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삶의 조각들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멈춰 서면,
투명하게 내려앉는 눈,
그리고 노란 우산 아래 아이의 모습,
누군가 흘리고 간 한 짝 분홍 장갑의 희미한 의미가 아직 내 시선 안에 머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찰나,
무심한 틈 사이로 번지던 낯선 고독의 뒷모습,
딸아이 손을 잡고 잠시 마음 한 켠에 벽을 쌓던 내 안의 그림자가 떠올라.
짧은 ‘안녕’ 한 마디에 창백했던 마음이 기어이 환해지던 그 순간, 눈을 감으면 스며든다.
옷을 환불 교환보단 그냥 입고,
택시를 손으로 잡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설렘으로 눈밭을 헤치던 어린아이,
산타에게 손 내밀던 순수와, 퇴근길의 젖은 신발을 걱정하는 어른에 모습들.
길 위에서 돌멩이처럼 부딪힌 우연,
낡은 간판 아래 홀린 듯 들어선 맛집 의 따뜻한 김,
땀으로 움켜쥔 단 한 장의 예매 성공 티켓.
그 모든 작은 사건들이 피할 수 없던 내 운명이자, 기꺼이 짊어진 책임이었음을.
다들 화면만 바라보던 지하철 사람들 그리고 그들 틈에서 나를 비취보던 모습들.
갈라진 아스팔트 틈새에서 악착같이 피어난 꽃처럼,
아주 오래된 중고 서점에서 발견한 오롯한 수학의 정석 ,
시간에 마모되어 흐려진 장래희망의 빈칸들.
김 솟는 보리밥집 창 너머, 엄마와 나,
골목길을 지워내듯 흐릿해진 간판 글씨,
흑백 필름처럼 스치는 옛 광고 속 잊힌 목소리까지.
이 모든 조각들은 삶을 각인해온 시간의 문신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정답 없는 공식 위에서 발자국을 새기며 자신의 길을 찾고,
새싹의 흔들림에도 책임을 지며,
자신만의 고유한 온도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흙탕물에 고꾸라지고,
생채기 같은 실수로 흔들려도,
그럼에도 우리는 상처 위에서 나만의 꽃을 피워,
누군가에게 아주 작고 투명한 위로가 되는 하루를 만든다.
이 에필로그는 끝이 아니다.
고요히 움직이는 시간 속,
우리는 또 다른 사소한 장면을 실타래처럼 엮어 쌓아갈 것이다.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결국 나만의 빛나는 별자리가 되듯이.
그리고 나는 오늘도,
과거와 현재의 모든 조각들을 마음속에 묵직하게 품고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미지의 길을
마침내, 고요히 응시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과거와 현재의 모든 조각들을 마음속에 품으며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조용히 바라본다.