭되고 있는 양 야비한 이간질을 하기 시작했다. 



‘88만 원 세대’

세대론을 이용해 계급 내 이간질을 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7년 우석훈의 ‘88만 원 세대’ 책이다. 


이 책은 기성세대의 질 좋은 일자리 독점이 청년실업의 원인인양 왜곡하며 세대 착취론을 주장했다. 이는 IMF 이후 빈부격차(계급 간 격차)가 격심해진 원인을 노동자 내부로 돌리는 자극적이며 황당한 담론이었다. 이론적 근거도 논리의 합리성도 부족해 저자인 우석훈 자신이 절판을 선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88만 원 세대 담론은 노무현 정부가 민주노총과 조직 노동자들의 저항을 ‘노동귀족’의 ‘배부른 투정’이라 비난하는데 힘을 실어 주었고 이명박 정부와 우파의 노동자 공격에도 한 것 이용됐다. 

이렇듯 세대 담론은 계급 간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비틀어 계급 내 이간질에 이용된다.



이중임금제

그렇다고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고용 임금격차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2008년 경제위기 후 미국 자동차 빅3는 이중임금제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신규 노동자와 기존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점점 커져 노조의 힘이 약화됐고 오래지 않아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 수준도 대폭 하락했다. 


한국 역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전체 노동자 임금을 공격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존 노동자와 신규 노동자를 이간질에 열 올렸다. 특히 박근혜 정부 땐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노동유연성 강화와 임금피크제, 일반 해고요건 완화, 성과에 연동한 직능급제 도입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그리고 한편으론 청년실업이 심각한 현실을 대기업 신입사원 초임(3천만 원 초반)이 너무 높아 청년들의 눈높이만 높아졌다고 비난하며 대기업 초임 삭감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문제인 정부 역시 최저임금을 올리기는 했지만 산입범위를 넓혀 그 효과가 미미해지게 만들거나 하락하게 만들었다. 또한 최저 시급 기준에 상여금을 포함시켜 최저임금 위반을 비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런 공격에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조직 노동운동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연대전략’이라고 포장된 ‘정규직 양보론’을 피며 임금인상 투쟁을 회피해 왔다. 


이로 인해 지난 10여 년간 전체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찔끔 오르거나 정체했고 오늘날 MZ 세대로 불리는 청년 노동자들과 임금격차가 이전 세대보다 격심해진 것이다. 이는 금속노조와 현대 기아차를 비롯한 조직노동운동이 반성적으로 돌아봐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현대 기아차의 임금 차별

현대 기아차의 신규 노동자와 기존 노동자 간 임금격차가 심해진 것 역시 2008년 이후 사측이 이중임금제를 도입하고 야금야금 확대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특히 2012년 주간 2교대제를 합의하면서 임금과 생산성 향상을 연동해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생산량을 늘려 주는 합의를 했다. 그런데 주간 2교대 합의 이후 입사자들에게는 주간 2교대 이전 지급하던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중임금제를 확대시켰다. 


여기에 2010년 7월 대법에서 최종 승소한 불법 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온전한 정규직 전환을 차일피일 미루고 결국 신규채용방식으로 채용했다. 이들에게 근속기간을 온전하게 인정하지 않고 각종 복지에서 차별하는 방식으로 임금을 줄여 이중임금제를 더욱 확대했다.


이런 차별 때문에 2012년 이후 10여 년간 현대 기아차지부에선 이중임금제 개선을 요구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열망이 컸다. 그런데 지난 집행부 대부분은 요구를 묵살하거나 오히려 기존 사원에게만 지급하는 특별 호봉 인상을 두 차례나 합의해 이중임금제를 강화시켰다. 


이 때문에 2010년 이후 입사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상대적으로 커져 왔다. 보수 언론과 관변 학자들이 그 틈을 비집고 MZ 세대론을 확대 재생산하며 성과와 연동된 임금체계가 더 공평한 양 주장한다. 이는 노동계급 내 차별을 부풀려 기업과 국가의 계급 착취를 은폐하고 불만의 화살이 노동계급 내부를 향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단결과 연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88만 원 세대론’을 비롯해 ‘MZ 세대론’을 이용한 이간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성,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 온갖 차별과 불평등에 시달리는 이들의 불만과 분노의 화살이 진정한 원인인 기업과 자본주의 체제로 향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 바로 세대론이다. 


이렇듯 계급 간 차별 문제를 비틀어 계급 내 이간질에 이용하는 주장에 잘 반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만 이간질에 반박하는 것만으론 한참 부족하다. MZ 세대와 기존 노동자 간의 임금격차를 심화시키는 이중임금제를 철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착취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선 반 자본주의적 대안을 분명히 하고 여성과 남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임금, 복지, 고용에 대한 차별 문제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고 연대를 확산시키는데 애써야 한다. 특히 현대 기아차지부를 비롯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진정성 있게 나서도록 촉구하고 단결과 연대를 위해 실천과 투쟁에 헌신해야 한다. 



2021년 12월 20일

기아차지부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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